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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기지공사 돌연 재개한 中…'파이브 아이즈' 도청에 쓰나

중앙일보

입력

중국이 지난 2018년 2월 남극 대륙 로스해 인근 인익스프레서블 섬에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임시 컨테이너 건물의 모습. 중국 신화망 캡처

중국이 지난 2018년 2월 남극 대륙 로스해 인근 인익스프레서블 섬에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임시 컨테이너 건물의 모습. 중국 신화망 캡처

중국이 지난 2018년 이후 지지부진했던 5번째 남극 위성 기지 건설을 재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기지는 다른 국가의 위성 통신을 가로챌 수 있는 지상 위성 시설을 갖추고 있어 중국 당국이 도청 수단으로 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18년 시작 후 멈췄던 공사 재개”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18일(현지시간) 중국이 남극 대륙 로스해 인근 인익스프레서블 섬에 짓고 있는 5번째 기지의 모습을 공개했다. 지난 1월 촬영된 위성 사진에선 각종 설비와 가건물, 헬기 이착륙장 등이 들어선 모습이 포착됐다. CSIS 보고서 캡처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18일(현지시간) 중국이 남극 대륙 로스해 인근 인익스프레서블 섬에 짓고 있는 5번째 기지의 모습을 공개했다. 지난 1월 촬영된 위성 사진에선 각종 설비와 가건물, 헬기 이착륙장 등이 들어선 모습이 포착됐다. CSIS 보고서 캡처

18일(현지시간)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공개한 ‘얼어붙은 국경: 극지방에서 중국의 거대한 야망’이란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남극 대륙 로스해 인근 인익스프레서블 섬에 2024년 완공을 목표로 위성 지상기지를 건설 중이다.

미 민간 위성영상 업체 막사테크놀로지가 촬영한 지난 1월 위성 사진을 분석한 결과, 중국이 이 지역에 헬리콥터 이·착륙장과 각종 시설 및 가건물 등이 들어서는 약 5000㎡ 규모의 기지를 건설중인 정황이 포착됐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해당 사진은 중국이 2018년 이후 몇 년 동안 휴면 상태였던 기지 건설에 상당한 진전을 이루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호주 로켓 정보 등 도청 가능

CSIS가 해당 기지에 주목한 이유는 이곳에 지상 위성시설이 설치되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인익스프레서블섬 기지엔 중국이 자체 건조한 쇄빙선 ‘쉐룽(雪龍)호’가 머물 수 있는 부두와 함께 위성 시설이 지어질 것”이라며 “이 시설은 극지방을 관측하는 중국 과학 위성을 추적하고 이들과 통신하는 데 사용되겠지만, 동시에 다른 나라의 위성 교신을 도청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2019년 중국이 자체 건조한 쇄빙선 쉐룽호 1호와 2호가 남극 대륙 인근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2019년 중국이 자체 건조한 쇄빙선 쉐룽호 1호와 2호가 남극 대륙 인근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보고서에 따르면 특히 해당 기지는 호주와 뉴질랜드의 신호정보(SIGINT·시긴트)를 수집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 주요 수집 대상으론 호주 북부 연방 직할 구역인 노던 준주(Northern Territory)에 위치한 아넘 우주센터에서 발사한 로켓의 원격 측정 데이터가 지목됐다.

시긴트는 통신 도·감청이나 전파 탐지로 취득된 정보를 뜻한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미국이 주도하는 영미권 기밀정보 공유 동맹체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의 일원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이같은 중국의 노력이 미국의 정보 탈취를 노린 것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영·인도 해군 움직임 감시 보완"

중국은 남극 동부 해안 라스만 힐에 운영 중인 3번째 남극 기지 중산(中山)기지에도 위성 시설을 짓고 있다. 중국 당국은 지난 2월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를 통해 중산 기지에 안테나·전력시설 등으로 구성된 지상 위성 시설을 건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건설 목적으론 자국 해양관측 위성 활동을 돕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보고서는 “안테나 등 주요 시설을 미 국방부와 재무부가 군사기관으로 지정한 중국우주과학공업집단공사(CASIC)가 만든다”고 지적했다. 해당 시설이 완공될 경우 중국이 독자 개발한 위성항법체계(GPS)인 '베이더우(北斗)'를 포함한 남극 궤도 인근 중국의 위성 데이터를 보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중국이 인도양의 차고스 제도에 위치한 미·영의 공동 군사 거점인 영국령 디에고 가르시아 해군기지를 비롯해 인도 해군의 움직임에 대한 감시 능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보고서는 봤다.

1985년 이후 남극기지 4곳 잇따라 건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보고서는 “남극에서 가장 활발하게 연구 활동을 수행하는 국가는 여전히 미국이지만, 최근 중국의 남극 점유 비중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은 남극에 1985년 최초 기지인 창청(長城)을 세운 이후 ‘남극 굴기(崛起)’의 일환으로 타이산(泰山), 중산, 쿤룬(昆侖) 과학기지를 잇따라 건설해 운영하고 있다.

1959년 체결된 남극조약에 따라 남극대륙은 어느 나라도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고 평화적 목적으로만 이용할 수 있다. 군대의 과학 연구는 허용되지만 무기 실험, 군대 훈련 등은 금지된다. 중국도 남극 조약의 당사국이다. 그럼에도 미 국방부는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새로운 남극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해양자원에 대한 소유권 주장을 강화하고 인민해방군의 군사 능력을 향상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에 북극길 막힌 중, 러 이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한편 북극권에서도 영향력 확대를 노려온 중국은 최근 전략을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북유럽 국가들과 협력해 북극 주변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이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북극권 국가들의 반발로 막히자 중국은 최근 러시아를 전략적 파트너로 삼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북극권에서 남쪽으로 약 1400㎞나 떨어져 있다. 하지만 2018년 발표한 '북극백서'를 통해 스스로를 “근(近)북극 국가”라 부르며 북극항로를 개발해 주변국과 ‘빙상 실크로드’를 구축하겠다는 야심을 밝혀왔다. 노르웨이·아이슬란드·스웨덴에 잇따라 과학기지를 건설해 북극 탐사에도 나섰다.

하지만 지난 2020년 스웨덴 정부가 인민해방군과의 연계를 우려해 북부 에스랑에 우주센터에 건설된 중국의 위성 기지 운영을 더는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등 미국과 북유럽 국가들이 중국의 북극 활동 제한에 나서고 있다. 보고서는 “중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고립돼 중국 의존도가 커진 상황을 이용해 러시아를 통한 북극항로에 집중 투자하며 이곳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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