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감방서 이게 됐다…알바 시켜 수억대 마약 판 조폭 수법

1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경찰청 제1회의실에서 정재남 강력범죄수사대장이 텔레그램을 통해 필리핀에서 국내로 마약을 유통한 일당에 대한 검거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경기남부청 강력범죄수사대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수도권 지역 조폭 출신 40대 A씨를 형사 입건하는 등 마약류 유통·판매책 25명과 매수·투약자 33명 등 총 58명을 검거했다고 이날 밝혔다. 연합뉴스

마약류 범죄를 저지른 뒤 필리핀으로 도망쳤던 조직폭력배가 현지에서 수감된 상태에서까지 국내에 마약을 유통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일당이 유통한 마약은 12만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이다.

경기남부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수도권 지역 조폭 출신 40대 A씨를 형사 입건했다고 19일 밝혔다.

경찰은 A씨를 포함해 마약류 유통·판매책 25명과 매수·투약자 33명 등 총 58명을 검거했다. 이 가운데 혐의가 무거운 유통책 20명과 매수자 3명 등 23명은 구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필리핀 마닐라 소재 이민국 수용소에 수감 중인 A씨는 지난해 5월부터 같은 해 7월까지 텔레그램을 이용해 국내에 멕시코산 필로폰 3.5㎏, 시가 116억원 상당을 유통한 혐의를 받는다.

수사망 좁혀오자 필리핀 도주…텔레그램으로 마약 팔아

A씨는 국내에서 마약류 범죄를 저지른 뒤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지난 2018년 10월 필리핀으로 도주했다.

그는 도주 2년 만은 2020년 9월 현지에서 폭력죄 등으로 검거돼 이민국 수용소에 수감됐다. 필리핀의 이민국 수용소는 한국의 외국인보호소와 같은 개념으로, 범죄 혐의로 붙잡혀 추방되기 전 단계에 있는 필리핀 내 외국인들이 수용되는 곳이다.

A씨는 수용소 안에 휴대전화 반입이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해 수감 중에도 텔레그램을 이용해 국내에 필로폰을 유통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수용소에서 알게 된 국적 불상의 외국인을 통해 국내 체류 나이지리아인인 40대 B씨를 소개받아 국제특송화물로 B씨에게 필로폰을 전달했다.

기어류 부품에 숨겨 국내 유통…‘던지기’ 수법으로 전달

A씨는 톱니바퀴 모양의 기어류 부품에 필로폰을 숨겨 국내로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해당 기어류 부품을 국내 기업이 요청한 부품 샘플인 것으로 위장했는데, 이런 경우 통관 절차가 비교적 간소해 밀반입이 가능했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A씨는 이와 동시에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고액 아르바이트 모집’ 글 등을 올려 국내에서 판매책 역할을 할 공범을 모집하기도 했다.

그는 판매책들이 잠적이나 도주, 자수할 것에 대비해 신분증과 함께 300만~1000만원의 보증금을 받아두고, 필로폰을 판매할 때마다 건당 수만 원의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을 썼던 것으로 조사됐다.

B씨는 A씨로부터 받은 필로폰을 이른바 ‘던지기’(특정 장소에 물건을 가져다 놓으면 찾아가는 방식) 수법으로 판매책들에게 전달했고, 이들 판매책은 또다시 하위 판매책들을 통해 매수·투약자들에게 팔았다.

필로폰 2.6㎏·엑스터시 237정 등 압수 

경찰은 필로폰 단순 매수자 1명을 검거해 수사하는 과정에서 윗선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확대한 끝에 A씨 등 50명이 넘는 마약사범을 일망타진했다고 전했다.

이번에 검거한 피의자 중 20대 초반 C씨 등 4명에 대해서는 범죄단체조직죄(형법 114조)도 적용했다.

경찰은 필로폰 2.6㎏, 합성 대마 46팟(1팟은1카트리지), 액상 대마 13팟, 대마 1.81ｇ, MDMA(엑스터시) 237정, 케타민 1.57ｇ, 코카인 2.62ｇ 등을 압수했다.

정재남 경기남부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장은 “필리핀 이민국 수용소에 수감된 A씨를 국제 공조를 통해 조속히 국내에 송환하고, 조직 유통망에 대한 추가 수사도 해나갈 계획”이라며 “마약류 범죄에 대한 국민 불안감이 최고조에 이른 현 상황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총력 대응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손성배 기자 son.sungbae@joongang.co.kr, 영상=남윤우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