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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제원의 시선

혁신에 또 혁신, 마스터스 89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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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제원 기자 중앙일보 문화스포츠디렉터
정제원 스포츠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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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4월 둘째 주가 되면 미국 남부 조지아주의 작은 도시 오거스타에선 한바탕 골프 축제가 벌어진다. 세계 최고 권위의 골프 대회 마스터스다. 올해는 스페인 출신 프로골퍼 존 람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40대 후반에 접어든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통증을 참다못해 중도에 경기를 포기한 장면은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마스터스는 어떻게 세계 최고의 골프 이벤트가 됐을까. 마스터스는 단순한 골프 대회가 아니다. 마스터스만큼 경외의 대상이 되는 스포츠 이벤트는 찾기 어렵다. 살아있는 경영학 교재, 마케팅 교과서가 바로 마스터스다.

매년 4월 열리는 최고 골프축제
2년 단위, 20년 내다보는 비전
강소기업 ‘경영학 교재’로 통해

마스터스는 ‘베스트’의 동의어다. 최고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떤 양보도 하지 않는다. 오거스타 내셔널 측은 티끌 하나 없는 최고의 코스를 만들기 위해서 1년 내내 공을 들인다. 해마다 4월 둘째 주에 대회를 여는 건 목련과 개나리·진달래가 활짝 피어나는 시기에 맞춘 것이다.

녹색의 향연을 개최할 준비가 끝나면 ‘마스터(master·명인)’로 불릴 만한 기량을 갖춘 세계 최고의 선수를 엄선해 초청장을 보낸다. 그리고는 세계 최고의 골프 팬에게만 입장을 허용한다. 마스터스에 입장하는 관중은 단순한 갤러리가 아니라 ‘패트런(후원자)’이라고 부른다. 하버드 대학교 계단식 강의실이 부럽잖은 최신 시설의  미디어센터를 지어놓고, 세계 최고 수준의 미디어에만 문호를 개방한다.

마스터스는 ‘혁신’의 대명사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1934년 보비 존스가 제1회 대회를 개최한 뒤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성장을 거듭했다. 빌리 페인 전 오거스타 내셔널 회장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2년 단위로 20년을 내다보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털어놨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골프 코스를 늘리기 위해 거금을 들여서 주변 부지를 사들였다. 대표적으로 13번 홀을 36m 정도 늘리기 위해 2000만 달러(약 262억원)를 썼다. 3.3㎡당 22억원을 들였다. 출전 선수와 캐디는 물론 미디어와 방송 관계자 등 수백여 명이 한꺼번에 묵을 수 있는 숙소도 지을 계획이다. 대회 때마다 교통체증이 일어나고 진입로에 잡상인이 들끓는 걸 방지하기 위해 고속도로에서 아예 골프장 주차장으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전용 출구 건설도 추진 중이다.

마스터스의 대회 운영은 ‘미니멀리즘’에 가깝다. 원색을 극도로 꺼린다. 광고 노출을 원천적으로 금지한다. 그래서 골프장 어디에서도 그 흔한 광고판 하나 찾아볼 수 없다. 주요 후원사인 IBM과 롤렉스, 메르세데스-벤츠 등의 로고도 눈에 띄지 않는다. 잔디와 나무, 모자는 물론 샌드위치를 담은 봉지 색상까지 초록 일색이다. 캐디들이 입는 옷은 흰색으로 통일한다. 대회 스폰서도 따로 없고, 골프장 회원이 몇 명인지도 알 수 없다. 회원이 누군지도 공개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그래서 마스터스의 전략을 ‘신비주의’라고 부른다.

마스터스는 그 자체로 강소기업이다.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다 보니 수입이 저절로 따라온다. 올해 수입은 1억5000만 달러(약 2000억원)를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절반 정도가 마스터스 로고가 찍힌 머천다이즈(상품) 판매에서 나온다. 입장권과 TV중계권 수입도 만만찮다. 이렇게 거둬들인 돈으로 선수들에게 상금 1800만 달러(약 237억원)를 지급한다. 올해 우승상금은 324만 달러(약 42억원)였다.

또 코스 관리비로 약 5000만 달러를 지출한다. 어림잡아 1년에 400억~500억 원 넘게 수익을 낸다는 이야기다. 인구 20만 명의 시골 도시 오거스타의 주민들도 해마다 마스터스 덕분에 호황을 누린다. 일주일 동안 집을 통째로 빌려주고 임대료로 10만 달러(1억3000만원) 이상을 받는 사람도 있다.

마스터스 같은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를 다른 지역에서도 열 수 있을까. 여간해선 불가능에 가깝다. 역사와 전통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최고의 대회를 만들겠다는 투철한 철학과 장기 비전이 없다면 공염불에 가깝다. 일본은 해마다 미야자키에서 피닉스 토너먼트를 연다. 초록색 로고부터 흠잡을 데 없는 코스, 대회 운영에 이르기까지 마스터스를 그대로 모방했다. 그러나 마스터스의 권위만큼은 따라잡을 수 없었다.

마스터스라고 시련과 실패가 없었으랴. 대회 초창기엔 최고의 선수들을 시골 도시로 초청하기조차 어려웠다. 상금을 마련하지 못해 쩔쩔맨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야 오늘의 ‘마스터피스(걸작품)’가 탄생했다. 최고를 향한 89년 노력의 결정체가 바로 마스터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