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스타트업 팍스모네는 국내 최초로 신용카드 회원간 결제 서비스를 개발했다. 은행 계좌에 잔액이 없어도 카드를 이용해 송금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신한카드가 뒤늦게 선보인 ‘마이 송금 서비스’ 때문에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이 회사 홍성남 대표는 “최근 3년간 소송을 하면서 경제적 피해가 10억원, 기회손실·영업 피해로 인한 간접 피해는 100억원에 이른다”고 호소했다.
18일 중소기업 권리 보호를 지원하는 공익 재단법인 경청이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주최한 ‘대기업 아이디어 탈취 피해 중소기업 기자회견’에서 나온 얘기다. 이날 팍스모네와 알고케어, 프링커코리아, 키우소, 닥터다이어리 등 대기업과 분쟁을 겪고 있는 스타트업 5개사가 참여했다.
이들은 아이디어·성과물 침해에 대한 형사 처벌 규정을 신설하고, 행정조사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정부의 행정조사 시 시정 권고를 넘어 시정 명령까지 내릴 수 있도록 실효성을 강화하고, 중소기업 기술 침해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상설 범부처 협의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들은 대기업이 협업하겠다며 접촉한 뒤 사업 정보를 빼가거나 유사 제품·서비스를 내놓았다고 주장한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알고케어는 롯데헬스케어의 기술 도용 의혹을 제기해 중소벤처기업부에 기술분쟁 조정을 신청한 상태다. 올해 초 미국 ‘소비자가전쇼(CES) 2023’에서 롯데헬스케어가 공개한 영양제 ‘디스펜서’가 알고케어 제품을 베낀 것이라는 주장이다.
프링커코리아는 ‘타투 프린터’를 두고 LG생활건강과 분쟁 중이다. 이 회사 윤태식 대표는 “LG생건이 모방 제품을 선보이고 되레 우리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으로 형사 고발했다”고 호소했다. 방성보 키우소 대표는 “9년간 준비하고 개발·운용비만 5억원을 쓴 ‘키우소’ 앱을 농협경제지주가 회원으로 위장 가입해 모니터링하고, 유사도가 75%인 앱을 출시했다”고 주장했다.
혈당관리 플랫폼을 운영하는 닥터다이어리는 카카오헬스케어에 아이디어를 도용당했다며 억울해했다. 카카오인베스트먼트와 카카오브레인이 비밀유지계약을 체결한 뒤 자료를 받아갔고, 지난달 카카오헬스케어가 비슷한 사업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해당 대기업은 이에 대해 “특별한 기술이 아니고, 도용한 것이 아니다”며 맞서고 있다.
팍스모네와 소송 중인 신한카드 측은 “개인 간 카드를 활용한 송금은 업계에서는 예전부터 나왔던 아이디어”라고 반박했다. 롯데헬스케어는 “자체 제작한 것이지 알고케어 기술을 침해한 것이 아니다. 정부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이다.
LG생건 측은 “프링커코리아 제품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밝혔다. 농협경제지주 관계자는 “한우 목장 관리 앱은 키우소 출시 전에 이미 서비스했고, 모니터링은 정당한 시장 조사”라고 반박했다. 카카오헬스케어는 “계열사로부터 닥터다이어리 관련 자료를 공유 받은 적이 없고, 기술 기반이 다른 서비스를 준비 중”이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박희경 경청 변호사는 “손해배상 산정 기준 현실화와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 분쟁 당사자 양측이 증거를 함께 공개하는 미국식 ‘디스커버리(증거 개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