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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돈봉투 진상규명 못 한 민주당, 비리옹호 집단 되려 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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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해 9월 국회에서 열린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송영길 상임고문의 발언을 듣고 있다. 김경록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해 9월 국회에서 열린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송영길 상임고문의 발언을 듣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재명 대표 사과했지만 너나없이 ‘기획 수사’만 반복

민주화운동 세대, 잘못 인정하고 부패 청산 협조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어제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에 대해 사과했다.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당 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린다”며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이 대표는 송영길 전 대표의 조기 귀국도 요청했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 전모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공당의 선거가 돈봉투로 얼룩진 구태의 증거가 쏟아지는 만큼 당 대표가 국민에게 사죄하는 게 마땅하다.

최근 거론되던 당 차원의 진상 규명 얘기는 사라졌다. 이 대표는 “이번 사안은 당이 사실을 규명하기에 한계가 뚜렷하다”면서 수사기관에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요청했다. 물론 당에 강제 수사권이 없고, 당 차원의 조사만으로 넘길 사안도 아닌 게 맞다. 하지만 진상 조사마저 하지 못하는 구조에 빠진 채 자정 능력을 상실한 게 바로 지금 민주당의 모습이다.

국회 다수당이 이 지경인 것은 우선 관련 녹취가 공개됐음에도 누구 하나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송영길 전 대표부터 ‘개인의 일탈’로 치부 중이다. 돈봉투 공여 의혹을 받는 윤관석·이성만 의원도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한다. 당이 살려면 관련 의원들에게 탈당을 요구할 수도 있을 텐데, 이 대표 본인이 ‘사법리스크’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처지다. ‘내로남불’ 비난이 일까 봐 이도 저도 못하는 모습뿐이다.

이처럼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면 민주당의 위기는 갈수록 커질 것이다. 내년 총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아서 의혹 관련 의원들은 공천을 받으려고 향후 재판 결과가 확정되기 전까지 최대한 당적을 유지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본인 관련 사건을 ‘기획 수사’라고 반발해 온 이 대표에게 이들을 걸러낼 명분이 있을지 의문이다. 더욱이 당시 송 전 대표 측 외에 다른 후보 측에서도 의원들에게 돈을 뿌렸다는 주장이 담긴 녹취도 있는 것으로 전해져 증언 확보 등에 따라선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도 미지수다.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시 300만원 돈봉투 전달이 불거져 박희태 전 국회의장에게 유죄가 선고됐었다. 당시 재판부는 “정당제·대의제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명시했다. 15년이 흐른 지금 후진적 관행을 보인 이들은 잘못을 실토하고 부패 청산에 협조해야 한다. 송 전 대표가 조기 귀국해 조사받아야 함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번 의혹은 당명에 ‘민주’를 쓰는 제1 야당이 여당이던 시절 빚어졌다. 연루된 다수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과거 ‘386’세대다. 전통을 계승하진 못할망정 ‘비리 옹호 집단’이란 낙인을 받아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