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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에 감사 전화 받은 '헤드록' 어부 "몸이 먼저 움직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훈련된 경호원보다 재빨랐던 건 3명의 어부였다. 지난 15일 일본 와카야마(和歌山)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의 선거 지원 연설장에서 벌어진 폭발물 테러 사건 얘기다. 현장에서 용의자 기무라 류지(木村隆二·24)를 향해 가장 먼저 몸을 던진 ‘바다의 사나이’들 덕에 일본 경찰은 인명 피해를 막고 용의자를 체포할 수 있었다.

용감한 어부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일본 MBS뉴스가 16일 이들 인터뷰를 연속 내보냈다. 가장 먼저 용의자를 '헤드록'으로 제압하며 ‘빨간 옷 아저씨’로 불린 어부(54)는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자 같은날 별도로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들과 인터뷰를 했다. 어부들의 얼굴과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無我夢中) 움직였다”고 입을 모은 이들 ‘무명’ 어부들의 회고담을 추렸다.

15일 기시다 일본 총리를 향해 폭발물을 던진 테러 용의자를 현장에 있던 한 남성이 제압하고 있다. NHK 유튜브 캡처

15일 기시다 일본 총리를 향해 폭발물을 던진 테러 용의자를 현장에 있던 한 남성이 제압하고 있다. NHK 유튜브 캡처

①빨간 옷 '헤드록' 어부 “아베 사건 있었더래서…”

와카야마에서 태어나 산 지 50년을 훌쩍 넘기도록 ‘현직 총리’를 본적이 없었다. 사건 당일인 지난 15일 오전 8시쯤 사이카자키 항구 한쪽에 마련된 연설회장에 도착해 일찌감치 기다렸다. 오전 11시를 넘기자 기시다 총리가 도착했다. 약 200명이 몰렸던 행사장에서 왼쪽에 서 있던 한 남자(기무라 용의자)가 기시다 총리 쪽으로 뭔가를 던졌다. 접이식 우산 비슷했다.

게다가 손엔 뭔가 들고 있는 듯했다. 순간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자의 머리를 팔로 누르고 있었다. 왼손으로 헤드록을 걸고, 오른손으로 남자가 손에 쥐고 있는 걸 빼내려고 했다. 남자는 저항하진 않았지만 손에 쥔 물건을 좀처럼 놓지 않았다. 그게 뭔지 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먼저 던져진 것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가까이에서 폭발했다면 나도 목숨이 위태로웠을지도 모른다. 부상자가 없어 정말 다행이다.

기시다 총리가 오기 전, 동료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사건을 얘기했었다. 아베 사건도 (뇌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용의자)가 물건을 던지는 행동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경찰에 당시 상황을 진술하던 중에 기시다 총리의 감사 전화를 받았다.

②머리를 잡은 어부 “나도 모르게…”

폭탄이라고 해야 할지, 날아와서 알게 됐다. 총리에게 던진 폭발물을 경호원이 쳐냈는데, (용의자가) 두 번째 것을 던지려던 순간 잡았다. 정신없이 머리를 눌렀다. 용의자는 저항 없이 다리만 버둥거렸다. 당시 폭발물이 터지리라 생각은 못 했다. 20㎝가량 길이의 파이프에서 연기가 났는데 도화선에 불이 붙은 것 같았다. 두 번째 (폭발물에) 불을 붙이려고 했을 때 첫 번째 사람(빨간 옷 어부)이 뛰어들었다. 무섭진 않았지만 금방 터졌다면 우리도 다쳤을지 모른다.

지난 15일 오전 11시 30분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일본 와카야마(和歌山)현에서 현장 시찰을 마치고 연설을 시작하기 직전 폭발음을 야기시킨 물체를 던진 남성이 체포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5일 오전 11시 30분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일본 와카야마(和歌山)현에서 현장 시찰을 마치고 연설을 시작하기 직전 폭발음을 야기시킨 물체를 던진 남성이 체포되고 있다. 연합뉴스

③다리를 제압했던 어부 “순식간에 뛰어들었다”

맨 앞줄에 있었다. 기시다 총리를 눈앞에서 볼 수 있어 기대를 했다. 총리가 앞쪽으로 걸어와 잠깐 말을 하고 뒤로 돌았는데 그때 (폭발물이) 날아와 떨어졌다. 2~3m 앞이었다. 도화선이 있어서 불꽃 같은 느낌으로 흰 연기가 났고, 위험하단 생각을 했다. 그걸 보고 뒤로 몸을 돌렸는데 지인인 어부가 남자를 붙자고 있는 걸 봤고 순식간에 뛰어들었다. 다리를 눌렀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지난해 아베 사건이 있어서 집에서도 이야기하곤 했다. 실제 그 장소에 있었다면 도망칠까 어떻게 될까 하는 이야기를 했었다. 무서움은 없었지만, 상당히 충격이었다.

“경비 체계 의문” 높아지는 목소리…G7 앞두고 경비 강화 

지난해 7월 아베 전 총리 피격에 이어 9개월 만에 재차 총리에 대한 폭발물 테러 사건이 일어나자 일본 내에선 경비 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장 오는 18일까지 가루이자와(軽井沢) G7(주요 7개국) 외교부 장관 회의가 열리고, 다음 달엔 히로시마(広島)에서 G7 정상회의도 예정돼 있어서다.

지난 15일 와카야마시에서 선거지원 연설 직전 돌아서있는 기시다 일본 총리(가운데)쪽으로 폭발물이 날아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15일 와카야마시에서 선거지원 연설 직전 돌아서있는 기시다 일본 총리(가운데)쪽으로 폭발물이 날아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베 전 총리 사건으로 경호 계획에 대한 ‘예비 심사’가 도입됐지만 이번 와카야마 연설 현장엔 적용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용의자가 총리에 접근했고, 위험물 반입이 쉽게 이뤄졌으며, 연설 현장에 쉽게 누구든 드나들 수 있었던 점을 미비점으로 꼬집었다. 우려가 커지자 기시다 총리는 지난 16일 총리관저에서 기자들과 만나 “외교 일정에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 역시 경비 태세 강화를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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