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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 쓰고 막을 일도 아니고, 통과시킬 일도 아닌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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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5호 11면

처리 연기된 ‘간호법’ 충돌 배경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간호법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13일 보건복지의료연대가 반대 집회(위쪽 사진)를 열자, 14일 대한간호협회도 제정 촉구 집회(아래쪽 사진)로 맞불을 놨다. [뉴시스]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간호법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13일 보건복지의료연대가 반대 집회(위쪽 사진)를 열자, 14일 대한간호협회도 제정 촉구 집회(아래쪽 사진)로 맞불을 놨다. [뉴시스]

“지난 2년간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 통과 이외의 시나리오는 생각지도 않고 있습니다.” (간호협회 관계자)

“그야말로 죽을 각오로 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통과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입니다.” (의사협회 관계자)

극한 대치를 이어갔던 간호법 처리가 27일 본회의로 연기됐다. 간호법을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대한방사선사협회 등 보건복지의료연대 소속 13개 단체도, 찬성하는 대한간호협회도 강경한 입장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도대체 간호법이 뭐길래 이런 혼란이 벌어지는 걸까.

간호법은 내용만 뜯어보면 논란이 될만한 게 별로 없다. 의료법·보건의료인력지원법 등에서 간호사 관련 부분만 거의 그대로 옮겨왔다. 기를 쓰고 통과시킬 만한 것도 아니지만, 기를 쓰고 반대할 만한 것도 아니다. 간호법은 2005년부터 추진돼 온 해묵은 이슈다. 다만 간호사의 업무 범위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당초 2021년 김민석 민주당 의원의 법안에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 하에 시행하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규정했고,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 안은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지도하에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라고 담았다. 이 조항이 간호사의 ‘단독 개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반발에 부닥쳤다. 법안 논의 과정에서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바뀌었다. 이번에 본회의 직회부된 법안에도 그대로 유지됐다.

이번에는 ‘지역사회’가 문제가 됐다. 상정된 간호법 1조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의료연대 측은 향후 간호사 단독 개원이나 지역사회에서 단독으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해석한다. 당장 법안에 단독 개원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내용은 없지만, 향후 법 개정을 통해 방문간호센터 같은 단독 개원의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최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지역사회 문구를 근거로 의사의 지도·감독에서 벗어나서 별도의 의료행위(무면허 의료)를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간호법 쟁점

간호법 쟁점

간호계는 기존 의료법에는 간호사 업무가 두루뭉술하게 서술되어 있고, 의사 인력이 부족한 지역사회에서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의료행위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들어 지속해서 법안 제정을 요구해왔다.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간호사의 역할이 단순한 환자 간호에서 지역사회 방문건강관리, 만성질환 관리 등으로 넓어졌기 때문에 폭넓은 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김영경 대한간호협회 회장은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과 동일하게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정했기 때문에 ‘지역사회’라는 단어가 포함돼도 의사의 지도를 벗어나 독자적 진료를 할 수 없다”며 “간단한 의료행위조차 할 수 없도록 제한된 법을 시정하려면 지역사회라는 문구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현행 의료법상에서는 지역사회에 소속된 행정복지센터 간호사가 환자를 찾아가 혈압, 혈당을 체크하는 것도 법 위반 소지가 있다.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지역사회까지 확대될 경우 기존 병원에서 간호사의 이탈이 심화하고, 요양보호사나 임상병리사 등 타 의료직무의 업무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도 간호법 반대 근거 중 하나다. 간호사가 지역사회 내에서 의료활동을 하게 되면 응급구조사나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등이 수행하던 의료업무까지 맡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현재 임상병리사만이 할 수 있는 심전도 측정 및 전송 등의 업무를 간호사가 맡으면 임상병리사 등 소수 직역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간호단체에서는 더 나은 의료·요양·돌봄 서비스 제공을 위해 간호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이 부분은 간호법이 아닌 건강보험법이나 장기요양보험법을 개정해 손볼 영역”이라며 “타 직역과 충분히 소통하면서 해결해야지, 숙원사업이라는 이유로 독단적으로 밀고 나가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열된 찬반 논란이 벌어지는데 대해 익명을 요청한 의료계 관계자는 “초고령화 시대에 돌봄 서비스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사와 간호사의 힘싸움아니겠냐”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간병·돌봄을 위한 사회보장인 ‘개호보험’에 지난해 500만명을 대상으로 130조원을 지출했다. 그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우리나라에서도 노인 돌봄 서비스를 활성화하려면 간호사의 방문간호 단독 개업도 고려해 봄 직하다”며 “간호사의 업무 부문을 의료법에 두기보다 간호법에 두는 것이 법률 개정이 더 수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대한간호협회 간호법제정특위 신경림 위원장은 지난 2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의료기관 개설을 담은 법률이 의료법이고, 거기에 간호사에게는 개설권이 없는데 간호법안을 내니 ‘의료기관을 개설하려는 것이 아니냐’고 뒤집어씌운다”며 “앞으로 간호법에 개설권이 생기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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