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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제주 과거사, 완전하지 못해 현재진행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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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5호 25면

오동진의 시네마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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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영화에게 어떤 존재인가. 아니 영화는 제주도에게 어떤 존재인가. 둘은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열애와 증오를 반복해 왔다.

오랜 스타이고 기성층에게 인기가 높은 고두심 주연의 2020년 작 ‘빛나는 순간’은 제주와 뭍, 제주와 영화, 제주와 제주 아닌 다른 것의 심상찮은 관계의 전개를 보여 주려 애쓴다. ‘빛나는 순간’은 사실 멜로영화이다. 그런데 이 러브 스토리는 범상치 않다. 늙은 해녀와 젊은 다큐멘터리 감독 남자의 연애 얘기이기 때문이다. 둘은 서른 살 차이의 연상연하 남녀이다. 서울에서 온 PD 경훈(지현우)은 오랜 경력의 해녀 진옥(고두심)을 취재하고 영상에 담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해녀의 성격이 유난히 까탈스럽고 거세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에 빠진 경훈을 진옥이 구해주는 것을 계기로 둘은 급속도로 마음을 연다. 그리고 약간은 ‘살 떨리는’ 연애를 시작한다. 나이가 아주 많은 여자, 그것도 ‘촌티가 덕지덕지 나는’ 여자와 서울의 젊은 남자가 제주 동굴에서 키스를 한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관객들의 마음도 심란해진다. 과연 저 사랑이 실현될 수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경훈의 선배는 둘의 얘기를 듣고(경훈은 마치 다른 사람의 얘기인 것처럼 자신의 연애사실을 알린다. ‘이런 일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라는 식으로) 이렇게 얘기한다. “아이 씨. 역겹다 역겨워.”

제주사 정면으로 다룬 ‘지슬’ ‘비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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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멜로 영화의 짧은 에피소드인 것 같지만 기이하게도 두 남자의 대화는 제주도와 제주도가 아닌 것의 ‘사람·사회·역사·풍습’의 모든 감각적 차이를 드러낸다. 어쩌면 제주도의 지난 70년간의 ‘남루하고 비참했던’ 역사를 어떤 사람, 곧 경훈은 새롭고 파격적인 사랑으로 감싸 안으려고 하고 어떤 사람들, 곧 경훈의 선배 같은 사람들은 여전히 극단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거리를 두려 하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제주가 보다 직접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알고 보면 그리 오래된 얘기가 아니다. 제주의 역사를 정면으로 다룬 대표적인 영화로는 두 편이 있다. 하나는 오멸 감독이 만든 ‘지슬(2012)’, 또 한편은 설치미술 작가 임흥순의 역작 ‘비념(2012)’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두 작품도 어느덧 구식이 됐다. 그만큼 제주의 얘기가 시시각각, 이런저런 세파의 풍향에 따라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참혹했던 제주의 과거사는 영화 속에서 아직 완전하게, 모든 것 그대로, 담기거나 그려지지 않았다. 제주 역사에 대한 영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재일동포 감독 양영희가 만든 2022년 작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마치 영국의 사회파 감독 켄 로치의 영화 ‘빵과 장미’의 제목을 본 딴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빵이 없으면 안 되지만, 빵만 있어서는 안 되고 장미도 있어야 하지만, 역시 장미만 있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자전적 다큐멘터리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에서 양영희 감독의 모친 강정희씨는 일본인 사위 아라이 가오루에게 일종의 삼계탕을 만들어 준다. 근데 그건 그녀에게 매우 이례적인 변화에 속하는 것으로 이미 죽은 남편이 “일본인 사위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살아생전 조총련의 핵심 간부였고 두 부부는 막내딸 양영희만 빼놓고 위의 아들 셋을 모두 북으로 보낸 ‘철(鐵)의 친북 인사’였다. 이 부부가 아들 셋을 북한으로 보낸 것은 1959년 시작된 재일조선인북송사업에 따른 것이다. 북한의 이 ‘교활한’ 사업은 사회주의 정부의 물적 토대를 확보하려는 자구책에 따른 것이었던 바, 전후 피폐화된 경제를 위해 재일 한국인들의 막대한 자금을 동원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인민의 낙원을 건설한다는 미명하에 노동력의 기초로 이용하려 했던 일종의 ‘국가 작전’이었다. 그러나 이 사업은, 당연히, 치명적인 인권문제를 야기시켰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얘기는 재일동포 감독 최양일이 만들고 기타노 다케시 등이 출연했던 2004년 영화 ‘피와 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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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자본주의 사회 일본에서 자란 막내딸 양영희는 그런 부모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한창 성장기에는 어머니를 미워하기까지 했다. 생각해 보면 어떤 부모가 생떼 같은 자식을 인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돕게 하겠다며 자신의 품을 벗어나게 하겠는가. 자라서 영화를 만들게 된 양영희는 오로지 아빠와 엄마를 이해해 보기 위해, 또는 용서하기 위해 북한을 들락거리며 영화를 찍는다.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2006)’ ‘굿바이 평양(2011)’ 그리고 극영화 ‘가족의 나라(2013)’ 등 이른바 가족 3부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영희는 전후에, 그것도 일본에까지 와서 스스로 이산가족을 자초해 살아가는 엄마 강정희를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양영희는 엄마 강정희가 조총련 남편을 선택하고, 이들이 북한 체제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게 된 원류에 제주 역사가 지닌 4월의 비극이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강정희 여사는 제주 4·3을 피해 동생 둘을 ‘이고 지고’ 오사카로 밀항했다. 그때 강정희는 제주에서 약혼자를 잃고 약혼자의 부모와 자신의 친지 모두를 잃었다. 배 밑바닥에 숨어 현해탄을 건너면서 강정희는 제주를 잊고 남한을 잊으려 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결국에는 북한의 재일동포 북송사업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이어진 셈이다. 어린 양영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역사의 희생자였던 셈인데 다 크고 나서도 딸인 양영희는 그 실체적 진실과 역사의 본질을 끝내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치매에 걸려 거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모친을 휠체어에 태워 제주를 찾은 양영희는 제주 역사연구가인 사람들을 만나 말 그대로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한다. “여기까지 오고 나서야 이 문제가 얼마나 큰 것인지, (엄마에게는)얼마나 무섭고 참혹했던 일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치매 노인은 계속 무표정으로 앉아 있는데 이제 50대 후반이 된 딸 양영희는 급기야 소리 내어 펑펑 울기 시작한다. 제주도에서는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까지 약 3만 명의 도민이 희생됐다. 이때 일본 오사카 등지로 밀항한 인구만 1만5000명으로 추산되며 이들이 바로 강정희씨와 같은 실향민의 주축이 됐다.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한 모녀의 애틋한 삶의 이야기를 통해 한반도 분단의 이데올로기라는 거대한 담론으로 파고들어 간다.

제주와 육지 흔쾌하게 결합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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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멸의 날카로운 작품 ‘지슬’에서 지슬은 감자를 뜻하는 제주도 사투리이다. 미군의 소개령과 소탕 작전을 피해 사람들이 큰넓궤 동굴로 피해 들어갔을 때 지슬은 이들의 주식(主食)이었다. 영화의 배경이 된 1948년은 제주에서 한창 피의 희생이 시작되던 때이다. 큰넓궤는 넓은 동굴이라는 뜻과는 사뭇 다르게 입구와 통로가 매우 좁게 돼 있다. 한참을 몸을 숙이고 심지어 기어 들어가면 그제서야 앉아 있을 만한 규모의 동굴이 나타난다. 큰넓궤는 현재 유적지로 지정돼 있다.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에 있다.

1999년 장동건·고소영 부부가 출연한 영화 ‘연풍연가’는 나긋나긋한 척 하지만, 사실은 제주에서 새로운 연(緣)을 맺는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하고 복잡한 마음의 경로를 거쳐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남자(장동건)는 제주 말로 ‘육지 것’ 곧 서울 사람이다. 여자는 제주에서 관광가이드를 하는 제주 출신이다. 둘의 연애는 어긋남이 이어진다. 제주는 늘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건 ‘바깥’으로 인해 겪었던 혼란과 공포의 트라우마가 워낙 깊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여자의 엄마는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주 여자는 육지 남자를 만나면 안 돼!” ‘연풍연가’의 두 남녀는 결국 재회에 성공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연애와 결혼까지 이르렀는지는 다소 흐릿하게 그려진다. 이들의 연애처럼 제주와 육지는 아직 흔쾌하게 결합하지 못한 면이 있다. 어쩌면 제주 여자가 육지 남자를, 제주 남자가 육지 여자를 스스럼없이 연인으로 받아들일 때 제주의 상처는 조금씩 나아질런지도 모른다. 모든 역사의 문제는 구체성의 변증법으로 풀려 나간다. 모든 문제는 맺힌 자보다 맺히게 한 자들이 풀어야 한다. 자명한 이치이다. 세상은 빵과 장미, 수프와 이데올로기로 살아가야 하는 법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11@naver.com 연합뉴스·YTN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영화주간지 ‘FILM2.0’ 창간, ‘씨네버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컨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을 지냈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등 평론서와  에세이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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