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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 초월한 소시민, 장발장 같은 사람이 역사 움직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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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3호 26면

오동진의 시네마 역사

사진 1. 영화 ‘레 미제라블’(2012). [사진 인터넷 캡처]

사진 1. 영화 ‘레 미제라블’(2012). [사진 인터넷 캡처]

지난 3월 8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사용된 음악은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의 엔딩 장면에 나왔던 ‘민중의 노래’이다. ‘레 미제라블’은 영국의 톰 후퍼 감독이 만들고 휴 잭맨부터 앤 해서웨이, 아만다 사이프리드, 에디 레드메인 등 쟁쟁한 할리우드 스타들이 총 출동했던 작품이다. 한국에는 2012년 12월 19일 개봉했고 무려 600만명에 이르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국내 배급사(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 사장이 톰 후퍼, 휴 잭맨으로부터 ‘한국에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냐?’는 이메일을 받기도 했다. 당시 한국에선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박근혜 후보가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때였다.

반란 부추기는 ‘바리케이드 노래’

이번에 또 다시 ‘민중의 노래’가 주목을 끈 것은 아마도 다소 자극적인 가사 때문일 것이다. 일명 ‘바리케이드 노래’라고 불리는 이 곡의 가사는 민중의 반란을 선동하는 내용이다. “민중의 노래 소리가 들리는가/ 분노한 대중의 노래가 들리는가/ 이것은 민중의 노래이다/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을 사람~.”

이 노래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나온다. 시위의 주역인 청년 마리우스(에디 레드메인)를 위시해 전 출연진이 몽땅 출연해 온갖 잡동사니로 쌓아 올린 바리케이드에 올라 저 건너 군인들의 총칼을 마주하며 마지막 항전을 불태우는 장면이다. 특이한 것은 이미 극중에서 유명을 달리한 인물들이 모두 한 컷씩 나온다는 점이다. 아이 때문에 창녀가 됐다가 장발장의 도움을 받지만 결국 병마로 죽는 불우했던 팡틴(앤 해서웨이)을 비롯해, 마리우스를 짝사랑해 남몰래 시위대를 돕다 죽는 에포닌(사만다 바크스), 군인의 총탄에 사망함으로써 시위 청년들의 옥쇄 의지를 단일 대오로 묶어 내는 어린 소년 가브로셰(다니엘 허들스톤)까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모두 한 컷씩 스치듯 등장한다. 이 장면들이 꽤나 인상적이어서 영화 역사에 남을 만한 명장면으로 꼽힌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런데 정작 이 영화와 엔딩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사람들조차 대체 이 비극적 시위가 일어난 시기가 언제였는지, 프랑스 역사의 어떤 시점을 얘기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설명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건 빅토르 위고의 대하소설 『레 미제라블』이 워낙 방대해서 전체 윤곽을 따라 가기에 급급한 측면이 있기도 하고, 어린 시절 동화책 『장발장』으로 이 엄청난 소설에 대해 읽기를 끝낸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으로도 보인다. 여전히 소설이든 영화든 『레 미제라블』 하면, 빵 하나 훔쳐서 19년을 강제 노역하고 나와 시장으로 인생 역전한 남자 장발장의 이야기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소설 『레 미제라블』은 총 5부로 구성돼 있다. ‘팡틴’ ‘코제트’ ‘마리우스’ ‘플뤼메 거리의 서정시와 생 드니 거리의 서사시’ 그리고 마지막 장인 ‘장발장’이 그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레 미제라블』이 어느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지, 마리우스 등이 바리케이드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노래를 부른 때가 대체 몇 년도에 해당하느냐는 것이다.

사진 5. 영화 ‘나폴레옹’(1970). [사진 인터넷 캡처]

사진 5. 영화 ‘나폴레옹’(1970). [사진 인터넷 캡처]

톰 후퍼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면서 죽도록 고생했다는 후문이 돌고, 그 이유가 1830년대의 거리·건물·의상·분장 등을 고증하는 것 때문이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1830년대 전후가 이 드라마의 핵심 배경이자 소설 『레 미제라블』의 시대 배경이다. 이 시기는 프랑스 대혁명이 사실상 종반부로 돌입할 때이다. 프랑스 혁명은 1789년 바리케이드 감옥을 일군의 정치범들이 부수고 나오면서 시작돼 1848년 2월 혁명으로 제2 공화정을 수립하면서 일단락된다. 그렇지만 물론 이 혁명의 ‘완수’도 불과 3년 만에 자신들이 직접 뽑은 루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대통령이 독재를 시작하고 곧 나폴레옹 3세로 스스로를 칭하며 제정 시대로 복귀함으로써 무너진다. 프랑스 혁명은 거의 백 년에 걸쳐 이렇게 수십 번을 엎치락뒤치락함으로써 세상의 새로운 질서가 탄생하는 데 따른 산통(産痛)의 혼돈을 상징하는 역사적 대명사가 된다.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시위대가 맞서는 군대는 부르봉 왕가의 황실 근위대이다. 부르봉 왕가는 1814년 나폴레옹을 황제 자리에서 쫓아내고 다시 왕정을 복구한 황실 가문이다. 엘바 섬에 유배됐던 나폴레옹은 탈출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성공하지만 그의 마지막은 결국 100일 천하로 끝나고 마는데 그 결정적이고 직접적인 이유가 워털루 전투에서 패했기 때문이다. 이 전쟁은 나폴레옹 VS 반 나폴레옹 유럽 동맹군의 싸움이었으며, 나폴레옹을 몰아낸 프랑스는 결국 앙샹 레짐(ancien regime·구체제) 왕정으로 돌아갔고 그럼으로써 영화 속에서처럼 바리케이드 장면, 곧 시위대와 황실 병력 간 일촉즉발의 전투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귀족을 백색병 걸린 좀비로 묘사

워털루 전투를 다룬 영화로는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이 1970년에 만든 ‘나폴레옹(원제 워털루·Waterloo)’이 있다. 한국에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폰 트랩 대령으로 알려져 있는 크리스토머 플러머가 상대편 진영인 연합군의 웰링턴 장군 역으로 나온다. 나폴레옹 역은 로드 스타이거가 맡았으며 세계적인 감독이자 배우인 오손 웰즈는 루이 18세로 나온다. 이 영화는 현재 국내 OTT 웨이브에서 볼 수 있다. 스웨덴의 팝 그룹 아바의 노래 ‘워터루’의 가사 첫 줄 역시 나폴레옹의 패배를 기록하고 있다. “나폴레옹이 워터루에서 항복했지/ 내 운명도 꽤나 비슷하게 됐어/ 워터루! 난 패배했고 넌 이겼어~”

사실 소설 『레 미제라블』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1789년 시작된 프랑스 혁명의 시초부터 이후 1820~30년대인 소위 장발장의 시대와 이후 1870년 프랑스가 일명 ‘보불 전쟁(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패하고 파리 코뮌이라는 대혼란을 거쳐 바야흐로 공화정의 시대로 돌입해 현재까지 이르는 대장정의 근현대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진 2. 넷플릭스 시리즈 ‘라 레볼뤼시옹’(2020). [사진 인터넷 캡처]

사진 2. 넷플릭스 시리즈 ‘라 레볼뤼시옹’(2020). [사진 인터넷 캡처]

1789년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시작되는 프랑스 1차 혁명 얘기는 무수하게 많은 영화가 다루어 왔다. 가장 가깝게는 2020년에 나온 넷플릭스 10부작 프랑스 드라마 ‘라 레볼뤼시옹’이다. 이 드라마는 사실 한국의 ‘킹덤’을 살짝 차용한 것인바 당시 혁명 과정에서의 귀족을 백색병에 걸린 좀비로 묘사한다. 백색병은 일종의 허기병인데 결국 인육과 피를 먹어야 되는 병을 말한다. 18세기 후반 민중의 고혈을 빨았던 프랑스 귀족들을 우회적으로 묘사한 셈이다. 작품의 완성도에 비해 흥행은 성공하지 못해 시즌2 제작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시즌1은 마지막 10부에서 루이16세가 막 등장하는 것으로 끝난다. 루이16세와 그의 왕비 마리 앙뜨와네트는 강성 공화파인 자코뱅의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다.

그런데 왜 바스티유가 맨 처음 혁명의 근거지가 됐을까. 정치범을 비롯해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 자의적인 사법체계의 희생자로 득실 됐던 곳이기 때문이다.

사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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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모든 서막이 끝난 파리 코뮌의 이야기는 영국 출신 피터 왓킨스 감독이 2000년에 만든 345분짜리 역작 ‘코뮌’에 다 담겨져 있다. 1870년대 프로이센과의 전쟁 배상 문제로 굴종의 평화협상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협상은 왕당파가 주도했고 사람들은 두 가지를 반대하며 별도의 자체 정부를 수립한 후 시민군을 조직해 투쟁에 들어간다. 당시 사람들은 왕정으로의 복귀와 프로이센 굴욕 외교를 결사반대했다. 영화 ‘코뮌’은 일종의 다큐드라마로 기록영상보다는 현대적 분위기로 재현한 장면이 대부분이다. 코뮌을 2000년대식으로 재해석한 셈이다. 한국에서는 안타깝게도 현재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 없다.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셰예즈’는 이 모든 혼란이 지난 후 새로운 혼돈기(제국주의 시대와 1차 대전)를 앞두고 만들어진 것이다. 한 국가의 국가치고는 ‘피 묻은 깃발’ ‘자식들과 아내의 목을 따기 위해’ 등등 같은 섬뜩한 가사들이 등장하는데,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앞두고 진군하는 군사들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이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그렇게 피와 잔혹의 역사를 지닌 나라였다는 얘기인 셈이다.

사진 4. 영화 ’비독’(2001). [사진 인터넷 캡처]

사진 4. 영화 ’비독’(2001). [사진 인터넷 캡처]

제라르 드 빠르디외 주연의 2001년 영화 ‘비독’에서 등장인물들은 목로주점에 앉아 이런 얘기를 나눈다. “난 그 자가 왕당파인지도 몰랐어. 근데 내가 어느새 황제파인 거야?”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정치 세력은 크게 왕당파와 공화파로 나뉘었으며, 왕당파는 다시 부르봉파(왕정복고파), 오를레앙파(혁명 지지), 보나파르트파(황제파·나폴레옹 지지·혁명 지지)로 나뉘었고, 공화파는 보수주의·자유주의·사회주의자로 나뉜다. 영화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휴 잭맨)은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의붓딸 코제트(아만다 사이프리드)만을 생각하며 사는 딸 바보이자 소시민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프랑스나 여기나, 사실은 장발장 같은 사람이 대다수이다. 역사는 장발장 같은 사람이 움직인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11@naver.com  연합뉴스·YTN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영화주간지 ‘FILM2.0’ 창간, ‘씨네버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컨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을 지냈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등 평론서와  에세이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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