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과오 인정 인색한 일본, ‘뉘른베르크 재판’ 보고 배워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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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호 27면

오동진의 시네마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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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동원은 없었다. 다 끝난 일이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의 발언은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으며 좀비마냥 활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의 과거사 청산은 왜 이리 쉽사리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안하는 것일까. 그들은 진정 제국주의 시절을 과거의 ‘영광’으로만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건 자민당 지지자들뿐인가. 아니면 일본 모두가 그런 것인가. 적어도 문화 분야, 특히 영화 분야에서 만큼이라도 역사적 사죄는 진행됐을까.

1976년 만들어져서 실로 세상을 ‘한판 뒤집어 놓은’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은 적어도 군국주의에 대한 자신들 내부의 편향성, 그 페티쉬적 최애(最愛) 성향에 대해 성찰과 반성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1936년이 배경이고 아베 사다라는 이름의, 게이샤가 직업인 여인이 내연남의 성기를 갖고 다니다 경찰의 불심 검문에 걸려 체포됐었던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삼는다. 영화는 내내, 아니 온통 이 두 남녀의 애정 행각, (종종 실제 벌이는) 섹스 장면으로 도배돼 있어 국내에서는 오랜 동안 극장 개봉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작품이다. 당시 칸영화제에서 주요 부문인 감독주간에 상영되는 등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국제적 명성을 비약시켰던 작품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등 OTT에 언컷(uncut) 버전인 감독판이 올라 있지만 여전히 문제되는 장면은 블러 처리가 돼있다.

‘전쟁보다는 섹스가 낫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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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섹스 장면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여태껏 불멸의 영화로 남아 있는 것은 일본 내 군국주의적 정서를 다룬 오시마 나기사식 표현 방법, 그 시각 때문이다. 1930년대는 일본이 만주사변에서 중일 전쟁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특히 1936년이라면 중일 전쟁 한 해 전이다. 나라는 온통 징병의 군홧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의회와 정치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군부 권력이 점차 모든 것을 압박하던 시기였다. 일부 지식인들은 오히려 군부 권력에 편승해 광기의 프로파간다를 일삼았다. 이들은 언론과 학계를 장악하고 자신들의 권력욕을 확산시킬 계획을 차근차근 실현시켜 나갔다. 군부 자체도 통제파와 황제파가 대립해 피의 권력다툼을 벌였다. 황제파 중 일부 청년 위관 조직이 일으킨, 일명 5·15 사건 역시 1936년 벌어진 일이었다. 이 쿠데타는 무위로 끝났지만 이미 일본 군부는 정규군인 육군과 별개로 관동군(만주군)이라는 거대한 군사조직의 검은 야심이 일본과 전 세계에 위협적인 존재가 돼 버린 상태였다.

사람들은 무력했다. 무엇을 한다는 것에 염증을 일으키던 시대였다. ‘감각의 제국’의 주인공 이시다 기치조(후지 타츠야)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거리에는 연일 만주국으로 파병되는 군인들의 시가행진이 이어진다. 고급 요정을 하며 살아가는 이시다는 그 길가 한켠에서 행진을 흘끔거리며 서 있다. 그는 전쟁에 나서지 않는다. 사람들의 환호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가 하는 일은 자신의 기생들과 노닥거리며 사는 것이다. 그는 그게 좋다. 특히 근자에 만난 새로운 기생 아베 사다(마츠다 에이코)와 엄청난 탐닉에 빠진다. 그는 ‘전쟁보다는 섹스가 낫다’고 생각한다.

사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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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각의 제국’에는 오시마 나기사식 반파시즘의 구호가 담겨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는 한참 지난 시기에 만들어졌지만 당시 일본을 미쳐 돌아가게 만들었던 군국주의의 광풍을 성찰하고 질타하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사람들은 시대가 어두울수록 다른 광기를 찾아 나서며 섹스와 알코올과 마약에 빠져든다. 시대의 희생양들이지만 한편으로 보면 그건 그들이 스스로 찾아 나선 것이기도 하다. 의도적이면서 소극적인 저항이었던 셈이다. 비근했던 문화적 경향은 1969년 뉴욕 근교 베델 평원에서 벌어진 우드스톡 록페스티벌에서도 나타났는데 거기엔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청년들의 저항이 담겨져 있었다. 일본 반군국주의 영화의 특징은 다소 소심한 것이 특징이다. 직설법보다는 간접화법을 쓰며 정주행보다는 우회로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일본 내에 수십 년간 이어지는 군국주의 정서가 확고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영화는 지극히 다다이즘적 분위기를 풍기는 쪽을 택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이나 그의 인생을 직간접적으로 다루는 방식도 그 중 하나다.

1945년 패전 직후 일본의 몰락한 풍광을 그린 영화 ‘비용의 처’는 비록 2009년에 만들어진 현대 작품이지만 과거 전쟁을 겪었던 일본 내 지식인들의 내면이 얼마나 처절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비용의 처’는 다자이 오사무의 반(半)자전적 작품이다. 소설가 오타니(아사노 타다노부)는 꽤나 인정받는 작가지만 가끔씩 글을 쓰는 일 외에는 오로지 술과 여자에 빠져 산다. 그가 더욱 더 빠져 있는 것은 자살충동이다. 아내 사치(마츠 다카코)는 그런 남편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그녀는 결국 빚과 생활고를 이겨 내기 위해 갓난아이를 들쳐 업고 도쿄의 한 주점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결국 오타니는 다른 여자와 함께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비용의 처’에서 ‘비용’은 1400년대에 활동했던 프랑스 낭만시인의 이름이다. 시인의 삶은 아름다울 수 있지만 그의 아내의 삶은 비참할 수 있다. 국가와 국익은 늘 앞세워질 수 있지만 국민과 대중의 삶은 늘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1945년 직후 일본 사회가 무슨 생각을 했고, 군국주의가 남겨 놓은 생채기가 얼마나 깊고 쓰라린 것이었는가를 영화 ‘비용의 처’는 우회적이나마 낱낱이 고백하고 있다. 2009년 일본 영화계는 적어도 수십 년 전의 인물 다자이 오사무를 통해 당시의 역사적 과오를 되돌아 봤던 셈이다. 실제로 다자이 오사무는 1948년 애인과 함께 동반자살 했다. 오사무의 죽음 이후 많은 일본 젊은이들의 자살이 잇따랐다.

‘종전’이라는 표현, 반성 의미 퇴색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일본 군국주의를 비교적 직접적인 언사로 비판한 작품은 최신작에서 찾아지는데 구로사와 기요시의 2021년작 ‘스파이의 아내’가 그것이다. 1940년이 배경이고 이미 중일전쟁 때지만 일본에선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군수 경기가 이어지고 있던 때다. 고베의 무역상 유사쿠(다카하시 잇세이)는 아내 사토코(아오이 유우)와 부유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그가 만주국으로 출장을 다녀온 후부터 점점 수상한 짓을 하기 시작한다. 유사쿠의 사업 파트너는 게다가 영국인이다. 유사쿠는 필사적으로 영사된 필름을 국외로 반출하려 하고 ‘그 비밀’을 알게 된 사토코 역시 그의 아내로서 ‘그 일’을 돕기 시작한다.

극장 개봉 전 NHK 스페셜 드라마로 먼저 방영됐던 ‘스파이의 아내’는 그러나, 몇 가지 지점에서 오류를 범했는데 그 중 하나가 여전히 패전이란 단어보다 종전이란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건 일본인들에게 매우 중요한데 1945년의 종전은 일본 천황이 스스로 전쟁 중단을 선언한 것이지 실제로는 패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전히 과오에 대한 반성보다는 자기변명이 심한 용어인데 NHK작이어서 그런지 이 단어의 기호가 갖는 상징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스파이의 아내’는 군국주의 파시스트의 시대에 일본에서도 저항의 인물들, 올바른 인간관과 정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음을 보여준 작품이다. 기요시 감독이 얘기하고 싶었던 것 역시, 그렇다면 현재도 그런 인물들이 일본사회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보인다.

일본 영화계가 일본의 군국주의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 국내에 소개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2016년 하라다 마사토 감독이 만든 ‘일본 패망 하루 전’이란 작품은 8월15일 항복 선언 직전 하루 전, 아나미 고레지카(야쿠쇼 코우지) 육군대신을 중심으로 이를 막으려는 군인들의 쿠데타와 역쿠테타의 얘기를 그린 내용이다. 도조 히데키 등 전범들을 다룬 영화 ‘동경심판’은 일본산(産)이 아니고 중국산이다. 미국의 스탠리 크레이머가 1961년 만든 ‘뉘른베르크 재판’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그렇다. 일본은 여전히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는 데 있어 한참 떨어진다. 그래서 늘 세계를 분개하게 만든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11@naver.com 연합뉴스·YTN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영화주간지 ‘FILM2.0’ 창간, ‘씨네버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컨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을 지냈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등 평론서와  에세이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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