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이하 ‘스즈메’)이 지난 주말 43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 추세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444만)를 앞질러, 한국 개봉 일본 영화 흥행 1위에 오를 전망이다. ‘스즈메’는 ‘너의 이름은.’(2017, 381만), ‘날씨의 아이’(2019, 74만)에 이은 신카이의 재난 3부작 마지막 편이다. 세 작품 모두 일본에서 1000만 관객을 모았고, ‘스즈메’는 중국에서 2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신카이 작품에 대한 뜨거운 반응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세계’를 하나의 키워드로 꼽을 수 있다. 그에게 세계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프레임이다. 두 세계가 충돌하거나, 숨겨진 세계가 드러나거나, 각자의 세계에 속한 두 사람이 공감하면서 그의 드라마는 시작되고 완성된다.
‘너의 이름은.’의 모티브가 된 광고 ‘크로스로드’(2014)에서 신카이는 만날 일 없는 두 사람이 만나는 과정을 러닝타임 2분에 담아낸다. 서로 다른 세상에 속한 남녀의 조우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작품은 ‘별의 목소리’(2002)다. 지구의 소년과 먼 우주로 떠난 소녀가 휴대전화 문자로 교신한다. 문자가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점점 늘어나고, 15살 때 소녀가 보낸 문자는 소년이 24살 청년이 됐을 때 도착한다. ‘너의 이름은.’에선 시골에 사는 미츠하와 도쿄에 사는 타키가 3년의 시차를 두고 서로 몸이 바뀐다. ‘초속 5센티미터’(2007)와 ‘언어의 정원’(2013)도 남녀가 속한 세계가 달라 생겨나는 관계의 불가능을 보여준다.
신카이는 종종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시작은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2004)인데, 이 영화엔 미스테리한 거대한 탑이 나온다. ‘별을 쫓는 아이’(2011)엔 죽은 자를 만날 수 있는 전설의 도시 아가르타가 등장한다. ‘날씨의 아이’에선 구름 속에 존재하는 물의 생태계다. ‘스즈메’엔 재난을 만드는 거대한 붉은 기운 ‘미미즈’와 이를 막으려는 ‘토지시’의 세계가 있다.
이들 세계는 숨겨져 있어 보이지 않지만, 판타지의 공간이 되어 현실과 충돌한다. 이렇게 보면 ‘신카이 월드’는 20여년 전부터 반복과 변주를 통해 만들어진 비슷한 작품 세계처럼 느껴진다. 빗방울, 작은 빛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 움직임과 질감을 담아내는 비주얼은 실사보다 더 섬세하다. 이런 작화 방식이 ‘신카이 월드’를 구축하는 또 하나의 기둥이다.
특히 재난 3부작으로 불리는 최근 세 편의 영화는 그의 작품 세계를 확장했다. 아무래도 신카이의 시야가 넓어지게 된 계기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다.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건 야만”이라 했던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처럼, 그도 인류사적 비극을 목도한 뒤 예술가의 책무에 눈을 떴다. ‘거대 재난이 황폐화시킨 현실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화두를 작품에 담기 시작했다.
그 시작인 ‘너의 이름은.’은 동일본 대지진에 대한 메타포(은유)다. 시간을 뛰어넘어서라도 재난을 막아보려는 두 주인공의 의지에 전 세계가 호응했다. 특히 한국 관객이 크게 공감한 건 신카이 감독이 밝혔듯 세월호 사건과의 접점(“안심하고 가만히 있으라”란 대사) 때문이다. ‘날씨의 아이’는 더 나아간다. 주인공인 가출 소년 호다카는 재난이 다시 시작되더라도 사랑하는 소녀 히나와 살아가겠다고 결심한다. ‘스즈메’는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동일본 대지진에 접근해 집단적 트라우마를 어루만진다. 재난으로 엄마를 잃은 17세 소녀 스즈메는 소타와 함께 지진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결국 어릴 적 자신과 만나 그 아이를 위로한다.
이 영화가 재난 3부작의 끝맺음으로 의미 있는 점은, 다시 떠올리기조차 고통스러운 동일본 대지진과 그 폐허의 현장을 끄집어내 치유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상처가 남았는데도 너무 빨리 잊힌 비극적 과거에 대한 애도이기도 하다. 대재난은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누구도 재난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로 인한 상실감은 인류가 공유하는 보편적 감정이다. 그렇기에 신카이의 최근작들이 전 세계에 긴 여운과 정서적 울림을 주는 게 아닐까. 그의 노력이 흥행 성적 이상 평가받아야 할 이유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시네마테크 단체인 ‘문화학교 서울’에서 영화를 시작했다. 영화 월간지 ‘스크린’ 취재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했다. 현재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