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스즈메의 문단속’이 10일 누적 관객수 434만명을 돌파하며 역대 국내 개봉 일본영화 흥행 1위를 눈앞에 뒀다. [사진 쇼박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304/11/9f3b6e95-fc75-4969-904d-bd494bd8154e.jpg)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스즈메의 문단속’이 10일 누적 관객수 434만명을 돌파하며 역대 국내 개봉 일본영화 흥행 1위를 눈앞에 뒀다. [사진 쇼박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이하 ‘스즈메’)이 지난 주말 43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 추세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444만)를 앞질러, 한국 개봉 일본 영화 흥행 1위에 오를 전망이다. ‘스즈메’는 ‘너의 이름은.’(2017, 381만), ‘날씨의 아이’(2019, 74만)에 이은 신카이의 재난 3부작 마지막 편이다. 세 작품 모두 일본에서 1000만 관객을 모았고, ‘스즈메’는 중국에서 2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신카이 작품에 대한 뜨거운 반응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세계’를 하나의 키워드로 꼽을 수 있다. 그에게 세계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프레임이다. 두 세계가 충돌하거나, 숨겨진 세계가 드러나거나, 각자의 세계에 속한 두 사람이 공감하면서 그의 드라마는 시작되고 완성된다.
![‘너의 이름은.’에서도 재난을 마주한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며 집단적 트라우마를 어루만졌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304/11/659d1411-42cb-49fd-982d-9d6d9d075d98.jpg)
‘너의 이름은.’에서도 재난을 마주한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며 집단적 트라우마를 어루만졌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너의 이름은.’의 모티브가 된 광고 ‘크로스로드’(2014)에서 신카이는 만날 일 없는 두 사람이 만나는 과정을 러닝타임 2분에 담아낸다. 서로 다른 세상에 속한 남녀의 조우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작품은 ‘별의 목소리’(2002)다. 지구의 소년과 먼 우주로 떠난 소녀가 휴대전화 문자로 교신한다. 문자가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점점 늘어나고, 15살 때 소녀가 보낸 문자는 소년이 24살 청년이 됐을 때 도착한다. ‘너의 이름은.’에선 시골에 사는 미츠하와 도쿄에 사는 타키가 3년의 시차를 두고 서로 몸이 바뀐다. ‘초속 5센티미터’(2007)와 ‘언어의 정원’(2013)도 남녀가 속한 세계가 달라 생겨나는 관계의 불가능을 보여준다.
신카이는 종종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시작은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2004)인데, 이 영화엔 미스테리한 거대한 탑이 나온다. ‘별을 쫓는 아이’(2011)엔 죽은 자를 만날 수 있는 전설의 도시 아가르타가 등장한다. ‘날씨의 아이’에선 구름 속에 존재하는 물의 생태계다. ‘스즈메’엔 재난을 만드는 거대한 붉은 기운 ‘미미즈’와 이를 막으려는 ‘토지시’의 세계가 있다.
![‘날씨의 아이’에서도 재난을 마주한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며 집단적 트라우마를 어루만졌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304/11/abaf06ae-c755-43ee-bf9d-c4193b584a06.jpg)
‘날씨의 아이’에서도 재난을 마주한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며 집단적 트라우마를 어루만졌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이들 세계는 숨겨져 있어 보이지 않지만, 판타지의 공간이 되어 현실과 충돌한다. 이렇게 보면 ‘신카이 월드’는 20여년 전부터 반복과 변주를 통해 만들어진 비슷한 작품 세계처럼 느껴진다. 빗방울, 작은 빛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 움직임과 질감을 담아내는 비주얼은 실사보다 더 섬세하다. 이런 작화 방식이 ‘신카이 월드’를 구축하는 또 하나의 기둥이다.
특히 재난 3부작으로 불리는 최근 세 편의 영화는 그의 작품 세계를 확장했다. 아무래도 신카이의 시야가 넓어지게 된 계기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다.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건 야만”이라 했던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처럼, 그도 인류사적 비극을 목도한 뒤 예술가의 책무에 눈을 떴다. ‘거대 재난이 황폐화시킨 현실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화두를 작품에 담기 시작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304/11/7d0fc551-2a7c-4696-ae82-b04fb4fce9b7.jpg)
신카이 마코토 감독. [연합뉴스]
그 시작인 ‘너의 이름은.’은 동일본 대지진에 대한 메타포(은유)다. 시간을 뛰어넘어서라도 재난을 막아보려는 두 주인공의 의지에 전 세계가 호응했다. 특히 한국 관객이 크게 공감한 건 신카이 감독이 밝혔듯 세월호 사건과의 접점(“안심하고 가만히 있으라”란 대사) 때문이다. ‘날씨의 아이’는 더 나아간다. 주인공인 가출 소년 호다카는 재난이 다시 시작되더라도 사랑하는 소녀 히나와 살아가겠다고 결심한다. ‘스즈메’는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동일본 대지진에 접근해 집단적 트라우마를 어루만진다. 재난으로 엄마를 잃은 17세 소녀 스즈메는 소타와 함께 지진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결국 어릴 적 자신과 만나 그 아이를 위로한다.
이 영화가 재난 3부작의 끝맺음으로 의미 있는 점은, 다시 떠올리기조차 고통스러운 동일본 대지진과 그 폐허의 현장을 끄집어내 치유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상처가 남았는데도 너무 빨리 잊힌 비극적 과거에 대한 애도이기도 하다. 대재난은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누구도 재난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로 인한 상실감은 인류가 공유하는 보편적 감정이다. 그렇기에 신카이의 최근작들이 전 세계에 긴 여운과 정서적 울림을 주는 게 아닐까. 그의 노력이 흥행 성적 이상 평가받아야 할 이유다.

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시네마테크 단체인 ‘문화학교 서울’에서 영화를 시작했다. 영화 월간지 ‘스크린’ 취재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했다. 현재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