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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 논설위원이 간다

30년 복역 사형수 '왕국회관 방화범' 석방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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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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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6개월 전인 1992년 10월 4일 강원도 원주시 우산동 상가건물 2층에서 불이 났다. 2층에는 여호와의 증인 예배당 ‘왕국회관’이 있었다. 불이 삽시간에 번졌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나올 수 있는 문이 좁았던 데다 그쪽이 발화지점이라 피해자가 많았다. 15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모두 여호와의 증인 신도였다.

1992년 10월의 원주시 왕국회관 화재 사건을 보도한 신문 지면.

1992년 10월의 원주시 왕국회관 화재 사건을 보도한 신문 지면.

불을 낸 이는 대한지적공사(현 한국국토정보공사) 원주출장소 직원이었던 원언식(당시 34세)씨였다. 그는 왕국회관 앞에서 아내를 내놓으라고 소리 지르다가 가져간 휘발유를 출입구 주변에 뿌리고 불을 붙였다. 그는 현장에서 도주했으나 범행 당일에 경찰에 자수했다. 범행 동기는 부인의 신앙(여호와의 증인)과 관련한 가정불화로 확인됐다. 부인 신모씨는 원씨가 왕국회관 앞에서 고함을 칠 때 피신해 화를 면했다. 1982년에 결혼한 원씨와 신씨에게는 딸 둘이 있었다.

‘왕국회관 화재 사건’을 일으킨 원씨는 방화치사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수감 중에 간암이 발병해 극도로 건강이 나빠졌지만 간 절제 수술로 목숨을 건졌다. 현재 광주교도소에 있다. 불교 신자였으나 개신교로 개종했다.

형법 '사형 30년 미집행 땐 시효 완성'

원씨는 현재 한국에서 최장기 복역 사형수다. 지금까지 30년 6개월 구금 생활을 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7년 12월에 사형수 23명에 대한 형이 집행됐는데, 원씨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 뒤 사형 집행은 없었고, 한국은 사실상 사형폐지국이 됐다.

이런 원씨가 최근 법조계 일각의 주목을 받고 있다. 수개월 뒤에 그를 석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한국 형법에 ‘형의 집행에 대한 시효’ 규정이 있고, 사형은 확정된 때로부터 30년이 시효로 돼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에서 원씨의 형이 확정된 것은 1993년 11월 23일이다. 약 7개월 뒤에 30년이 된다.

선고된 형의 시효를 규정한 형법 조문.

선고된 형의 시효를 규정한 형법 조문.

형법 77조에 ‘형을 선고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시효가 완성되면 그 집행이 면제된다’고 적혀 있다. 78조에는 ‘시효는 형을 선고하는 재판이 확정된 후 그 집행을 받지 아니하고 다음 각호의 구분에 따른 기간이 지나면 완성된다. 1. 사형: 30년, 2. 무기의 징역 또는 금고: 20년 …’이라고 쓰여 있다. 이 두 조항을 그대로 적용하면 원씨의 형(사형)은 오는 11월 22일에 면제된다.

‘형 집행 면제’가 석방을 의미하는 것일까?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은 “사형에서의 형은 말 그대로 사형이다. 형 집행 면제는 사형 집행에서 면제된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 형법 77·78조를 적용할 경우 사형수 신분에서 벗어나게 되지만 그것이 곧바로 석방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사형 집행에서 면제된 사형수를 계속 구금하려면 정부가 이에 대한 법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문제를 안게 된다”고 말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의 한국 법률 체계에서 사형수 구금의 법적인 근거는 형 집행을 위한 격리다. 따라서 사형 면제가 되면 구금을 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진다. 석방하는 게 법에는 맞는다”고 주장했다.

당사자도 상황 알고 석방 기대 

원씨도 바깥의 이런 현실을 알고 있을까? 사형제 연구를 계기로 원씨와 연락하는 사이가 된 이덕인 부산과학기술대 교수에 따르면 원씨가 형법 조항들을 알고 있으며 석방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다. 만약 석방되지 않으면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적도 있다.

 왕국회관 화재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있는 원언식씨가 이덕인 부산과학기술대 교수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 형 확정 뒤 30년이 지나면 형 시효가 완성되는 것으로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왕국회관 화재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있는 원언식씨가 이덕인 부산과학기술대 교수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 형 확정 뒤 30년이 지나면 형 시효가 완성되는 것으로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법무부는 사형수 구금은 사형 집행 과정의 한 부분이므로 구금됐을 때부터 시효 계산이 정지된다고 입장을 밝혔다. 원씨의 경우 78조의 ‘그 집행을 받지 아니하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씨 구금을 사형을 집행하는 과정의 일부로 본다는 뜻이다. 이에 차진아 교수는 “수용시설 수감이 사형 집행의 한 부분이라는 것은 형 집행 기관의 편의주의적 해석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형법 79조를 근거로 원씨 형의 시효가 끝나가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측도 있다. 79조에 ‘시효는 형의 집행 유예나 정지 또는 가석방 기타 집행할 수 없는 기간은 진행되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판사 출신인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원씨의 경우 형(사형)의 집행의 유예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현직 고법 부장판사는 “형 집행 정지 또는 유예는 법원 명령 등의 공식 절차에 의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사형 집행 대기 상태를 유예로 보는 것은 정확한 법 해석은 아니다”고 의견을 밝혔다.

일본은 형법 고쳐 논란 소지 없애 

이처럼 ‘사형 30년 시효’ 논란이 생긴 것은 우리 법에 사형제가 살아있으나 실제로는 사형을 폐지했기 때문이다. 형법 77·78조는 전쟁·재난·탈옥 등으로 수감자들이 수형시설에서 이탈했을 경우 일정 기간이 지나면 죄를 사해준다는 뜻에서 만든 조항이다. 법을 만들 때 사형수가 30년 이상 구금되는 현재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법에는 사형제를 그대로 두고, 현실에서는 사형을 없애면서 이런 애매한 상황이 발생했다.

원씨를 시작으로 앞으로 계속 30년 복역 사형수가 생겨난다. 그들을 사회로 풀어주는 것에 대다수 국민이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무기 징역을 선고받은 이들과의 형평 문제도 발생한다. 과거 일본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일었는데, 일본 의회가 2010년에 사형에는 집행 시효가 적용되지 않도록 형법을 고쳐 문제를 없앴다. 그 직후 한국 법조계에서도 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됐다. 관련 논문도 나왔다. 그러나 우리 정부나 국회는 방관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이 참에 사형 대체 형벌 논의하자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법무정책연구실장-

사형 위헌성 논란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장기간 침묵하고 있다. 2019년 헌법소원과 관련해서 지난해 7월 공개변론을 진행했지만,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러는 사이 1993년에 사형이 확정됐으나 미집행 상태인 사형수가 올해 11월이면 구금 30년을 맞는다. 우리 형법(77·78조)에 따라 그가 선고받은 사형의 시효가 완성된다.

형법 문언을 그대로 해석하면 시효가 완성되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형법 79조 1항(‘시효는 형의 집행 유예나 정지 또는 가석방 기타 집행할 수 없는 기간은 진행되지 아니한다’) 또는 80조(‘시효는 사형, 징역, 금고와 구류에서는 수형자를 체포함으로 인하여 중단된다’)를 내세운다.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30일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그동안 ‘집행의 유예나 정지 또는 가석방’에 대한 결정이나 선고는 없었다. 지난 시간을 ‘기타 집행할 수 없는 기간’으로 보기도 어렵다. 형이 집행되지 아니한 사형 확정자의 미결 구금 상태가 ‘체포’와 유사하므로 시효가 중단된다고 할 여지가 있지만, 80조는 형의 확정 선고 이후 별도의
‘체포’를 전제로 규정됐다는 점 등에 비춰 볼 때 사형수에게 80조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사형 확정판결 이후 통상 짧으면 6개월 길어도 3년 안에 형이 집행되던 과거에는 오늘날과 같은 오랜 기간의 미집행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당시 입법자는 탈옥하거나 도주함으로써 사형 집행이 30년간 불가능할 경우, 시간의 힘(Macht der Zeit)으로 국가형벌권이 소멸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형 확정자가 도주한 경우’만으로 80조를 축소 해석할 수 없다. 형집행법상 (기결수인) 수형자와 (미결수인) 사형 확정자는 다르다는 점에서 수형자에게 적용하는 80조를 이 사안에 적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우리 헌법의 이념과 가치에 따라 ‘in dubio pro libertate’(의심스러울 때는 자유의 입장에서 판단)가 적용돼야 하기에 사형 확정자가 구금된 상태에서 30년이 지나면 시효가 완성된다고 봐야 한다.

30년 시효가 완성되면 사형수가 당장 석방될까? 그렇지는 않다. 형의 시효 완성에 따른 효과는 그 집행이 면제되는 것이다. 형의 집행은 그의 죽음이다. 따라서 사형 시효가 완성되어 형이 면제된다는 것은 국가가 더는 집행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죽일 수 없음을 의미한다. 여전히 구금이 가능하지만, 그 구금을 정당화할 수 있는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한계가 있다.

법률 해석만으로는 이러한 모순과 충돌을 해결할 수 없을뿐더러, 법적 안정성과 법치 국가적 예견 가능성을 확보할 수 없다. 이와 동일한 사안에서 일본은 2010년 형법 개정으로 사형에 대한 형의 시효를 배제했고, 1949년 사형을 폐지한 독일은 대체 형벌인 무기자유형에 대한 집행 시효를 없앴다. 앞으로도 유사한 사안이 계속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법을 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수많은 비판과 모순에 직면한 사형제에 대해 전향적 태도를 갖고, 대체 형벌에 대한 제도적 상상력을 펼쳐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