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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성탁 논설위원이 간다

“소선구제 유지하되 연동형 비례대표 배분 방식 바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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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선거제도 어떻게 바꿀까, 20년 연구 전문가의 제언

김성탁 논설위원

김성탁 논설위원

선거구제 개편을 위해 국회의원 모두가 참여하는 전원위원회가 10~13일 국회에서 열린다. 2020년 4월 치른 21대 총선에서 위성정당 출현 등의 문제가 드러남에 따라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그러나 전원위를 거친다고 정당 간 합의가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전원위에선 국회 정치개혁 특위가 제안한 결의안을 토대로 논의하는데,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제안한 안에는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안은 빠졌다. 300명 유지를 전제로 3가지 안이 올라와 있다.

지역구에서 한 명만 당선돼 생기는 ‘승자독식’ 부작용을 고려해 개편안에는 한 지역구에서 여러 명을 뽑는 중대선거구제가 포함됐다. 하지만 여론은 좋지 않다. 한국행정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소선구제 유지 의견이 55.4%로 절반 이상이었다. 거대 양당 체제에서 다당제로 바꾸기 위해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자는 데에도 부정적인 의견이 82.2%다.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은 3일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에서 “현행 선거구제가 좋다는 반응이 많은 것은 새로 제안된 제도들이 국민에게는 생소하기 때문”이라며 “정치인이 자기들끼리 이해관계를 맞추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고 말했다.

전원위에서 논의될 개편안을 평가하고 장·단점을 파악하기 위해 국회에서 20년 가까이 선거제도를 연구한 전문가의 의견을 들었다. 김종갑 전 국회입법조사처 정치의회팀 입법조사관은 2004년부터 국회에서 선거제도를 조사·연구하며 관련 보고서를 발간해왔다. 독일에서 세계 선거제도를 분석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2021년 말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긴 뒤 선거법 개편안 연구를 진행 중이다.

국회 전원위 올라온 3개안 따져보니…“대선거구제는 시기상조”
대도시서만 3~5인 선출 땐 비례 늘 수 있어…민주당 동의가 관건
지역구 의석수 고려 없이 정당 득표로 비례 배분하면 과거 회귀 꼴
정당득표보다 과대 의석 얻는 현상 막을 연동형 보정 방식 필요
“비례 배분 때 초과 의석 확보 정당 빼고 과소 현상 큰 곳부터 주자”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의 득실

국회가 오는 10~13일 전원위원회를 열고 선거구제 개편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국회가 오는 10~13일 전원위원회를 열고 선거구제 개편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이 제안한 개편안은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다.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과 광역·특례시에서만 현행 지역구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로 바꿔 한 선거구에서 3~5인을 뽑자는 것이다. 인구가 적은 농촌 지역은 너무 넓은 지역이 한데 묶이니 소선구제를 유지한다. 현재 비례대표는 전국 단위 정당 득표율을 근거로 배분하는데, 이를 전국 6개 권역별로 바꾸자고 했다. 또 비례대표 47석을 배분할 때 정당별 지역구 확보 의석수 등을 반영해 조정하는 현행 준연동형을 폐지하고,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병립형으로 돌리자는 안이다.

김진표 국회의장 등은 도농복합형 선거구가 되면 지역구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비례대표 의석을 늘릴 수 있다고 본다. 4명을 뽑던 소선거구를 하나로 합쳐 3명을 뽑고, 1석은 비례대표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도농복합형 선거구제는 국민의힘에 유리한 면이 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지역구 기준으로 49.9%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41.5%를 얻었다. 하지만 의석수는 163석 대 84석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승자독식 소선구제의 영향이었는데 지난 총선 득표율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중대선거구제였다면 더불어민주당의 서울 획득 의석이 40%가량 줄었을 것이라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김 전 조사관은 이 개편안의 합의 가능성에 대해 “민주당이 받아들이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시 지역 중대선거구에서 3~5명 중 몇 명을 뽑을 것인지 등 선거구 사이즈에 따른 유불리를 따질 것”이라고 봤다. 선거구가 어떻게 합쳐질 것인지에 따른 이해득실도 따지게 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의석수와 상관없이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나눠주기 때문에 지금 제도보다는 거대 양당에 더 유리하다. 다만 권역에 따라 소수 정당의 득표율이 높으면 비례 확보 여지가 있다.

민주당이 제안한 개편안에는 한 지역구에서 의원 4~7명을 뽑는 대선거구제가 포함됐다. 각 정당이 순위를 정하지 않은 후보자 명부를 제출하면, 유권자가 하나의 정당과 그 정당에서 추천한 후보 중 한 명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비례대표 의석수는 전국 단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나눠주자는 것으로, 현행 준연동형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방식이다. 김 전 조사관은 “국내에서 논의조차 해보지 않았던 제도이고 학계에서만 다뤄왔던 사안”이라며 “정당 내부 공천 권한이 민주화되는 면이 있지만, 너무 급격한 제도 변화로 선거 제도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어 도입은 시기상조”라고 평가했다.

연동형 없애면 거대 양당만 좋은 일

민주당이 제안한 또 다른 안은 현행 소선구제를 유지하되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눠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이 들어있다. 권역별로 비례대표 의석을 정하되, 그 의석수는 권역 내 정당 득표율에 따라 나눠주면서 보정하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전국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현행 준연동형을 권역별로 나눠 실시하자는 안이다. 현행 선거제도와 가장 유사한 방안이다.

지금 제도는 지역구를 소선구제로 뽑되 비례대표 47석 중 30석은 지역구에서 정당득표율보다 초과해서 의석을 가진 정당은 빼고 나머지 정당에 나눠준다. 이러면 지역구 의석을 많이 얻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비례 의석을 가져갈 수 없다. 그러나 17석을 따로 떼어 거대 정당도 일부를 가져가도록 배분하는 장치를 뒀다. 그래서 준연동형이란 용어를 쓴다. 직전 선거법 개정 당시 17석을 따로 둬 거대 정당을 배려하는 방식은 21대 총선에만 적용키로 했는데, 민주당은 17석 배려를 내년 4월 22대 총선에서 어떻게 할 지는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이 내놓은 이 안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전국 단위가 아니라 권역별로 바꾼다는 것만 다르다. 김 전 조사관은 “비례대표를 권역별로 바꾸면 영·호남 간 지역구도를 완화하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전 조사관은 “일부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호남에서 비례 한 석 정도를 얻고, 민주당은 부산·울산·경남에서 1석, 대구·경북에서 3석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나왔다”고 소개했다. 국민의힘이 호남에서 얻는 정당득표에 비해 영남 지역에서 민주당이 확보하는 정당득표가 높기 때문이다. 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에서 손해를 볼 가능성이 일부 있는 국민의힘의 반응이 관건으로 꼽힌다.

“불판 엎지 말고 양당 구도 속 개편”

김 전 조사관은 “현행 선거제도와 구조적으로 연결된 세 번째 민주당 안이 바람직한 측면이 크지만, 비례대표 의석 배분의 구체적인 내용은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소선거구제의 단점을 비례대표 제도로 보완해 주는 게 중요해서다. 그는 “비례대표를 현행 47석에서 대폭 늘리자는 주장도 있지만 양당이 중추 역할을 하는 정당 구조의 안정도 필요하다”며 “불판을 엎을 게 아니라 준연동형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단점을 바꾸는 대안이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조사관이 제시하는 방안은 소선거구제를 지금처럼 유지하되 전국 단위 비례대표 배분 방식만 고치는 ‘보정 의석’ 도입이다. 지역구 47석 배분 시 지역구 선거에서 정당득표율보다 의석을 더 많이 얻은 정당은 비례 의석 배분에서 제외한다. 정당 득표율보다 지역구 의석을 적게 얻은 정당만 대상으로 비례대표 ‘보정 의석’을 나눠주는데, 정당 득표율 대비 지역구 의석이 적은 정당부터 순서대로 주자는 것이다. 과소대표 현상이 크게 나타난 정당부터 주되 47석이 소진되면 멈춘다. 이 정도만 개정해도 소선구제를 유지해 현역 의원들의 반발을 줄임으로써 합의 가능성을 높이고, 소수 정당을 키워주는 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비례 배분조건 강화해 위성정당 막아야

김종갑

김종갑

위성정당 출현은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선거법 개편 논의가 촉발된 지점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돼 지역구 의석을 많이 얻는 정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받기 어려워지자 거대 정당들이 꼼수로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그 결과 연동형 도입 취지가 사라졌다. 정치권에선 연동형을 유지하면 위성정당 출현을 피할 수 없다는 이유로 병립형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면 비례성 강화 취지가 사라지고 양당 구도가 더 강해질 수 있다.

김 전 조사관은 우선 비례 의석을 받기 위해 필요한 요건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지금은 ‘지역구 5석’ 또는 ‘정당 득표율 3%’를 충족하면 비례 의석 배분 대상이 된다.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채우도록 하자는 것이다. 거대 정당들이 위성 정당에 정당 득표를 몰아주도록 하는 방식을 쓰기 때문에 지역구 5석까지 만족하도록 하면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각 정당이 위성 정당을 만들지 않겠다고 정치적으로 선언하는 것도 방법이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적 비난을 받은 만큼 대국민 선언을 한 뒤 또 위성정당을 만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