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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반지' 팔면 그들이 사간다...사상최고 '금값 질주'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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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미국발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에 금값의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물가 상승에도 그동안 금값의 발목을 잡아 왔던 강달러와 고금리의 위세가 한풀 꺾이면서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등 이어지는 금융시장 불안 속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까지 금값 상승을 부추기며,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제 금값이 미국 달러화 강세가 누그러진 영향으로 온스당 2000 달러를 돌파했다. 사진은 4일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에 진열된 골드바. 연합뉴스

국제 금값이 미국 달러화 강세가 누그러진 영향으로 온스당 2000 달러를 돌파했다. 사진은 4일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에 진열된 골드바. 연합뉴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선물가격은 지난 6일(현지시각) 온스당 2026.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금 선물 가격은 지난 4일 온스당 2038.2달러를 기록하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공포가 본격화한 2022년 3월 8일(온스당 2043.3달러·종가 기준)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값은 최근 한 달여 만에 약 8%가 올랐다.

국내 금시장도 다시 들썩이고 있다. 한국거래소(KRX)에서 금 1g은 7일 전날보다 1.21%(1030원) 오른 8만6330원에 거래를 마쳤다. 2014년 3월 24일 금 시장 개장 이후 최고가다.

금값이 오르며 금을 팔려는 수요도 늘고 있다. 국내에서 금제품을 유통하는 한국금거래소의 송종길 대표이사는 “금값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뛰자 돌 반지, 금팔찌 등 현물 금을 팔려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며 “3월 16일부터 4월 6일까지 전국 100여개 가맹점(한국금거래소)에서 매입한 금 총량이 390kg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금값의 질주는 경기 침체 공포와 함께 시작됐다. 금값은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반짝 상승한 뒤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공급망 충격에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고강도 긴축을 시작하면서다.

Fed가 금리를 올리면 달러값이 오르고, 채권 금리도 급등한다. 반면 이자가 안 나오는 투자 자산인 금의 경우 금리가 오르고 돈의 값이 오르면 투자 매력이 떨어지게 된다. 금값이 달러 가치와 반대로 움직이는 이유다.

그런데 올해 3월 이후 금값의 발목을 잡아 왔던 달러값과 채권 금리가 동시에 떨어지고 있다. Fed 발 긴축 속도전의 부작용이 현실화하며 SVB 파산 등 금융시스템 불안이 커진 데다, 경기 침체의 징후가 뚜렷해진 결과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6일(현지시간) 연 3.305%에 거래를 마치며 한 달 사이 0.7%포인트 하락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1973년=100)도 3월 2일 105.3에서 지난 6일 101.8로 가파르게 하락했다.

경기 침체의 먹구름도 짙어지고 있다. 그동안 긴축 속도전 속에서도 견고하게 버텨왔던 미국 고용 시장의 위축 징후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일 미 노동통계국의 구인ㆍ이직보고서(JOLTS)에 따르면 2월 미국 기업의 구인(사람 채용을 원하는) 건수는 993만 건으로, 2021년 5월 이후 처음으로 1000만 건을 밑돌았다.

미국 노동부가 7일 발표한 3월 고용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3월 비농업 일자리는 23만6000개 증가했다. 코로나19 이전보다는 여전히 증가 폭이 크지만 1월(47만2000개), 2월(32만6000개) 등 매달 증가 속도가 둔화하고 있다. 시간당 평균임금도 전년 동월보다 4.2% 증가해 2월(4.6%)보다 상승세가 둔화됐다.

귀금속 투자회사 스프롯의 폴 웡 시장전략가는 “급격한 긴축으로 인한 금융 위기 가능성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채권 금리와 달러 가치가 하락하며 금의 강세 요인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미국 장기국채를 들고 있던 SVB은행이 파산하는 등 커진 불확실성도 금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금 가격의 급등은 미국이 직면한 SVB발 신용 위험과 러시아와의 대립, 중국과의 갈등 등 대내외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반영됐다”며 “누적된 갈등 리스크에 지친 자금이 안전자산인 금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금값을 떠받쳐왔던 각국 중앙은행도 금을 쟁이고 있다.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중앙은행의 금 보유고는 올해 1월 74t, 2월 52t 늘었다. 중국인민은행이 2월 한 달 동안 사들인 금만 25t에 달한다. WCG에 따르면 각국 중앙은행이 지난 1년 사들인 금은 125t가량이다. 크리산 고폴 세계 WGC 수석분석가는 “2023년 중앙은행의 금 수요는 2010년 이후 가장 강한 출발을 보인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값이 사상 최고가를 찍을 수 있다는 전망도 이어진다. 외환정보업체인 오안다 수석 시장분석가인 크레이그 얼람은 “많은 데이터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금값이 온스당 2000달러 이상을 유지하고, 추가 상승으로 미지의 영역(최고가)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브릿지 워터의 레베카 패터슨 최고투자전략가는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금리와 달러 하락 등도 금값 상승의 요인이지만 구조적인 요인은 각국 중앙은행의 금 수요”라며 “투자와 귀금속 수요 외에도 중앙은행 수요가 이어져 올해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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