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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름 지키는 대신 대학 본부는 양보…경상국립대, 지방 대학 통합 본보기 될까 [대학 통폐합 바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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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4호 13면

SPECIAL REPORT

지난 2021년 4월 경상국립대 가좌캠퍼스에서 열린 통합 대학 공식 출범식. [사진 경상국립대]

지난 2021년 4월 경상국립대 가좌캠퍼스에서 열린 통합 대학 공식 출범식. [사진 경상국립대]

“통합이요? 통합된 줄도 몰랐어요.”

공과대학 23학번 새내기 김모(19)씨의 눈이 동그래졌다. 질문을 던졌는데 되레 질문이 돌아왔다. “작년에 합쳐졌잖아.” 옆에 있던 동기가 말을 얹었다. 이곳은 경상남도 진주시에 위치한 ‘경상국립대학교’. 진주시에 있던 두 국립대 ‘경상대’와 ‘경남과학기술대’가 통합된 대학이다. 같은 지역 내 두 국립대가 입학정원 감축 없이 자율적으로 통합을 추진한 첫 사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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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다른 통합 추진 대학과 마찬가지로 경상국립대 역시 통합하는 과정에 내홍을 겪었다. 찬성하는 구성원도 있었지만,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찮았다. 거기에 당초 1대 1 통합에서 경상대가 경남과기대를 흡수 통합하는 방식으로 방향이 바뀌며 반발이 더 거세졌다. 경남과기대의 전신인 공립진주실업학교(1910)를 통합 대학의 기원으로 삼고, 총장실·기획처 등 대학 본부를 경남과기대 캠퍼스(현 칠암캠퍼스)에 두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인 끝에 2021년 3월 경상국립대로 출범했다.

최근 입학생은 “단과대 위치만 다를 뿐 같은 학교” 

과연 경상국립대는 앞으로 이어질 대학 통합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을까. 경상국립대의 5개 캠퍼스 중에서도 기존 경상대의 메인 캠퍼스였던 가좌캠과, 경남과기대였던 칠암캠이 하나의 대학처럼 매끄럽게 운영되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통합 후 2년이 지난 지난달 21일과 22일 이틀에 걸쳐 가좌캠과 칠암캠에서 학생들을 만났다.

지난달 21일 오후 수업을 마친 경상국립대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함께 농구를 즐기고 있다. 윤혜인 기자

지난달 21일 오후 수업을 마친 경상국립대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함께 농구를 즐기고 있다. 윤혜인 기자

2022년부터 ‘경상국립대로 입학’한 학생들은 대체로 두 캠퍼스를 같은 대학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21일 가좌캠에서 만난 김씨는 “전공에 따라 수업을 듣는 장소만 다를 뿐 두 캠퍼스를 다른 학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서 만난 사회복지학과 23학번 장모(19)씨도 “가좌에서 칠암으로 가기도 하고, 반대로 오기도 하고, 기숙사도 같이 쓴다”며 “단과대 위치만 다를 뿐 같은 학교”라고 전했다.

반면 이전에 입학한 학생들은 여전히 가좌캠은 경상대로, 칠암캠은 경남과기대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공과대학 20학번 박모(22)씨는 “경상대로 입학한 학생들은 칠암캠은 다른 학교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기존 두 대학의 입학 성적 차이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공과대학 20학번 강모(22)씨는 “입결(입시 결과의 줄임말, 즉 성적)이 더 낮았던 대학이랑 통합해 학교 이미지가 안 좋아진 것 같다”, 교육대학 20학번 우모(22)씨는 “과기대 학생들과 같은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불합리하다”며 불만을 표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왔다 갔다 불편, 인프라 차이… 과도기 겪고 있는 경상국립대

통합된 게 체감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22일 칠암캠에서 만난 구 경남과기대 학생 환경공학과 21학번 정모(21)씨는 “전공 학과가 합쳐지지 않아서 그런지 그냥 학교 이름만 바뀐 것 같다”며 “22학번 이후 학생들처럼 가좌캠퍼스에서 수업을 들을 일도 없어서 아예 다른 학교처럼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공학과 21학번 이모(22)씨도 “축제나 동아리 부스 등 행사가 다 가좌캠에서만 열려서 칠암은 곁가지 느낌”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캠퍼스 규모 및 시설 차이로 인해 같은 학교 학생인데도 누릴 수 있는 인프라가 현격히 다르다는 지적도 나오고있다. 칠암캠 소속 공과대학 23학번 김용규(19)씨는 “가좌캠에 비해 건물도 적고,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도 부족하다”며 “어차피 모든 행사와 수업이 주로 가좌에서 열리는 데 이럴 거면 모든 수업을 가좌에서 하고, 칠암은 다른 용도로 쓰는 게 맞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두 캠퍼스를 오가는 학생들의 교통비 부담도 상당하다. 학교 측에서 진주시 내 3개 캠퍼스 간 원활한 이동을 위해 일 9회 셔틀버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모든 수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칠암캠에서 전공수업을 듣는 22학번 허모(20)씨는 “칠암캠은 교양 과목이 적어 원하는 수업을 들으려면 두 캠퍼스를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학교 셔틀 시간이 안 맞아서 대부분 자비로 택시나 버스를 이용한다”고 호소했다.

지난달 22일 경상국립대 칠암캠퍼스에 설치되어 있는 셔틀버스 정류장. 윤혜인 기자

지난달 22일 경상국립대 칠암캠퍼스에 설치되어 있는 셔틀버스 정류장. 윤혜인 기자

단과대 이전, 유사중복학과 통폐합 과제

학교도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단과대 이전 재배치’를 통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전정환 경상국립대 기획처장은 “가좌캠퍼스는 ‘교육 연구 중심 캠퍼스’로, 칠암캠퍼스는 ‘의·생명바이오 캠퍼스’로 특성화해 학생들의 불편함을 줄여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좌캠에 신축 건물이 완공되면 의료계열을 제외한 모든 학과를 가좌캠으로 이전하겠다는 구상이다. 현 칠암캠에 남아있는 단과대 건물은 평생대학원, 산학협력관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유사중복학과 통폐합도 아직 진행 중이다. 종합대학과 과학기술대학이 합쳐지며 특히 이공계에서 겹치는 학과가 많아 각 대학 내 유사중복학과만 20여개에 달했다. 경영-경영, 사회복지-사회복지 등 중복학과가 그대로 통합된 사례도 있지만, 교원들 간 합의가 되지 않아 학과명만 바꾼 채 유지되고 있는 과도 상당수다. 일례로 양 대학 토목공학과 교수들끼리 합의가 되지 않아 기존 경남과기대 토목공학과가 ‘건설시스템공학과’로 간판만 바꾸고 남아있다.

전 기획처장은 “대학 통합 시 가장 큰 쟁점이 유사중복학과 간 합의점 마련”이라며 “동일분야 학과 간 통폐합뿐만 아니라 학제간 융복합도 가능성도 열어두고 합의를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상대 기계공학부와 합의에 이르지 못한 전 경남과기대 기계공학부(현 기계소재융합공학부)는 2024학년도부터 일부 학제가 겹치는 경상대 기계항공정보융합공학부(현 항공우주및소프트웨어공학부)와 통합된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사중복학과에 대해서도 이달 말까지 합의를 끌어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학교 측은 내년 하반기부터 단과대 이전 재배치가 본격화되는 만큼 교육부의 추가 지원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경상국립대는 지난 2019년부터 올해까지 통합 예산 291억원을 지원받아 본부 이전, 전산 통합 등에 사용했다. 앞으로 남은 통합 예산 지원 기간은 1년으로 내년까지다. 전 기획처장은 “통합 대학이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통합 절차가 잘 마무리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속적인 재정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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