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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잇는 대학+대학, 학과+학과 … "갈등 치유하면 플러스, 단순 통합 땐 마이너스" [대학 통폐합 바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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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4호 12면

SPECIAL REPORT

지난해 12월 대학 통합 논의를 공식화한 충남대와 한밭대.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대학 통합 논의를 공식화한 충남대와 한밭대. [연합뉴스]

“당장 생존 걱정이 없는 건실한 거점국립대학이 왜 통합을 하냐고요? 학교의 경쟁력이 계속 감소하는 상황에서, 더는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요.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10년 뒤를 생각하면 미래가 막막한 게 사실입니다. 통합은 이제 설득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학 입장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호소’입니다. 대학이 학생들을 더 잘 가르치고, 더 좋은 곳에 취업이 되게 하려면 통합이 최선이라고 봅니다.” (정종율 충남대학교 기획처장)

‘60만 고3’ 2016년 붕괴. ‘50만 고3’ 2020년 붕괴. 어느새 ‘40만 고3’ 시대. 학령인구 감소로 학생은 줄었고, 정부 지침으로 등록금은 15년째 묶여 있어 대학 운영은 직격탄을 맞았다. 다양한 생존 방안이 나왔다. 입학 정원을 줄이고, 경쟁력 약한 학과는 합치거나 없애고. 심지어 학교 간판까지도 바꿨다. 수년 전, 대학가 곳곳에서 나왔던 ‘이대로는 모두가 함께 망한다’던 위기의식은 코앞으로 닥쳤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 상아탑의 현실이다.

학령인구 급감, 이대로 가면 공멸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통합. 대학이 생존을 위한 최후의 수단 중 하나로 선택하고 있는 방안이다. 지난해부터 논의가 본격화했다. 운영 주체가 다양한 사립대학보다는 국립대학 위주로 본격적인 통합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이미 선례가 있기도 하다. 한경대와 한국복지대는 올해, 경상대와 경남과기대는 2021년 통합 절차를 마치고 각각 한경국립대, 경상국립대로 새 출발 한 바 있다. 강원대-강릉원주대, 충남대-한밭대, 부산대-부산교대 등 총 6개 대학은 현재 통합이 진행 중이거나 논의를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통합 논의 공동 선포식을 열고 공식 통합 논의를 시작한 충남대 관계자는 “충남대를 비롯한 지역 거점 국립대학들의 네임밸류가 수년간 지속해서 하락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한 결정”이라며 “거점 국립대가 국내 대학 10위 안에는 들어가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인근 국립대학인 한밭대와의 통합 논의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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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학도 통합 물결에 뛰어들었다. 서울의 사립대인 명지대는 수년간 법인 자산 문제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돌파구는 대학 통합이었다. 같은 사학법인 내에서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키우겠다며 명지전문대와의 통합을 결정했다. 유병진 명지대 총장은 지난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학령인구 감소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를 느꼈다”며 “(명지)전문대는 서울에 있어도 위기감이 커 명지대와 통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전한 바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위기 속, 이처럼 ‘대학+대학’이 벌어지는 한편 대학 내에서는 ‘학과+학과’도 계속 이뤄지고 있다. 첨단학과도 새로 만든다. 이는 ‘더 어렵다’는 지역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전국 4년제 일반대학에서 약 1410건의 학과 통폐합이 이루어졌다. 전체 비중은 여전히 비수도권 대학이 높지만, 수도권 대학도 점차 통폐합 학과를 늘려나가는 추세다. 동덕여대는 지난해 프랑스어과와 독일어과를 합쳐 유러피언스터디즈학과로 통합했다. 삼육대도 2021년 중국어학과와 일본어학과를 통합해 항공관광외국어학부로 새롭게 출발했다. 동덕여대 관계자는 “수년간 두 학과 입시 경쟁률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내부 구성원들이 위기의식을 느껴 자발적으로 통합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삼육대 관계자는 “총체적 위기 상황에서 더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해 학과를 통합했다”며 “이전보다 학과 경쟁률도 올라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모양새는 통합이지만, 속으로는 어떨까. 우선 구성원 반응부터 크게 엇갈린다. 입시성적, 학교 이름, 평판, 졸업장, 역사, 교수·교직원 감축 등 곳곳이 지뢰밭이다. 충남대 불어불문학과 19학번 A씨는 “경북대·강원대 등 다른 국립대들이 이미 통합한 것을 보면 우리 학교도 언젠가는 타 대학과 통합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시대가 변하는데 입시성적에 얽매여 통합을 반대하는 건 무리수”라고 말했다.

한밭대 경제학과 20학번 B씨는 “인구절벽으로 인해 통합이 앞당겨진 것뿐, 언젠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같은 학교 전자공학과 22학번 C씨도 “간판만 바뀌는 느낌이겠지만, 대전권 학교 두 곳이 의기투합해 통합하는 것엔 긍정적”이라면서도 “온전한 한 학교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교수·교직원 일자리 잃을 가능성도

충남대 학생회관에 전시된 통합 반대 시위 피켓. 오유진 기자

충남대 학생회관에 전시된 통합 반대 시위 피켓. 오유진 기자

반면 충남대 경영학과 23학번 D씨는 “같은 국립대라도 입시성적 차이가 너무 큰데, 충남대 학생들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 느낌”이라며 “같은 졸업장을 받는다는 건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한밭대 정보통신공학과 19학번 E씨도 “충남대와 한밭대 간 수준 차이가 분명한데, 학교를 합친다고 해서 동일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통폐합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평생 연구하던 학문을 내려놓아야 하는 교직원들도 거부감이 크다. 학과 통폐합으로 구조조정을 겪은 서울권 대학의 한 교수는 “학과 이름부터 커리큘럼까지 모든 게 바뀌니 연구분야나 강의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해야 해 마치 학부생처럼 새로운 학문을 배우고 있다”며 “학과별 특성과 교수의 연구분야는 전혀 존중하지 않은 채 겉 포장만 번지르르하면 학교가 좋아지는 것이냐”고 성토했다.

이처럼 변화에 대응한다는 대원칙에 공감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내부 구성원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는 점은 대학 간, 학과 간 통합의 딜레마다. 통합으로 ‘동반성장’하려다 ‘동반추락’이라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충남대 총학생회가 학생 의견을 취합한 설문조사에서 이는 여실히 드러난다. 조사에서는 ‘학교 덩치만 커지고, 내부 구성원들이 피해를 감당해야 한다’, ‘통합 후 (학교 주장대로) 교직원 숫자가 유지된다면 대학회계의 재정적 부담은 가중될 수 있다’, ‘본래 소속에 따라 차별이나 파벌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 등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최인호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충남대 교수회장)는 “학교가 수년 전부터 명목상의 통합에만 매달리며 자체혁신에는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며 “이미 통합한 대학들이 입시 결과 하락, 중복유사학과 간 갈등 등의 부작용을 겪고 있는데 이를 위한 대비책은 안중에도 없다”고 비판했다. 노황우 한밭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는 “벌써 학생들은 ‘타 학교 소속이었던 교수 강의는 안 듣겠다’며 서로 갈라치기를 하고 있다”며 “억지로 통합을 한들 구성원간 소통도 되지 않는 데 무슨 발전이 있겠냐”며 반문했다.

파괴적 혁신 없으면 도태 불가피

통합은 부실 교육 가능성을 안고 있기도 하다. 합쳐지면서 정원이 줄어든 학과는 교수 충원 명분이 없어진다. 반면 강의 범위는 넓어져 기존 교수들이 허덕인다. ‘땜빵 강의’ 우려가 나온다. 2022년 프랑스어과와 독일어과를 통합한 동덕여대의 경우 통합 이후 아직 관련 전공 교수 충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노황우 교수는 “(한밭대가) 충남대와 인원 감축 없는 통합을 계획하고 있는데, 현재 있는 전임교수만으로도 수업 시수가 꽉 차 강사들이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며 “강사·조교 등 비정규직·계약직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고 짚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정부는 지역대학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를 구축한다. 자율적으로 과감한 대전환을 시도하는 대학 30곳에는 5년간 1000억원을 지원하는 ‘글로컬대학30 사업’을 시작으로 지역대학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혁신 의지가 있는 대학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교육부는 충남대·한밭대와 같은 대학 통합 사례가 늘어날 것을 대비해 올 상반기 중 국립대 통폐합 매뉴얼을 발표할 예정이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학령인구 감소라는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선 어떠한 시도든 과감한 도전이 필요한 타이밍”이라면서 “다만 교육부의 정책에 발맞추기 위해 단순히 쓰러져가는 학과와 대학을 형식적으로 합치면 오히려 마이너스”라고 조언했다. 송 교수는 이어 “통폐합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내부 잡음에 대해서는 교육부에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적극적인 중재가 통합의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학년도 전국 대학 217곳 중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한 학교는 77곳. 그리고 올해 고등학교 3학년 수는 39만8000명으로 40만 명 선이 깨졌다. 파괴적 혁신과 자발적인 생존 노력을 꾀하지 않는 대학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안 좋은 배나무에 상품종 배나무를 붙이니, 좋은 열매가 나오더라’는 이규보(1169~1241)의 ‘접과기(接果記)’ 속 말처럼, 대학 통합의 열매는 풍성하게 맺힐까. 진통 끝에 물리적 통합은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완전한 ‘한 몸’이 되기까지는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생존을 위한 혁신을 더는 외면할 수 없다. 학령인구 감소로 여러 대학이 문을 닫는 것은 시간문제. 10년 후가 아닌 당장 오늘 해결해야 할 예견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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