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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기억] 소는 누가 키우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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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4호 31면

소 키우기, 전북 고창, 1974년. ⓒ김녕만

소 키우기, 전북 고창, 1974년. ⓒ김녕만

소를 키우는 일이 공부보다 더 중요한 시절이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다녀오자마자 책가방을 내던지고 부리나케 소를 끌고 들판으로 나갔다. 겨우내 마른 풀만 먹은 소에게 새로 돋아난 신선한 풀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속셈은 따로 있었다. 바쁜 농사철에 집에 있어 봐야 이거저거 심부름만 쏟아질 판이니 소를 끌고 집에서 멀찌감치 나오는 게 상책이었던 것. 여리고 부드러운 풀이 많은 곳에 소를 매어 놓기만 하면 그때부터는 자유시간이어서 해가 뉘엿거리도록 신나게 뛰어놀 수 있었다.

한때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유행어가 떠돌았다. 소를 키워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우스갯소리에 불과한 말이겠지만 실제로 한 마리의 소를 키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1년 365일 배불리 먹이고(많이도 먹는다!) 병에 걸리지 않게 돌보고 관리해야 하므로 온 식구가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일이었다. 빈집에 소 들어온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예전부터 소는 농가에서 굉장히 큰 재산이었고 한편으로는 요즘의 반려견처럼 한 식구나 다름없이 귀한 존재였다. 가끔은 부모님이 어린 송아지의 소유권을 정해주기도 했다. 네 몫이니 잘 키워서 대학 등록금, 혹은 시집갈 밑천으로 쓰자는 언약도 곁들이셨다. 그렇게 일단 ‘내 송아지’가 되면 이름도 지어주고 더 애지중지 돌보며 애정을 쏟았다.

이 사진 속 어린 소도 소녀의 몫인 것일까? 착실한 소녀는 조금 더 풀이 맛난 곳으로 소를 이동시키려고 고삐를 잡아끌지만, 고개를 외로 꼬며 말을 듣지 않는 소의 표정이 재미있다. 아직은 엄마소의 곁에 있고 싶어서 그러는지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린다. 어느새 소녀에겐 힘에 부칠 만큼 제법 자란 송아지. 앞으로는 걷잡을 수 없이 더 자라 곧 소녀를 앞지를 것이다. 점점 더 많이 먹을 것이고 고집도 세질 것이다. 그래도 날마다 무럭무럭 잘 자라서 소녀의 장래 보험이 된다면 “소는 누가 키우나?”, 뜬금없는 물음의 답이 될지 모르겠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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