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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 갈아끼우듯 '핵탄두' 탑재…이런 방식, 북한이 유일" [북핵 어디까지 왔나]

중앙일보

입력

북한은 2017년 11월 29일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뒤 한국과 미국과의 정상 회담을 열면서 비핵화 협상을 벌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핵·미사일 고도화에 필요한 시간을 벌었다. 결과는 한반도 전역은 물론 일본까지 동시다발로 타격할 수 있는 전술핵 8종 세트로 돌아왔다. 북한이 그동안 억제 수단이라 주장했던 전략핵에 선제공격에 사용할 수 있다고 밝힌 전술핵까지 손에 쥐면서 한국이 맞닥뜨릴 현실은 완전히 달라졌다. 북핵은 더는 '칼집 속의 칼날'이 아닌 실질적 위협으로 다가온 셈이다. 중앙일보는 하노이 노딜 이후 지난 4년 간 키워 온 북한의 핵 능력이 어디까지 왔는지 긴급 점검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7일 핵무기병기화사업을 지도하고 핵반격작전계획과 명령서를 검토했다. 사진은 김정은이 핵무기연구소로부터 최근 사업정형과 생산실태에 대해 보고받는 모습.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7일 핵무기병기화사업을 지도하고 핵반격작전계획과 명령서를 검토했다. 사진은 김정은이 핵무기연구소로부터 최근 사업정형과 생산실태에 대해 보고받는 모습. 연합뉴스

2019년 5월 4일. 북한은 강원도 원산 호도반도 일대에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1발을 발사했다. 당시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같은 해 2월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지 석 달만이다.

북한은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발사했다고 주장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단거리 미사일'이라는 군 당국의 초기 발표를 30분 만에 '단거리 발사체'로 정정했다. 한·미 군 당국은 이 미사일에 KN-23이라는 코드를 부여했다. 북한은 지난달 28일 총알처럼 다양한 무기에 장전할 수 있는 전술핵탄두인 '화산-31형'의 실물을 최초로 공개하면서 KN-23에도 장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밝혔다.

북한이 2019년 5월에 KN-23 시험발사에 나선 것은 이미 수년 전 개발을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2018년부터 2019년 초 사이에도 미사일 개발을 비밀리에 진행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특히 북한은 2018년 5월 비핵화를 위한 '선제적 조치'의 일환으로 외신기자들을 초청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 위치한 '핵실험장'의 폭파 장면을 공개하고 영구폐기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이 2018년 5월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위한 폭파작업을 외부 전문가 검증 없이 진행했다. 핵실험 관리 지휘소 시설 폭파 모습을 한국을 비롯한 5개국 기자들이 촬영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2018년 5월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위한 폭파작업을 외부 전문가 검증 없이 진행했다. 핵실험 관리 지휘소 시설 폭파 모습을 한국을 비롯한 5개국 기자들이 촬영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의 핵정책 변화에서 핵심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초기에 집중했던 전략핵에서 전술핵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는 점이다. 북한은 2017년 6차 핵실험과 미국을 겨냥한 ICBM급 '화성-15형'의 시험발사에 성공한 직후 핵무력 완성을 주장했다. 김정은은 이를 토대로 미국과 '핵담판'을 벌였지만 실패로 끝났다. 당시 북한의 핵·미사일은 사실상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기 위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북한은 2017년 '핵무력 완성'에 머물러있지 않았다. 북한은 2019년부터 최근까지 초대형방사포(KN-25),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지상발사순항미사일(GLCM) 등 다양한 전술핵 투발수단을 공개했다. 2023년 현재 북한의 핵·미사일은 한반도 전역에 핵타격을 감행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특히 북한은 한반도 유사시에 증원전력을 보내 줄 일본의 유엔군사령부 후방기지와 미군 기지에 대한 핵 위협까지도 노골화하는 모습이다. 김정은은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4년 동안 칼집 속의 '핵칼'을 갈아 한국에 실질적인 핵공격을 가할 수 있는 수단으로 만들었다. 북한은 과거 자신들이 가진 전략핵이 전쟁을 억제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했지만, 전술핵 타격 능력을 강화하면서부터는 지난해 9월 '선제타격' 가능성을 천명하는'핵무력법'을 채택하는 등 공세적인 핵전략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총알처럼 갈아끼는 전술핵"

김정은은 2021년 1월에 열린 8차 당대회에서 소형 경량화한 전술핵무기 개발과 초대형 핵탄두 생산, 1만5000㎞ 사거리의 정교한 타격 능력 확보 등 전략무기 개발 방향을 제시하면서 핵·미사일의 신속한 고도화에 방점을 찍었다. 이 방침에 따라 핵탄두 소형·경량화에 매진해온 북한은 결국 '화산-31형'을 공개했다. 한·미는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통해 전술핵을 터뜨리기 전까지 판단을 유보하는 입장이지만, 이미 기존 핵실험으로 소형화 기술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익명을 원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은 "총알을 총에 장전하는 방식의 핵탄두 미사일 탑재는 북한 만 갖고 있다"며 "하나의 전술핵 탄두를 다양한 투발수단에 탑재할 수 있는 표준·규격화는 기존 핵 강대국인 미·중·러와 같은 여력이 부족한 북한 입장에선 최선의 선택"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상규 한국국방연구원 현역연구위원은 '북한 7차 핵실험 전망 및 전술핵무기 분석'에서 북한의 전술핵을 지름 40~50㎝, 길이 90㎝, 무게 150~200㎏, 위력 4~7kt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화산-31형의 제원과 거의 비슷해 보인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정부 소식통은 "다양한 투발 수단에 탑재가 용이하도록 총알 모양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진에 볼트와 너트가 보이는데 실린더(원통) 모양 쪽에 통신·계측·기폭장치 등을 넣고 잠근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입장에선 전술핵무기에 모듈화한 핵탄두를 탑재하는 게 관리나 운용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지난달 28일 김정은이 '화산-31'을 점검하는 장면을 공개하면서 벽면에 투발수단이 그려진 패널을 의도적으로 노출했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선 북한판 이스칸데르라는 별명이 붙은 KN-23과 600㎜ 초대형방사포(KN-25)를 비롯 북한판 애이태큼스(KN-24), 근거리탄도미사일(CRBM), 장거리순항미사일 '화살-1·2형', 핵무인잠수정 해일, SLBM 등 모두 8종의 전술핵무기가 보였다.

"이러면 요격 못 한다"

북한은 전술핵 투발수단을 다양화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해 왔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와 주변을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로서 미사일 기술은 거의 완성한 상태다. 이들 미사일은 고체연료 엔진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사전에 발사 준비작업이 필요한 액체연료 엔진보다 기습적인 발사가 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북한이 미사일의 발사 방식을 이동식 발사대(TEL)는 물론 기차·호수·잠수함·사일로 등으로 다변화한 것도 위협을 가중하는 요인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가장 큰 문제는 이들 미사일의 경우 한·미가 보유한 미사일 방어 체계로는 요격이 어렵다는 점이다. KN-23과 KN-24, KN-25는 한·미의 탐지자산이 취약한 고도 30~40㎞ 구간을 날거나 변칙 기동을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미사일의 낙탄 지역을 예측해 종말단계에서 요격하는 한·미의 패트리엇(PAC-3 MSE)이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다. 미 의회조사국도 최근 '북한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보고서에서 "북한의 KN-23, KN-24, KN-25는 기동성·유효성·정밀성을 입증했으며, 요격하기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심해로 잠함해 핵공격을 할 수 있는 '수중 드론' 방식의 '해일'과 100m 안팎의 저고도를 마하 0.8(시속 970㎞) 정도의 느린 속도로 기동하며 방향을 자유롭게 바꾸는 순항미사일 화살 1·2형, 연속발사가 가능한 KN-25도 탐지 및 요격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북한이 투발수단을 재래식 탄두와 전술 핵탄두를 섞어 동시다발 포격한다면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한반도는 종심이 짧기 때문에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시간이 충분치 않다"며 "전술핵을 잡는 건 기본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미사일 전문가인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도 "북한 KN-23의 하단 추력을 제어하는 구조는 러시아의 킨잘 극초음속 미사일과 비슷하다"며 "북한이 러시아의 SRBM인 이스칸데르를 단순 개조한 게 아니라 회피기동 성능을 더 우수하게 개선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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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탄두 300개로 협박"

김정은은 최근 계기마다 핵무기 생산을 독려하는 모습이다. 북한 관영 매체들에 따르면 김정은은 지난달 27일 핵무기병기화사업을 지도하면서 "무기급 핵물질 생산을 전망성 있게 확대하며 계속 위력한 핵무기들을 생산해내는데 박차를 가해나가야 한다"는 지시를 내렸다. 그는 지난해 연말 전원회의(8기 6차)에서도 핵무기를 다량으로 생산하고 핵탄두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겠다는 내용을 담은 '2023년도 핵무력 및 국방발전의 변혁적 전략'을 내놓은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는 5일(현지시간) 공개한 전문가패널 보고서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핵물질을 생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패널은 북한이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핵 시설을 꾸준히 가동하는 한편 지난해 8차례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포함해 모두 73차례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한국국방연구원 박용한 선임연구원과 이상규 현역연구위원은 지난 1월 '북한의 핵탄두 수량 추계와 전망' 보고서에서 북한이 장기적으로 보유하려는 핵탄두의 규모를 최대 300여 발 수준으로 추계했다. 이는 현재 중국이 보유한 핵탄두 수량과 대등한 규모다. 북한이 독자적으로 핵위협에 나설 수 있는 수준을 원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이런 능력을 갖출 경우 2014년 크름반도를 무력으로 점령한 뒤 핵협박으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물러나게 한 러시아의 사례를 따라 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이 북한 전술핵의 인질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조선중앙TV는 지난 1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결과를 보도하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주애와 함께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로 불리는 KN-23을 둘러보는 모습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조선중앙TV는 지난 1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결과를 보도하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주애와 함께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로 불리는 KN-23을 둘러보는 모습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일각에선 미·중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북핵문제가 미국 외교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면서 조 바이든 행정부가 한반도 문제에 상대적으로 소홀한 거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017년과 달리 국내에서 전술핵 재배치나 자체 핵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이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실제 최종현 학술원이 지난 1월에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76.6%가 한국의 독자적인 핵 개발이 필요하다고 답한 바 있다.

상대적으로 파괴력이 작은 전술핵은 좁고 인구가 밀집한 한반도에선 엄청난 피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생존이 걸린 문제인만큼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다. 북한은 핵 투발 수단의 다양화로 '킬체인'과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의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궁극적으로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제의 실효성을 높이면서 한국의 지분을 늘리는 방안이 필요하다. 또 재래식으로 제한적이지만, 김정은 등 북한 지휘부를 상대로 한 참수작전 등 대량응징보복(KMPR) 작전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수행할 전력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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