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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엔트로피 증가와 교육의 역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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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형진 고려대 명예교수

양형진 고려대 명예교수

인공지능을 이용한 챗GPT가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인간을 위한 보조 장치는 이전에도 많이 있었다. 인간에게 도구가 필요한 것은 아마도 부족한 육체적 능력 때문일 것이다. 날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달리기나 수영도 잘하지 못한다. 힘이 약하고 방어 수단도 별로 없다. 육체만 보면 생존조차 어려운 결핍의 존재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여러 가지 도구와 장치를 개발해야 했다.

직립보행으로 손이 자유로워지면서 석기 등의 간단한 도구를 사용했다. 농경과 정주생활도 이에 필요한 도구를 제작할 수 있어서 가능했다. 화약·나침반·인쇄술의 3대 발명이 르네상스와 과학혁명으로 이어졌고, 과학혁명과 산업혁명 이후 기구나 장치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 결과, 육체적 능력이 형편없으면서도 어느 동물보다도 빨리 이동하고 멀리 날아가고 오랫동안 잠수할 수 있게 됐다. 인류의 역사는 도구와 장치를 개발하고 활용한 역사이기도 하다.

문명은 정보를 활용한 진보 과정
지금은 미래 예측마저 어려워져
현재 ‘물고기 잡는 법’은 곧 한계
교육이 미래 대비 창의성 길러야

결핍의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생명 세계의 정점에 서 있다. 이는 자신의 부족한 생명력과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했다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전적으로 이전 세대가 이룩한 문명이 다음 세대로 전수됐기 때문이다. 이게 아니라면 인류사가 보여준 문명의 누적 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공간적으로는 한 지역에서 성취한 발전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한 기록이고, 시간적으로는 한 세대가 이룩한 성취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면서 진보한 기록이다. 문명의 공간적 확산과 시간적 전수는 정보가 전달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언어와 인쇄술 등을 통한 정보의 축적·전달·계승은 문명의 진보를 가능케 한 핵심 요소다.

인류 문명의 진보를 가능케 한 정보란 무엇인가? 정보에 대한 이론적 연구는 클로드 섀넌에서 시작됐다. 그는 1948년에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동전을 던져서 앞뒤의 어느 면이 위로 향하는지를 알아내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그의 정의에 따라 계산하면 어느 면이 위인지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엔트로피는 1이 되고, 완벽하게 아는 상황에서는 0이 된다. 엔트로피가 1이라는 것은 1만큼 모른다는 것이고, 0이라는 것은 모르는 게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엔트로피는 모르는 정도를 나타낸다. 시험은 보통 얼마나 아는지를 측정하는데, 엔트로피는 얼마나 모르는지를 측정한다. 이렇게 무지(ignorance)의 양을 나타내므로 엔트로피를 음의 정보량이라고 하거나, 혹은 정보량을 음의 엔트로피라고 하기도 한다.

엔트로피가 1인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1의 정보를 얻으면 엔트로피가 0인 완벽하게 아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스무고개에서 예/아니요의 답을 한 번 듣는 것처럼 한 단위의 정보를 얻어야 한다. 이 단위를 bit라고 한다. 정보를 수량화하는 기본 단위다. 정보도 엔트로피에 의해 질량이나 길이나 시간처럼 수량화할 수 있게 됐다.

물리학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 있다. 주위와 단절된 계의 엔트로피는 증가한다는 것이다. 정보의 측면에서 보면 정보량이 저절로 증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보를 축적하기 위해선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축적했다 하더라도 특별히 노력하지 않는 한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처럼 점차 사라지게 된다. 인쇄술이 문명사에서 중요한 건 이 때문이다. 인쇄술은 정보를 소실되지 않게 보존하여 다음 세대에 전승하고 다른 지역으로 전달할 수 있게 했다. 이게 문명의 진보를 가능하게 했다.

현대사회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방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저장할 수 있게 됐고, 이를 처리하여 가공할 수 있게 됐으며, 그 결과를 전송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정보의 활용도가 비약적으로 증폭되면서 지금의 우리 사회가 형성됐다. 인류 역사는 99% 이상이 석기 시대였다. 변화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아주 오래 머물렀다. 그러나 변화가 쌓이면서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지금은 앞으로 얼마나 어떻게 변할지 짐작조차 어렵게 됐다. 우리는 10년 후의 세상을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지점에서 제기되는 문제가 교육이다. 과거엔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고 했다. 물고기 한두 종류를 잡는 법만 익히면 평생 써먹을 수 있었던 때의 얘기다. 그러나 지금은 첨단 기술 분야의 논문이 1년이면 그 효용성이 사라진다. 몇 년 지나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물고기가 출현한다. 그 물고기가 어떨지 모르므로 미래의 어획법을 지금 가르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미래의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새로운 어획법을 개발하고 새로운 도구를 제작해야 한다. 교육은 이를 할 수 있는 능력의 터전을 마련해 줘야 한다. 현재의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미래에 출현할 물고기를 잡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 이게 미래 세대가 갖춰야 할 창의성이다.

양형진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