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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윤호가 소리내다

학폭, 세게 처벌해도 해결 못한다…피해자가 정말로 원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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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윤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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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피해자의 복수를 다룬 드라마 더 글로리의 한 장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학교폭력 피해자의 복수를 다룬 드라마 더 글로리의 한 장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과거 학교폭력에 대한 주인공의 복수를 그린 드라마 ‘더 글로리’의 인기와 함께 경찰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되었다가 과거 아들의 학폭으로 하루 만에 사임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사건이 맞물리며 교육부는 학교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그중 하나는 가해 학생에게 대학 입시에 수시뿐만 아니라 정시에서도 불이익을 주고,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한 징계 기록을 졸업 후 현행 2년 삭제에서 10년 삭제로 기간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5일 열린 국민의힘과 정부의 학폭 관련 당정 협의에선 “학폭 가해 기록 보존 기간을 취업 시까지 늘려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한다.

이처럼 가해학생에게 주는 불이익을 확대하는 것이 학교폭력의 좋은 대책이 될까. 피해학생들이 원하는 것이 가해학생에 대한 엄벌일 텐데 당연히 좋은 대책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 피해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예상한 것과 달리 엄벌보다는 가해학생의 진심 어린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그리고 학교폭력이 발생하기 이전의 학교생활로 복귀하는 것이다.

진심 어린 사과를 원하는 피해학생 

피해학생들이 원하는 것이 가해학생의 진심 어린 사과라는 사실은 통계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학교폭력 예방 단체인 푸른나무재단의 ‘2022 전국 학교폭력, 사이버폭력 실태조사’에 의하면 피해학생들이 ‘학교폭력 피해 후 해결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34.7%는 만족, 33.7%는 보통, 20.7%가 불만족한다고 응답했다. 피해 후 문제 해결 불만족 이유로 ‘처벌은 만족하나 사과와 반성이 느껴지지 않아서’가 26%로 가장 높았고, ‘가해학생 처벌이 약하다고 생각해서’라는 답변이 25.2%로 뒤를 이었다. 피해 후 가장 필요한 것에 대한 응답은 ‘가해학생의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가 34%로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그다음으로 ‘가해학생에 대한 처벌’ 응답이 19.8%였다. 가해학생의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 재발 방지 약속은 가해학생에 대한 어느 중징계보다도 피해학생의 피해 회복과 트라우마 예방에 효과적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반면, 가해학생이 반성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으면 아무리 가해학생을 징계해도 피해학생은 치유되지 않고 오랫동안 트라우마를 겪는 사례를 많이 보았다. 일례로, 중학생의 가해학생은 동급생인 피해학생의 외모를 비하하며 놀리고, 복도에서 피해학생을 마주치기만 하면 길을 가로막거나 소위 어깨빵(어깨치기)을 하는 등 시비를 걸기 일쑤였다. 결국 여러 학생이 보는 가운데 피해학생의 머리와 얼굴을 주먹으로 수차례 때려 전치 4주의 상해를 입고 학교폭력 신고가 돼서야 학교폭력은 멈췄다. 학교폭력위원회가 개최되어 가해학생에게 출석정지 징계가 내려졌지만 가해학생은 끝까지 사과하지 않고, 시종일관 “피해학생과 원래 친한 사이였고 친해지려고 한 거다.” “그저 장난이었다.”라는 변명만 했다. 출석정지 징계에도 불구하고 피해학생은 가해학생이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에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지 못하겠다고 스스로 전학을 갔고, 전학 이후에도 오랫동안 트라우마를 겪어야 했다.

학폭 오래 기록하면 오히려 부인할 가능성    

아무리 가해학생의 생활기록부에 오랜 기간 기록된다고 한들, 졸업 후 대학 입시에 불이익을 준다고 한들 현재 피해학생이 학교생활로 복귀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해학생 측에서는 학교폭력으로 인정되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사과 및 화해의 노력은 안 하고 일단 무조건 부인하고 분쟁을 끌고 가려고 할 것이다. 오히려 피해학생이 원하는 진심 어린 사과와 피해 회복을 방해하지는 않을지 회의적인 의견을 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학교폭력 대책은 어느 방향으로 마련되어야 할까. 바로 피해학생의 피해 회복과 가해학생이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학생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기회가 마련되어야 한다. 앞서 푸른나무재단의 학교폭력, 사이버폭력 실태조사에서 가해학생이 가해 후 가장 필요한 것을 묻는 질문에 ‘가해행동을 구별할 수 있도록 정보나 교육을 해주는 것’ 22.1%, ‘반성과 용서의 마음을 전달할 기회를 주는 것’ 20.5%, ‘피해학생에게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에 16.1%가 각각 응답했다.

진정한 사과와 용서로 마무리된 경우 있어

즉,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모두 가해학생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피해학생의 용서(관계회복)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관계회복 프로그램을 통해 원만히 해결된 사례들은 많다. 1년 넘게 신체 폭행, 협박 등 괴롭힘이 지속하였던 학교폭력 사건이 있었는데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에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을 밝혀 양측이 관계회복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피해학생 측은 가해학생과 화해하고자 함은 아니며 만일 가해학생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즉시, 학교폭력위원회로 갈 것임을 전제로 했다. 프로그램 진행 동안 가해학생은 피해학생의 고통을 전해 들으며 용서를 구하였고, 피해학생은 자신의 힘들었던 마음을 가해학생에게 전달하는 과정을 통해 상처가 치유되었다고 했다.

‘관계회복 프로그램’이란 관련 대상자들이 발생 상황에 대해 이해, 소통, 대화 등을 통해 원래 상태 또는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에서도 관계회복 규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관계회복 프로그램이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교사들의 관계회복 전문 역량이 충분치 않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관계회복 조정 전문가 길러야 

학교폭력 해결을 위해 교육부를 비롯한 교육청, 교육지원청은 관계회복 조정 전문가들을 양성하고, 사건 발생 초기 단계부터 전문가들을 투입하여 피해학생 측의 피해에 공감하고, 가해학생 측에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분명히 알게 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할 수 있도록 돕는 대책을 제안한다. 그래서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모두 현시점에서 사건을 매듭짓고 다시 일상 학교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계회복 절차가 있음에도 가해학생이 전혀 반성하지 않거나 피해 회복에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때 엄중한 불이익을 주어도 늦지 않다. 궁극적인 해결은 바로 ‘사과와 용서’이다. 사과와 용서가 있을 때 비로소 피해학생은 학폭의 트라우마로부터, 가해학생은 폭력 전력이 훗날 발목 잡힐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