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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혈세 지원받는 여야…'고소·고발 난타전'에 연 4억 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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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15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회의실을 찾아 이재명 대표와 인사를 나눈 모습. 김성룡 기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15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회의실을 찾아 이재명 대표와 인사를 나눈 모습. 김성룡 기자

여야가 지난해 법률 자문료로 4억원 가까운 금액을 지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화와 협치는 사라지고 고소·고발 난타전만 벌이는 ‘정치의 사법화’가 정당의 돈 씀씀이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5일 중앙일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한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의 ‘2022년도 정당 회계보고서’ 자료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지난해 법률 자문료로 2억 9000만여원을, 민주당은 8800만원을 지출했다.

특히 민주당은 정진상 전 당대표실 정무조정실장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에 대한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검찰을 고발하는 데 각 330만원을 썼다. 민주당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민주당에 손해를 끼쳐 공수처에 고발한 사건”이라며 “정 전 실장이나 김 전 부원장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비용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또 지난해 6월 이재명 대표가 출마한 계양을 재보궐 선거에서 윤형선 국민의힘 후보를 농지법 위반으로 고발하는 과정에 110만원을 지출했다. 6·1 전국동시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에서 경쟁 후보에 대한 고발을 중앙당 당비로 지출한 유일한 사례다. 단 건으로 가장 높은 금액은 지난해 7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에 대한 헌법재판소 권한쟁의 심판 자문료로 지출한 3300만원이었다.

민주당보다 4배 이상의 비용을 지출한 국민의힘은 대선과 지방선거가 있던 지난해 상반기에 자문료를 대거 지출했다. 국민의힘이 1월~6월 사이 쓴 자문료는 2억6000여만원, 7월~12월은 3100만원이었다. 2월에는 한 달에만 1억2400여만원을 썼다. 올해 3월 초 기준으로 국민의힘에서 민주당을 상대로 고소·고발한 건수는 53건에 달한다고 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대선 기간 고소·고발이 많았고, 이준석 전 대표 관련 가처분 신청 사건 등 당내 법률 수요가 많았다”며 “우리는 고정적으로 자문료가 나가지는 않고 각 사안으로 지급한다”고 설명했다. 2019년 4월 국회에서 발생한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관련 재판이 장기화하면서 이에 대한 변호사비도 계속 지급되고 있다고 한다. 국민의힘은 회계보고서에 ‘당 법률자문위 자문료 및 수임료’라고 기재해뒀을 뿐 구체적인 내용을 기술하지 않았다.

민주당(위) 국민의힘(아래) 회계 보고서 사진. 선관위 정보공개청구

민주당(위) 국민의힘(아래) 회계 보고서 사진. 선관위 정보공개청구

양당 모두 중앙 당직을 맡은 변호사가 직접 수임료를 챙긴 경우도 있었다. 국민의힘은 정상환 당 법률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지난해 1월 1331만원, 홍종기 전 대선 선대본 미디어법률단장에게 지난해 2월 99만원 당비를 지출했다. 민주당은 설주완 법률위 부위원장에게 지난해 총 3630만원을 지급했다. 민주당 법률위 관계자는 “설 변호사는 당에서 정식 고용해 월급 개념으로 지급한 것이며, 올해는 설 변호사가 아닌 다른 변호사 둘을 새로 채용했다”고 말했다.

양당은 이 같은 법률 자문료를 보조금 외 항목에서 지출하고 있다. 그러나 국고를 지원받는 정당이 스스로 초래한 소송에 수억 원을 쓰는 게 적절하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중진 의원은 “국민에게 위임받은 여러 활동을 하라고 세금을 지원하는 것인데, 고소 고발에 쓰는 비용이 정상적인 정당 활동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난해 양당은 선거 비용 보전금을 제외한 국고보조금으로 총 1288억여원(국민의힘 603억원, 민주당 685억원)을 받았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선거 비용 보전금으로도 양당은 총 840억여원(국민의힘 400억원, 민주당 440억원)을 받았다. 반면 당원들이 직접 내는 당비 수입은 국민의힘 196억원(전체 수입의 11.2%), 민주당 285억원(14.8%)에 불과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교수(정치학)는 “정당의 운영비는 대부분 세금에서 나오는 만큼, 정당 회계를 더 투명하게 해야 한다”며 “특히 정치의 수준을 낮추는 상호 고발·고소전에 세비가 들어가지 않도록 안전 장치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현수막에만 4억원 쓴 여야…올해는 10억원 넘을 수도

여야가 지난해 한 해 동안 정당 현수막 제작을 위해 쓴 비용만 약 4억원에 달했다. 올해는 ‘현수막 무제한법’(옥외광고물법 개정안) 시행으로 정당 현수막이 급증한 상태여서, 정당 현수막 비용이 10억원에 육박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선거 관련 현수막을 철거하는 모습. 뉴스1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선거 관련 현수막을 철거하는 모습. 뉴스1

5일 중앙일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한 ‘2022년도 정당 회계보고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은 약 2억 4200만원, 국민의힘은 약 1억 3700만원을 ‘현수막 제작비’ 명목으로 지출했다. 민주당은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1~2월에만 1억원이 넘는 돈을 현수막 비용으로 썼다. 국민의힘은 대선이 있던 3월에 약 5000만원을 지출했고, 지방선거가 있던 6월에도 3000만원가량을 썼다. 30억원이 넘는 부채를 진 정의당도 현수막엔 1300만원을 지불했다.

반면 올해는 정당 현수막 비용이 지난해보다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11일 시행된 ‘현수막 무제한법’에 따라 모든 정치 현안에 대한 현수막을 허가·신고 없이 내걸 수 있어서다. 현수막 개수 제한도 사라졌다. 당비·정치후원금 수입은 물론 세금으로 지급되는 국고보조금 모두 현수막 비용으로 지출이 가능하다. 한 정당 당직자는 “한 달에 한 번꼴로 만들던 현수막을 최근엔 월 2~3회씩 제작하고 있다”며 “당연히 지출 비용도 두세배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여야는 최근 경쟁하듯 비방용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5일 국회 앞 횡단보도에는 “독도 영토보전헌법의무, 버리려 합니까”(민주당), “일본 방사능·독도 괴담, 나라 망치는 거짓선동 OUT”(국민의힘) 같은 상대 당을 비난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비방용 현수막이 급증하자, 정치권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3선 의원은 “막대한 비용을 써가면서도 상대방 비난만 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라며 “개선해야 한다는 건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도 “비용과 효과 측면에서 현수막 확대는 전혀 달갑지 않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의 모습. 뉴스1

지난 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의 모습. 뉴스1

이에 여야는 최근 ‘현수막 총량제법’도 만들었다. 지난달 13일 최영희 국민의힘 의원의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을 시작으로, 김성원·송석준 국민의힘 의원과 박병석 민주당 의원의 개정안 등 총 4건이 발의됐다. 모두 현수막의 ▶표시방법 ▶개수 ▶기간 ▶게시 위치 등을 대통령령으로 제한하는 내용인데, 법만 발의됐을 뿐 국회 상임위(행정안전위원회) 논의는 현재까지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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