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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 떠난 지 20년, 그의 팬들은 더 젊어졌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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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달 31일 홍콩의 한 쇼핑몰에서 열린 장궈룽(장국영·張國榮)의 20주기 추모 행사에 팬들이 몰려들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31일 홍콩의 한 쇼핑몰에서 열린 장궈룽(장국영·張國榮)의 20주기 추모 행사에 팬들이 몰려들었다. [AP=연합뉴스]

지난 1일 홍콩은 20년 전 세상을 떠난 배우 장궈룽(장국영·張國榮·1956~2003)을 추모하는 열기로 뜨거웠다. 1만2000석 규모의 추모 콘서트 티켓이 동이 나고, 그의 공연 의상과 소장품 전시회장에는 팬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국내에서도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1993), ‘해피 투게더’ (1997) 등 장궈룽의 대표작이 재개봉해 각각 박스오피스 10위와 16위에 올랐다.

1980~90년대 류더화(유덕화·劉德華), 저우룬파(주윤발·周潤發), 량차오웨이(양조위·梁朝偉) 등과 함께 홍콩 영화 전성기를 이끈 그의 팬덤은 여전히 살아있는 스타 못지 않다.

그가 46세의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난 홍콩 센트럴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앞에 몰려드는 팬들은 해가 갈수록 젊어지고 있다. 그의 요절 이후 팬이 된 10~30대가 많기 때문이다.

유튜브·SNS 등으로 장궈룽의 출연작, 콘서트 영상, 음악을 접하고 빠져든 이들을 기존 팬을 뜻하는 ‘영미(榮迷)’와 구분해 ‘후영미(後榮迷)’라고 부른다.

10대 시절 장궈룽에 빠져 중국문학 연구자의 길로 접어든 오유정 고려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장궈룽의 사후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확대된 팬덤을 “일반적인 스타 팬덤에서 볼 수 없던 특수 현상”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고려대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자리에서다. 그는 2년 전 에세이집 『아무튼, 장국영』을 출간하는 등 한국의 대표적 장궈룽 ‘덕후’로 꼽힌다.

그에 따르면, ‘후영미’는 중국판 위키피디아 ‘바이두 바이커’ 등에도 등록된 명칭으로, 이들은 장궈룽 팬카페과 위챗 채팅방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주축이 된 장궈룽 팬들은 매년 기일(4월 1일)과 생일(9월 12일), 홍콩·중국·한국·일본·동남아 등에서 추모행사를 진행한다. 사망 10주기였던 2013년엔 전세계 팬들이 동참해 그의 생일(1956년 9월 12일)을 뜻하는 195만 6912마리 종이학을 접어 기네스 신기록에 오르기도 했다.

오 교수는 “후영미는 미디어에 능숙하고 그렇게 접한 장궈룽의 영화와 노래에 매료돼 그의 예술가적 가치를 재평가하고 있다”면서 “중화권 대중문화가 각광받던 시기의 문화적 자부심을 되새기는 심리도 있다”고 분석했다.

“방탄소년단(BTS)의 ‘나 자신을 사랑하라(Love Myself)’는 메시지를 장궈룽은 20여년 전 ‘나는 나(I Am What I Am)’란 노래를 통해 전했다”는 그는 장궈룽의 팬덤을 전세계 5억명 정도로 추산했다. 오 교수는 “배우 장국영보다 가수 장국영을 더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면서 “가수 장궈룽의 팬들은 그의 밝고 선한 영향력에 끌린, 요즘 BTS 팬덤을 닮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통적인 남성상에 대한 관념이 무너지면서 (동성 연인을 사귀고 중성적 이미지였던) 장궈룽의 다양한 면모가 지금 더 주목받게 됐다”고 덧붙였다. 장궈룽은 콘서트에서 빨간 하이힐을 신은 채 남성 댄서와 전위적인 춤을 추고, 긴 머리에 중성적 느낌의 의상을 입는 등 90년대 말 당시로선 파격적인 행동으로 매스컴의 공격 대상이 됐지만, 이젠 오히려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 ‘주체적 자아의식의 상징’이 되어 후영미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게 오 교수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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