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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민노총에 지령 준 北이광진, 대남공작기관 수장 승진"

중앙일보

입력

2023년 1월 18일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이 서울 중구 민주노총 서울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들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지령을 내린 것으로 의심받는 북한 공작원이 이광진 등이다. 뉴스1

2023년 1월 18일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이 서울 중구 민주노총 서울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들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지령을 내린 것으로 의심받는 북한 공작원이 이광진 등이다. 뉴스1

 국가정보원이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의 간첩 의혹 수사과정에서 북측의 지시자로 지목돼 온 북한 공작원 이광진(북한명 리광진)이 최근 대남공작기관의 수장 자리에 올랐다고 판단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4일 정보당국과 법조계에 따르면 국정원은 이광진이 조선노동당문화교류국 부장(남한의 장관 격) 자리에 올랐다는 첩보를 복수의 루트를 통해 확보했다. 그동안 이광진은 문화교류국의 부부장급(차관보 격) 간부로 알려져 있었지만, 이보다 서열이 높은 부장(장관 격) 자리까지 승진했다는 것이다.

이광진은 문화교류국 공작원들로 하여금 지난 21대 총선을 앞둔 2019년 10월 “더불어민주당 등의 압도적 승리를 위한 사업을 추진하라”는 등의 지령을 석모 전 민주노총 조직쟁의국장 등에게 전달케 한 장본인이다. 같은 해 1월 “경기 화성·평택시의 군사기지와 화력발전소, 항만 등 관련 비밀 자료를 수집하여 유사시에 대비하라”는 지령도 그의 손을 거친 것이다.

이광진은 1990년대 ‘모자 공작조’ ‘부부 공작조’로 두 차례 이상 남한에 침투한 성과를 인정받아 ‘영웅’ 칭호를 받았다고 조사돼 있다. 이광진의 이름은 2015년 적발된 ‘김모 목사 간첩’ 사건과 2021년 ‘청주 간첩단(자주통일 충북동지회)’ 사건 등에서도 등장한다. 당시엔 해외에서 간첩들과 직접 접선해 지령을 내리고 공작금을 전달한 공작원으로 거론됐다.

북한 정보기관 체계도.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북한 정보기관 체계도.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국정원은 이광진이 남한 내 간첩망 구축 등의 성과를 인정받아 문화교류국의 1인자가 된 시점을 2020년 정도로 추정한다. 북 측은 전임자인 윤동철 전 부장의 얼굴이 2016년 7월 남한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점을 반면교사 삼아 그동안 이광진 부장 취임을 베일 속에 감췄다는 게 정보당국의 분석이다. 통일부가 올해 2월 기준으로 펴낸 북한 권력기구도에는 문화교류국이라는 부서조차 나오지 않는다. 2022년 10월 기준으로 펴낸 북한 기관별 인명록에서도 이광진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광진의 행적을 꾸준히 추적해 온 국정원은 문화교류국 부장 승진 사실을 파악했다. 이미 확보한 생년(1960년생), 여권명(김동진), 여권번호, 얼굴 사진 등의 정보는 청주 간첩단 사건 당시 재판부에 제출됐다. 김 목사 사건 재판 때는 이광진이 출연한 조선중앙TV 2015년 10월 9일자 영상이 제출돼 인정받은 바 있지만, 해당 영상과 사진은 일반에 공개되진 않았다.

2022년 10월 26일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 국정원은 현재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의 간첩 의혹 등을 수사하고 있다. 국회 사진기자단

2022년 10월 26일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 국정원은 현재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의 간첩 의혹 등을 수사하고 있다. 국회 사진기자단

최근 남측 간첩망 적발 여파…실각 가능성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2020년 12월에 펴낸 연구보고서 「김정은 시대 북한의 정보기구」에 따르면, 이광진이 이끄는 문화교류국은 북한에서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조선인민군 정찰총국과 더불어 3대(大) 대남·해외 정보기관에 속한다. 문화교류국은 조선노동당 편제상 통일전선부 산하에 있지만, 주요 활동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직접 보고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통일전선부와 구분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문화교류국은 세 기관 가운데 역사가 가장 길기도 하다.

문화교류국은 공작원 남파와 한국 내 고정간첩 관리, 지하당 구축 등 정통 정보공작을 수행한다. 남한에 지하당을 만든 뒤 혁명의 결정적 시기에 지하당을 매개로 남한 체제를 전복하는 게 활동 목표다. 최근 민주노총 사건 등뿐만 아니라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 1992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1999년 민족민주혁명당, 2006년 일심회 간첩단, 2011년 왕재산 사건의 배후로도 꼽힌다. 문화교류국 공작원들은 남한의 정치·경제·국제·문화 사정에 해박한 엘리트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선생’ 호칭으로 불린다고 한다.

정보당국 안팎에선 최근 강도 높은 수사를 통해 남한 내 지하조직이 잇따라 적발된 탓에 이광진이 부장 자리에서 경질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정원은 공식적으론 이광진 문화교류국 부장 승진 여부 등에 대해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확인해줄 수 없다”면서도 “정보자산을 통해 북 대남공작기구와 핵심인물의 변동 사항을 지속해서 추적·확인해 왔다”고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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