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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칼 강도' 이정학에 주목…'경사 피살' 2인조 첫 대질신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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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21년간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던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 공범 중 한 명인 이정학(52)이 지난해 9월 2일 대전 둔산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21년간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던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 공범 중 한 명인 이정학(52)이 지난해 9월 2일 대전 둔산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대전 사건' 이승만·이정학 첫 대질 신문 

21년 전 '백 경사 피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이하 대전 사건)' 공범 이승만(53)과 이정학(52) 중 이정학 범행에 무게를 두고 대질 신문에 나선다. 이정학이 과거 다른 범행에서 백 경사를 살해할 때 쓰인 흉기와 비슷한 도구를 다룬 정황이 나왔기 때문이다.

전북경찰청은 4일 "백선기(사망 당시 54세) 경사를 살해하고 권총을 탈취한 혐의(강도살인)로 입건한 이들을 대질 신문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질 신문은 5일 이들이 수감돼 있는 대전교도소에서 한다. 백 경사는 2002년 추석 연휴 첫날인 9월 20일 0시50분쯤 전주시 금암2파출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범인은 백 경사를 흉기로 수차례 찌른 뒤 실탄 4발 등이 장전된 38구경 권총을 빼앗아 달아났다.

경찰은 "백 경사 상처 부위를 볼 때 식칼이나 과도가 아닌 회칼 종류가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이정학이 진범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신 전북경찰청 형사과장은 "이정학·이승만을 각각 6차례 조사하는 과정에서 증거와 부합하는 유의미한 진술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2001년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 공범. 사진 왼쪽부터 이승만, 이정학. [사진 대전경찰청]

2001년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 공범. 사진 왼쪽부터 이승만, 이정학. [사진 대전경찰청]

경찰 "이정학, 2004년 강도 위해 회칼 준비" 

경찰은 2004년 7월 대전 유성 톨게이트에서 이정학 홀로 교통사고를 낸 뒤 도주한 사건에 주목하고 있다. 이때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이정학 차 트렁크 안에서 회칼과 노끈을 발견했다. 조사 결과 이정학은 대전 한 유흥업소 사장을 위협해 금품을 빼앗으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정학이 "당시 범행을 위해 준비한 회칼은 나중에 폐기했다"고 진술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정학은 조사에서 "2017년 전주 한옥마을에 놀러 간 게 전부"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 말은 거짓으로 밝혀졌다. 백 경사 사건 당시 고교 동창인 이정학과 이승만은 충남 논산에서 불법 음반·테이프 유통업 사무실을 차리고 전북 전주·익산 등을 오가며 영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두 사람이 백 경사 사건 넉 달 후인 2003년 1월 22일 대전 은행동 한 쇼핑몰에 주차된 현금 수송차에서 4억7000만원을 탈취한 사실도 밝혀냈다. 이 사건은 공소 시효가 지났다. 그러나 경찰은 "두 사람이 쇼핑몰 사건을 포함해 다른 범행을 준비하기 위해 백 경사 권총을 가져간 것으로 추측된다"며 "백 경사 사건 이후 총기 이용 범행이나 미제 사건 등을 모두 조사했지만, 현재까지 백 경사 권총을 사용한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 공범 이승만(왼쪽)과 이정학이 지난해 9월 2일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 공범 이승만(왼쪽)과 이정학이 지난해 9월 2일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이승만·이정학 서로 상대방 범인 지목" 

경찰은 지난 2월 13일 "백 경사 총기 위치와 진범을 안다"는 이승만 편지를 받고 장기 미제로 남아 있던 백 경사 사건 수사를 재개했다. 지난달 3일엔 이승만이 지목한 울산 모 여관 천장에서 권총도 발견했다. 이승만은 "이정학 부탁을 받고 권총은 숨기고 실탄은 분리해 모처에 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경찰 조사에서 "상대방이 백 경사를 살해한 뒤 총기를 가져왔다"고 했다.

두 사람은 2001년 12월 21일 대전 둔산동 국민은행 지하 주차장에서 현금을 수송하던 직원(당시 45세)을 38구경 권총으로 살해하고 현금 3억원이 든 가방을 들고 달아난 혐의(강도살인)로 기소됐다. 두 사람은 재판 내내 "상대방이 권총을 쐈다"고 떠넘겼다. 1심 법원은 지난 2월 17일 군 수색대대 출신으로 사격 실력이 뛰어난 이승만이 총을 쏜 것으로 결론짓고 그에게 무기징역, 이정학에겐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경찰은 이승만이 다음 달 10일 예정된 대전 사건 항소심을 앞두고 이정학의 흉악성을 부각하기 위해 제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정학도 사람에게 총을 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주장이다.

2001년 12월 21일 대전시 서구 둔산동 한 건물 지하주차장에서 경찰이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에 이용된 차량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1년 12월 21일 대전시 서구 둔산동 한 건물 지하주차장에서 경찰이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에 이용된 차량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 "대질 앞서 TV시청 제한 필요" 

경찰은 두 사람 진술이 엇갈리는 만큼 수사 보안에도 신경 쓰고 있다. 경찰은 "교도소 안에서도 공중파 뉴스를 자유롭게 볼 수 있기 때문에 두 사람 TV 시청을 제한하려 했지만,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며 "가족·지인이 면회를 통해 수사 사항이 전달되면 (대질 신문) 효과를 얻기 어렵다"고 했다.

경찰은 사건 당시 파출소에 남아 있던 갈매기 모양 족흔적(발자국) 2개 주인도 국과수 감정을 거쳐 확인했으나 누구 것인지는 함구했다. 이후신 과장은 "두 사람 진술이 일치하는 게 거의 없다"며 "대질 신문을 두세 차례 하면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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