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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침·첩약 등으로 2700만원…'보험금 먹는 하마' 논란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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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대한한의사협회 회원들이 지난달 29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삭발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스1

대한한의사협회 회원들이 지난달 29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삭발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스1

50대 여성 A씨는 2014년 11월 교통사고로 단순 타박상을 입고, 대형 한의원을 찾았다. 상해급수 12~14급은 경미한 사고로 보는데, A씨의 경우 14급이었다. 하지만 A씨는 지난 1월까지 8년간 대형 한의원 등에서 473회 통원 치료를 받았다. A씨는 약침·첩약·추나·부항 등 한방 치료비로 2700만원을 썼다. 모두 보험사가 해당 의료기관에 지급해야 하는 돈이다.

지난달 29일 대한한의사협회 회원들은 세종시 국토교통부 앞에서 대거 삭발 시위에 나섰다. 지난달 26일 삭발에 나선 홍주의 대한한의사협회장은 단식투쟁까지 돌입한 상태다. 국토부가 교통사고 환자 첩약 처방 일수를 1회 10일에서 5일로 줄이는 것과, 치료비 상세 청구 의무화 방안을 내놓자 이들은 "교통사고 환자의 진료받을 권리를 제한하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교통사고 환자에 대한 한방의 과잉진료 논란을 둘러싸고 보험업계와 한방업계가 정면 충돌하고 있다. 그간 보험업계는 대형 한방병원ㆍ한의원이 교통사고 경상환자를 ‘나이롱 환자’로 만들어 결국 전체 보험료 인상을 부추긴다고 비판해왔다. 한방업계에선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와 한의사의 진료권을 침해해선 안된다는 입장이다.

2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자동차보험 진료비 청구 건수에서 한방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23%에서 2022년 58.2%로 7년 새 35.2%포인트 급증했다. 2021년 처음으로 양방 진료비를 넘어선 후 계속 급증하는 추세다. 2021년 기준 전체 의료기관 중 한방병원과 한의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15.2%이고, 교통사고 경상환자 수도 코로나19 영향으로 2020년 이후 2년 연속 감소했다. 그런데도 한방 진료비가 계속 증가하는 건 첩약과 약침을 중심으로 과잉진료가 이뤄지기 때문이라는 게 보험업계의 주장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한의업계는 일반 병원 대신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을 찾는 교통사고 경상환자의 수가 늘어난 영향이 크다고 말한다. 2017년과 2021년, 교통사고로 의료기관을 찾은 환자 수를 비교해 보면, 병ㆍ의원급을 방문한 환자는 198만명에서 153만명으로 18%(45만명) 감소한 반면, 한방병원ㆍ한의원급을 방문한 환자수는 86만명에서 150만명으로 74%(64만명) 증가했다. 한의협 관계자는 “경상환자들은 병원에 가봤자 엑스레이 한번 찍고 물리치료 받는 수준이니 만족도가 떨어져서 결국 다시 한의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동차보험 진료 수가를 결정하는 국토교통부는 한의사의 처방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경상환자의 1인당 평균 진료비를 보면 양방에 비해 한방이 크게 늘어서다. 대형 보험사 4곳(삼성화재ㆍ현대해상ㆍKB손보ㆍDB손보)에 따르면 경상환자의 1인당 평균 진료비는 지난해 한방이 108만3000원으로 양방(33만5000원)의 3배 이상이었다. 양방은 2018년 31만6000원에서 2022년 33만5000원으로 크게 변화가 없었지만, 같은 기간 한방은 70만2000원에서 108만3000원으로 38만원가량 늘었다. 손보협회 관계자는 “양방은 약제 사용기준 등이 명확하지만 한방은 그렇지 않다 보니 침·부항·첩약·약침 등 환자에게 할 수 있는 걸 한번에 다 처방하는 '세트 청구'가 고착화됐다”고 꼬집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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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계는 한방진료 중에서도 약침과 첩약이 ‘보험금 먹는 하마’라고 보고 있다. 약침이란 침과 한약을 결합한 한의학 치료법으로, 한약에서 추출한 정제액을 주사기 등에 넣어 체내에 주입하는 치료법을 말한다.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보험 중 약침 치료비 규모는 1443억 원으로 2015년(198억원) 대비 약 7배 급증했다. 한의사의 재량에 따라 시술 횟수가 천차만별이다 보니 앞선 A씨 사례처럼 약침을 과다처방 받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이에 대해 한의업계 관계자는 “교통사고 후 1주일까지는 약침술이 매일 가능하지만 2주차부터는 3회까지만 청구할 수 있는 등 암묵적으로 심평원에서 삭감하는 기준이 있다”며 “한의사들끼리 이 기준을 공유하고 준수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첩약’ 일수를 둘러싼 갈등도 첨예하다. 심평원에 따르면 한방병원이나 한의원을 찾는 환자 10명 중 7명 이상(75.9%)이 한 번에 10일(20첩)치 첩약을 처방받고 있다. 환자의 증상이나 부상 정도에 관계 없이 10일치 약을 주다 보니 먹지 않고 버리거나 중고로 되파는 행태가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다. 자동차보험 첩약 진료비는 2015년 974억원에서 지난해 2805억원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보험업계는 최대 처방일수를 5일로 줄이고, 필요시 5일씩 추가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한방업계는 5일로 줄여도 된다는 한의학적 근거를 제시하라고 맞서는 상황이다. 한의협 관계자는 “약침 횟수나 첩약 일수를 무조건 깎아내리는 건 그저 보험사의 손해율을 줄이기 위한 것일 뿐”이라며 “정확한 성분이나 용량 등을 기재해서 청구하는 식으로 처방의 질을 높이고, 일부 한의사들의 과잉진료를 막기 위한 자정노력을 기울이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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