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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윤도 친명도 싫다"…무당층 이젠 29%, 총선 '빈 공간' 커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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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싫다는 무당층이 늘어나면서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2021년 11월 15일 열린 ‘만화로 읽는 오늘의 인물 이야기 비상대책위원장-김종인’ 출판기념회에서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축사하고 있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싫다는 무당층이 늘어나면서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2021년 11월 15일 열린 ‘만화로 읽는 오늘의 인물 이야기 비상대책위원장-김종인’ 출판기념회에서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축사하고 있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도, 더불어민주당도 싫다는 무당층(無黨層) 비율이 최근 상승 추세다. 극단적 대결 양상인 정치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아지며 제3지대 공간이 움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조사해 31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각각 33%로 동률을 이뤘다. 눈에 띄는 건 어느 정당도 좋다고 답하지 않은 무당층이 29%에 달했다는 점이다. 두 정당이 직전 주에 비해 각각 1%포인트, 2%포인트 하락한 사이 무당층은 4%포인트 상승했다.

정치 성향상 중도층만 놓고 보면 무당층의 비중은 더 크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각각 27%, 29%인데 반해 무당층은 39%에 달한다. 지난해 3·9 대선과 6·1 지방선거 즈음 조사에서 중도층의 무당층 비율은 각각 24%, 26%였다. 1년 만에 10%포인트 훌쩍 넘게 치솟은 것이다. 정치권에선 “여의도 1당은 무당”이라는 말도 나온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169석의 거야(巨野) 민주당이 입법 독주를 하고, 집권 여당 국민의힘이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정치 혐오’ 현상이 영향을 끼쳤다는 진단이 나온다. 최근 통계청의 ‘2022년 한국의 사회지표’ 조사에 따르면 국회를 믿는다는 응답은 전년보다 10.3%포인트 하락한 24.1%에 그쳤다. 국민 4명 중 3명 이상이 국회를 불신하는 셈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같은 기류를 반영하듯 내년 4·10 총선을 1년여 앞두고 또다시 제3지대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금태섭 전 의원은 18일 국회에서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 준비모임’ 첫 토론회를 연다. 이날 토론회 좌장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맡는다. ‘내로남불’을 지적하며 2020년 민주당을 탈당한 금 전 의원과 여야를 넘나들며 비대위를 이끈 김 전 위원장은 정치권의 대표적인 중도 지향 인사다. 김 전 위원장은 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양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너무 짙다 보니 제3지대 정당이 새롭게 생겨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회에서 선거제 개편 논의가 본격화되는 것도 제3지대에겐 긍정적 요인이다. 현재의 단순 소선구제에 중대선거구제 요소가 가미될 경우 여야 양강 구도의 틈바구니를 파고들 수 있어서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는 “선거제 개편안이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 제3지대가 형성될 가능성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 원로인 유인태 전 의원도 “선거법 개정이 이뤄지면 제3지대는 당연히 생긴다”고 강조했다.

핵심 변수는 제3지대에 누가 참여하느냐다. 2016년 총선에서 제3당 국민의당이 돌풍을 일으키는 데엔 안철수라는 상징적 인물이 있었다. 정치권에선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금태섭 전 의원과 함께 활동을 모색하는 인사 중엔 『조국흑서』 저자 김경율 회계사 등 과거 민주당을 지지했다가 이를 접은 중도 인사가 포진해 있다. 하지만 기성 정당 활동을 한 인사는 아니다. 그런 만큼 “제3지대 성공 여부는 이준석 전 대표에 달려 있다”(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전망도 나온다. 캐스팅보트를 쥔 2030을 제3지대가 끌어들이기 위해서도 이 전 대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 체제에 불만을 가진 비명계 인사가 얼마나 제3지대로 넘어오는지도 변수다. 수도권에선 제3지대 깃발이 파급력을 가질 수 있어서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는 “내년 총선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 성격도 있지만, 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거야에 대한 심판론도 상존해 있다”며 “준비된 제3세력이 등장하면 선택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기현(오른쪽)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실에서 만나 기념 촬영 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 김성룡 기자

김기현(오른쪽)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실에서 만나 기념 촬영 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 김성룡 기자

공천에서 배제된 인사의 탈당 러시를 통한 수동적 제3지대의 탄생도 가능하다. 박원호 교수는 “현재는 잠재적 4당이나 다름없다”고 진단했다. 겉보기에는 양당 체제지만 여야가 각각 친윤과 비윤, 친명과 비명으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야의 분화 시나리오는 민주당에서 공공연하게 언급되고 있다. 민주당 재선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재판에서 유죄를 받고도 공천권을 놓지 않으면 제3지대론은 더욱 탄력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제3지대 한계는 여전…“양당 온건파 생각이 같은 건 아니다”

다만 제3지대의 한계는 여전하다. 이재묵 한국외대 교수는 “양당의 온건파가 극단파인 각각 친윤·친명에 반감이 있지만 서로 생각이 같은 건 아니다”며 “제3지대로 규합하려면 정책적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의원은 “이준석 전 대표는 유권자 절반인 여성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선거 때 돌풍을 이끌기는 어렵다”고 했다.

제3지대가 부상하는 상황에서 중도층 민심을 얻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야에서 공히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신평 변호사는 2일 페이스북에 “한국에서의 선거는 보수, 중간층, 진보의 3 : 4 : 3의 판에서 중도층의 마음을 누가 더 얻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며 “(보수 지지층에 구애하는) 윤석열 정부는 지금 위험한 선택을 하고 있다”고 적었다. 최근 지명된 송갑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달 31일 “적대적 대결 정치의 극단으로 달려가는 진영 사이에서 무당파로 불리는 전에 없이 드넓은 바다가 우리가 들어야 할 최우선의 민심”이라고 했다.

JP의 자민련, 안철수의 국민의당도 소멸…제3지대 잔혹사

1996년 4.11 총선 당일 자민련(자유민주연합) 개표상황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당시 자민련 총재)가 박수에 호응하고 있다.

1996년 4.11 총선 당일 자민련(자유민주연합) 개표상황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당시 자민련 총재)가 박수에 호응하고 있다.

선거때마다 제3지대는 늘 꿈틀거렸지만, 대부분 제3지대 정당들은 2~3년을 넘기지 못하고 거대 양당에 흡수되거나 자연소멸했다.

역대 총선에서 제3지대 동력은 대체로 지역주의였다. 가장 오래 존속한 제3정당으로 평가받는 자민련(자유민주연합)은 1995년 창당 당시 JP(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충청의 맹주로 자리매김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자민련은 충청권 28석 가운데 24석을 석권하는 등 총 50석을 차지했다. 이후 DJP연합과 붕괴 과정에서 부침을 겪으며 충청 기반이 흔들렸고, JP의 정계은퇴로 구심점마저 사라지자 자연스럽게 소멸했다.

2016년 돌풍을 일으켰던 국민의당 역시 안철수라는 대선주자와 정동영ㆍ천정배ㆍ박지원 등 호남세력의 연합이 시너지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민의당은 창당 3개월 만에 치렀던 20대 총선 당시 호남에서만 23석을 얻었고, 전체 의석수 38석으로 자민련 이후 20여년 만에 제3정당이 원내교섭단체가 됐다. 특히 1ㆍ2정당을 모두 비판하며 “대안론”을 내세운 국민의당은 당시 정당득표율(비례대표 득표율)에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근소하게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국민의당은 합당과 분당을 거치며 쪼그라들었고, 21대 총선에선 비례대표 의원 3명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2022년 대선 직후에는 국민의힘에 사실상 흡수됐다. 2018년 바른정당과 합당 당시 이에 반발한 호남세력의 탈당으로 호남 지지기반이 대폭 축소됐고, 이후 당 내홍 격화로 중도층 지지도 끌어내지 못했다는 평가다. 국민의당 출신 인사는 “‘새정치’를 내세워 중도층을 공략하려 했던 안철수와 호남을 기반으로 한 구(舊)세력 조합은 결국에는 갈라설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당의 태생적 한계”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대선주자급 인물과 지역기반이 없으면 제3정당의 지속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도층이 현안이나 정치상황에 따라 지지를 쉽게 철회하는 ‘스윙보터’의 특성을 지닌만큼 현행 소선거구제에서는 탄탄한 지지층으로 자리잡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이재묵 한국외대 교수는 “당이 가진 자원이 많은 기성정당에서 손해를 감수하고도 뛰쳐나와 정당을 구성하려면 당의 구심점이 될 강력한 대선후보가 있어야 하고, 지역구 기반이 좋은 현역 의원이 합세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도 “현재 거대 양당이 ‘잠재적 4당 체제’로 굴러가고 있지만, 선거법이 바뀌지 않고선 양당제가 무너지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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