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불씨가 바람 타고 날아다녀"…마을회관으로 대피해 발만 구른 홍성 주민들 [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축사 뒤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불씨가 바람을 타고 금세 산등성이를 넘어갔다. 축사와 산 아래 사이에 널따란 밭이 있는 데 없었으면 소가 모두 타죽었을 것이다”(축산농가) “부모님 두 분이 사시는데 놀라서 달려왔다. 일단 집으로 모시고 갔다가 안전해지면 다시 모셔다드릴 생각이다”(40대 남성)

2일 오전 11시 충남 홍성군 서부면 중리의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인근 마을로 확산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2일 오전 11시 충남 홍성군 서부면 중리의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인근 마을로 확산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2일 오전 11시쯤 충남 홍성군 서부면 중리 한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불은 산능성이를 타고 인근 마을로 확산, 오후 8시 현재 진화작업이 진행중이다. 산불 발생 2시간20분 만인 오후 1시20분 산불단계를 ‘3단계’로 격상한 산림 당국은 헬기 18대와 진화 장비 67명, 인력 923명을 투입했지만, 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번지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순간풍속 11m 강한 바람…주택 18채 소실

당국에 따르면 산불이 발생한 서부면 중리 일원에서는 순간 풍속 11m의 강한 바람이 불었다. 오후 7시 기준 화선(火線)은 8.5㎞가량이며 산불 영향 구역은 350ha정도다. 산불로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주택 18채와 축사 3동, 비닐하우스 9동이 탔다. 또 문화재인 사당 1곳에 소실됐다. 마을 주민 108명은 인근 마을회관과 경로당 등으로 대피했다.

불길이 지나간 곳에는 나뭇가지만 앙상하게 남았고 바닥은 검은 재만 가득했다. 헬기가 물을 뿌리고 진화대원이 잔불을 정리했지만, 정상 부근에서 다시 불씨가 살아나면서 급하게 소방차가 출동하기도 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진화작업이 더뎌지자 불길은 더욱 확산했다.

주민들 "밤새 불씨 다시 살아날까 걱정" 

가까스로 화를 면한 축사에서는 농장주 등 주민이 불길이 다시 살아날까 봐 전전긍긍했다. 한 주민은 “밤에 되면 진화가 더 어려울 텐데 축사가 온전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또 다른 주민은 산불지휘통제소로 달려와 산 정상을 가리키며 “저기서 불이 다시 살아났다. 민가와 가까운 곳”이라며 발을 굴렀다.

2일 오전 11시쯤 충남 홍성군 서부면 중리의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로 산림이 검게 타 있다. 신진호 기자

2일 오전 11시쯤 충남 홍성군 서부면 중리의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로 산림이 검게 타 있다. 신진호 기자

충남도와 산림 당국은 주민이 추가로 대피할 것을 우려, 인근 초등학교 등에 대피소를 마련할 방침이다. 산불진화대원 외에도 소집된 공무원 600여 명이 인근에서 대기 중이다.

산림 인근 벌목작업 중 최초 발화 추정 

최초 산불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에서 만난 주민은 “오전에 나무를 벌목하던 소리가 났는데 갑자기 연기가 피어올라 놀라서 뛰어나왔다”며 “골짜기에서 부는 바람은 종잡을 수가 없는 데다 불길이 집이나 축사로 내려올까 봐 자리를 뜨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벌목 현장에서 처음 불이 났다는 데 거기 있던 3명을 당국이 데려갔다고 들었다”고 했다.

2일 오전 11시쯤 충남 홍성군 서부면 중리의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 현장에서 김태흠 충남지사가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2일 오전 11시쯤 충남 홍성군 서부면 중리의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 현장에서 김태흠 충남지사가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마을회관으로 대피한 사람들은 산불이 난지 8~9시간이 지났는데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한 주민은 “순식간에 불길이 마을 코앞까지 내려왔는데도 자식 같은 소를 두고 내려오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80대 할머니는 “처음에 우리 아저씨가 불이 났다고 말했을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심각해졌다"라며 "평생 이런 불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충남도, 전 직원 비상소집…김태흠 지사 현장지휘

충남도는 산불현장통합지휘본부를 가동하고 김태흠 충남지사가 직접 현장에서 지휘하고 있다. 중부지방산림청도 공동 대응 중이다. 충남도는 이날 오후 4시56분 김태흠 지사가 전 직원에게 ‘홍성군 서부면사무소로 집결하라’며 비상소집령을 내렸다. 홍성군도 오전 11시44분 전 직원 동원령을 내리고 진화 작업에 나섰다.

2일 오전 11시쯤 충남 홍성군 서부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민가까지 확산하고 있다. 연합뉴스

2일 오전 11시쯤 충남 홍성군 서부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민가까지 확산하고 있다. 연합뉴스

충남도와 산림청은 야간진화로 전환한 뒤 진화대원을 중심으로 불길을 잡고 있다. 3일 오전 날이 밝는 대로 가용헬기를 총동원해 불을 끌 방침이다. 충남도 관계자는 “오늘 밤 안으로는 진화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불길 확산을 차단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산림청 실시간 산불정보 사이트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현재까지 하루 동안 전국에서 산불 34건이 발생해 이 가운데 22건 진화 완료했고, 나머지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불이 나면서 산림당국이 진화 장비와 인력을 분산 배치해야 하는 데다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 쉽게 진화하지 못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