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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운동권이 왜 말립니까"…24년 전 종로에서 울먹인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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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권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양손을 들어올려 승리의 브이자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노무현 사료관 홈페이지

1995년 6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권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양손을 들어올려 승리의 브이자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노무현 사료관 홈페이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출신 이인규 변호사의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가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3위(3월 4주)에 오른 가운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를 되돌아본 친노(親盧) 참모의 회고록이 출간됐다.

황이수 전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은 지난달 30일 회고록 『약관대 강당당 노무현』을 펴냈다. ‘약관대 강당당’은 노 전 대통령이 정치 생활 좌우명으로 삼았던 “약자에게 관대하고 강자에게 당당하라”는 문장을 줄인 말로, 부산시장 선거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인터뷰 답변을 준비하던 중 직접 택한 말이라고 한다.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 코스타리카 해외 순방 당시 함께 수행했던 청와대 비서진. 오른쪽부터 황이수 전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 나무와숲 제공.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 코스타리카 해외 순방 당시 함께 수행했던 청와대 비서진. 오른쪽부터 황이수 전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 나무와숲 제공.

서울대 총학생회장 권한대행 출신인 황 전 비서관은 1995년 노 전 대통령 부산시장 캠프를 거쳐, 2002년 대선 핵심 조직 ‘금강 캠프’에서 활동했다. ‘금강 캠프’에는 83학번 운동권 출신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도 함께 활동했는데, 한때 이들은 ‘83학번 4인방’으로 불렸다. 황 전 비서관은 2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우선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분들에게 작은 위로를 드리고 싶어 책을 펴냈다”며 “더 나아가 극단에 치우치지 않은, 감동을 주는 정치가 있었다는 기억도 환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책에는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노 전 대통령의 내밀한 일화가 눈에 띈다. 1998년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노 전 대통령이 부산 북강서을로 지역구를 옮기는 과정이 대표적이다. 1999년 초 서울 종로의 한 음식점으로 참모들을 소집한 노 전 대통령이 “내년 선거에 부산에서 출마할랍니다”라고 말하자, 황 전 비서관은 “너무 힘든 가시밭길 그만 가시고, 탄탄대로 정치 1번지 종로 국회의원 계속하시죠”라고 말했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은 울먹이며 “운동권이 왜 말립니까? 내가 싸우겠다는데…”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약관대 강당당 노무현』 책 표지. 도서출판 나무와숲 제공

『약관대 강당당 노무현』 책 표지. 도서출판 나무와숲 제공

2000년 총선에서 부산으로 내려간 노 전 대통령이 조직 선거를 거부하는 대목도 눈에 띈다. 우호적인 지역 주민을 읍·면·동 책임자로 정하고 활동비를 지급하자는 참모들 계획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그렇게 정치하지 않았습니다”라며 “내 뜻을 따르지 않을 분들은 떠나십시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항의 표시로 캠프를 떠나 며칠 뒤 복귀한 황 전 비서관에게 노 전 대통령은 “이수씨, 서로 조금씩 양보합시다. 단 선거법 위반 시비가 없도록…”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청와대 관저 안 모습도 책에 담겼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으로 직무에 복귀한 이후 노 전 대통령이 퇴근 시간 황 전 비서관을 불러 “담배 한 대만 주세요”라고 청했다고 한다. “여사님은 여기 안 오시냐”는 물음에 노 전 대통령은 “괜찮습니다. 한 대 더 주세요”라고 말한 뒤 연달아 세 개비를 태웠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다음 날 두 특수통 검사가 봉하마을에 다녀간 사실도 기록됐다. 과거 ‘소윤(小尹)’으로 불렸던 윤대진 전 검사장과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시절 직무대행을 지낸 조남관 전 대검 차장검사가 주인공이다. 황 전 비서관은 “둘 다 83학번 대학 동기로, 노무현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감반장을 지냈다”며 “당시 검찰 상황으로 보아 눈치 많이 보였을 텐데, 그래도 조문 와줘서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고 책에 적었다.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가 모두 사실이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의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가 진열돼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가 모두 사실이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의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가 진열돼있다. 연합뉴스

황 전 비서관은 이인규 변호사 회고록과 비슷한 시기에 책을 낸 데 대해 “그와는 관계없이 작년부터 준비했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 회고록에 노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를 상세히 담은 데 대해 “흔히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한다’고 하는 데 그런 책을 내신 것에 대해 아쉽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세간에선 ‘이인규 검사가 노 전 대통령을 죽였다’는 말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도 미움이나 원망조차 없었다. 그분이 그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이렇게 상처를 주는 건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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