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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260그루 베고 억새밭 갈아엎었다…전주시 벌목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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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시 도심을 가로지르는 전주천과 삼천 일대 버드나무 260여 그루가 최근 한 달 사이 잘려 나갔다. 사진은 전주천 일대로 벌목 전(왼쪽)과 후 모습. [사진 전북환경운동연합]

전북 전주시 도심을 가로지르는 전주천과 삼천 일대 버드나무 260여 그루가 최근 한 달 사이 잘려 나갔다. 사진은 전주천 일대로 벌목 전(왼쪽)과 후 모습. [사진 전북환경운동연합]

버드나무 베고 억새밭 갈아엎어 

전북 전주시가 도심을 가로지르는 전주천과 삼천 일대 나무 수백 그루를 벌목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전주시는 "홍수를 막기 위한 치수 정책"이라고 했지만, 환경단체는 "생태계 훼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2일 전주시 등에 따르면 시는 최근 한 달 사이 전주천과 삼천 주변 11㎞ 구간에 있던 수령 20년 안팎 버드나무 260여 그루를 벴다. 둘레가 대부분 두 팔을 모은 것보다 큰 아름드리 나무로 현재는 밑동만 남았다. 비슷한 시기 억새밭 3800㎡도 갈아엎었다.

전주천은 연간 1000만명이 찾는 한옥마을을 끼고 흐르는 하천이다. 도시화‧산업화 시기엔 국내 여느 도심 하천처럼 오염이 심각했다. 1990년대 말 시민단체가 '자연형 하천 조성 사업'을 제안했고, 전주시가 이를 이행하면서 생태계가 되살아났다. 천변에 뿌리내린 버드나무·억새 군락지가 절경을 이루면서 전주 시민뿐 아니라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이 몰리는 명소가 됐다.

전주천에서 잘려 나간 버드나무. [사진 전북환경운동연합]

전주천에서 잘려 나간 버드나무. [사진 전북환경운동연합]

전주시 "인명 보호 우선…일부 구간 꽃밭 조성" 

전주시는 "시민 재산과 인명 보호가 우선"이라며 "기후 변화와 국지성 호우에 따른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 14억원을 들여 하천 준설과 벌목 사업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버드나무와 억새가 자라면서 물 흐름을 방해하고 이물질이 걸려 홍수 위험이 갈수록 커진다"는 논리다.

이윤승 전주시 하천관리과장은 "거의 20년간 자연 하천을 유지하면서 환경과 이수(물 이용)에 치중했다"며 "하천 통수 단면을 확보해 치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자생하는 수목을 제거했다"고 말했다. 통수 단면이란 하천 횡단면으로 물이 흐르는 면적을 말한다. 홍수 때 통수 단면이 클수록 물을 많이 흘려보낼 수 있다. 전주시는 벌목을 마친 천변 일부 구간에는 꽃밭을 만들 계획이다.

전주 한옥마을 인근 남천교 아래 전주천 주변 버드나무들이 잘린 채 밑동만 남아 있다. [사진 전북환경운동연합]

전주 한옥마을 인근 남천교 아래 전주천 주변 버드나무들이 잘린 채 밑동만 남아 있다. [사진 전북환경운동연합]

환경단체 "수달·쉬리 서식처…벌목 중단"

이에 전북환경운동연합 등은 지난달 29일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하천 주변 식생(식물 집단)은 뭇 생명 서식처이자 은신처"라며 "전주천·삼천 경관과 생태계를 훼손하는 무차별 벌목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전주시가 현재까지 버드나무를 포함해 1200여 그루를 벌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환경단체는 "전주시가 집중 호우 때 버드나무 군락지가 전주천·삼천 범람 위험을 키운다는 객관적 자료도 내놓지 못한 채 사업을 밀어붙였다"며 "홍수를 예방하겠다고 하지만 2020년 폭우로 쓸려나간 서신보 쪽 호안(제방 보호 시설)은 무너진 채 방치돼 있고, 하류 구간은 쓰레기 천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물 환경 보전 관련 조례에서 규정한 전주생태하천협의회 자문도 거치지 않은 데다 보금자리를 잃게 된 야생 동물 보호 대책도 전무하다"고 했다.

전북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와 전주시의원 8명이 지난달 29일 전주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주천·삼천 경관과 생태계를 훼손하는 무차별 벌목을 중단해야 한다"며 우범기 전주시장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 전북환경운동연합]

전북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와 전주시의원 8명이 지난달 29일 전주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주천·삼천 경관과 생태계를 훼손하는 무차별 벌목을 중단해야 한다"며 우범기 전주시장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 전북환경운동연합]

전주시 "잠정 중단…환경단체와 협의" 

환경단체에 따르면 전주천엔 법적 보호종인 수달·원앙·삵이 서식한다. 우범기 전주시장은 "전주천과 삼천을 전시·공연·체험이 가능한 통합문화공간으로 전면 정비하고 개발하겠다"고 공약했다.

시민도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최모(46·전주시 중화산동)씨는 "전주천은 초등학생 아들이 어릴 때부터 함께 찾아 추억이 깃든 곳인데 하루아침에 버드나무 숲이 사라져 아들이 슬퍼한다"고 했다. 논란이 일자 전주시는 "벌목 작업을 잠정 중단하고 사업 계획을 보완하겠다"고 한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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