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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스료 인상 지연에…한전채 리스크, 가스공 미수금 커진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30일 서울시내 건물에 달린 전력 계량기.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서울시내 건물에 달린 전력 계량기. 연합뉴스

올 2분기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잠정 보류되면서 에너지 공기업 발(發)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한전 적자 확대와 한전채 추가 발행에 따른 전력 공급망·채권시장 불안, 가스공사 미수금 증가 등이 한층 가까워졌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달 31일 당정 협의회를 열었지만, 민생 어려움 등을 들어 2분기 전기·가스료 결정을 미뤘다. 당초 이달 1일부터 오를 게 유력했던 이들 요금은 당분간 기존 수준을 유지하게 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서민 생활 안정, 국제 에너지 가격 추이, 물가·채권시장 영향, 공기업 재무 상황 등을 좀 더 면밀하게 검토해 조속한 시일 내에 요금 조정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요금 인상이 늦춰질수록 공기업들의 부담 가중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국전력은 전력의 원가 회수율이 약 70%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에너지 위기 여파로 LNG(액화천연가스) 등의 연료비가 크게 오르면서 전기를 비싸게 사온 뒤 손해 보면서 파는 구조가 이어진다.

이 때문에 월 4회 발전사들에 지급하는 전력구매대금을 한전채 발행 등으로 조달하고 있다. 전기료 조정이 지연되면 한전채 발행 규모를 더 늘릴 수밖에 없다. 자금 조달을 원활히 하기 위해 채권 금리를 올리면 '한전채 쏠림' 같은 채권시장 교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한전채 금리는 연 6% 턱밑까지 치솟았던 지난해 10~11월보다 낮아졌지만, 여전히 4%대 안팎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올해 한전 적자가 5조원 이상 발생하면 내년엔 적립금 감소로 한전법상 사채 발행 한도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한전이 32조6000억원의 천문학적 적자를 내면서 '자본금+적립금'의 5배까지 한도를 늘리는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또다시 위기가 찾아오는 셈이다. 그러면 채권 발행이 막히고, 각종 대금 지급에 줄줄이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매년 6조~7조원 수준인 송·배전망 투자가 위축되면 전력 계통 안정성 역시 떨어질 위험이 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기·가스 요금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기·가스 요금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가스공사도 1분기 도시가스 요금 동결에 이어 2분기도 인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경영 차질이 불가피하다. 공사에선 추가 요금 조정이 없을 경우 지난해 말 기준 8조6000억원인 미수금이 올 연말엔 12조90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 미수금에 따른 연간 이자 비용만 4700억원(하루 13억원)에 달하게 된다.

글로벌 LNG 시장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만큼 공사의 재정 악화가 LNG 물량 확보 협상에 걸림돌로 작용할 거란 우려도 있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미수금을 방치하면 나중에 가스요금 대폭 인상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한전·가스공사 등은 '경영 혁신 부족' 등의 지적을 고려해 추가 자구책도 고심하고 있다. 한전은 올해 계획한 1조5000억원 규모의 재정 건전화 계획 외에 추가적인 인건비 조정 방안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비핵심 자산 조기 매각 등도 모색한다. 가스공사는 2조7000억원 수준의 올해 재정 건전화 계획을 이행하는 한편, 인건비·경상경비 추가 절감 방안 등을 빠르게 검토하기로 했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에너지 수요가 적은 2분기에 요금을 현실화해야 여름 이후 인상 부담이 줄어든다"면서 "전기·가스요금 인상과 동시에 국민에겐 에너지 절약 필요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공기업 경영 혁신도 병행해야 한다. 요금 결정도 정치권에서 개입하기보단 전문가에게 맡기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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