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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조리했어도 전량 환불"…미승인 유전자변형 호박, 8년 유통 전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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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식품의약품안전처 SNS

사진 식품의약품안전처 SNS

국내산 주키니 호박 가운데 '미승인 유전자 변형 생물체(LMO)'가 확인돼 최근 정부가 전량 회수 조치에 나섰다. 문제의 주키니 호박은 국내 유통 8년 만이 지나서야 미승인 LMO 종자라는 사실이 드러나 LMO 관리 체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주키니 호박 ‘전량 리콜’…소비자·농민 당혹

주키니 호박. 뉴시스

주키니 호박. 뉴시스

31일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한 기업은 미국에서 승인된 주키니 호박 LMO 종자 2종을 수입해 국내 검역 절차 등을 밟지 않고 육종(育種)해 판매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종자들은 국립종자원이 신품종 등록을 위해 출원된 주키니 호박 종자의 LMO 여부를 검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정부는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 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유전자변형생물체법)에 따라 지난달 26일부터 해당 종자의 판매를 금지하는 등 후속 조치에 들어갔다. 국내산 주키니 호박에 대한 전량 수거·매입에도 나섰다.

재배 농가 등에 따르면 ‘돼지 호박’으로 불리는 주키니 호박은 비슷한 품종인 애호박보다 과육이 단단하고 가격은 약 15% 정도 저렴해 학교급식 등 단체급식용으로 많이 팔렸다. 문제의 주키니 호박 LMO 종자 2종은 2015년부터 최근까지 약 8년 동안 시중에 유통됐다. 갑작스런 회수 조치에 소비자도 재배 농민도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다.

회수 결정 이후 맘 카페나 SNS에는 “아이 이유식에 그동안 넣어 먹였는데 머릿속이 복잡하다. 내가 죄인 같다” “지금껏 내가 뭘 먹었나”와 같은 글이 올라와 있다. 주키니 호박 주산지로 꼽히는 경남 진주 금곡면에서 농사를 짓는 김영희씨는 “2일 자정까지 (정부가) 주키니 호박을 출하 정지하라고 했지만, 다음날(3일)부터 경매장에 보내도 된다는 건지 보상이나 폐기 관련해서 현재까지 들은 게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정부가 괜찮다고 하지만 LMO에 대한 인식이 박혀버리면 소비자가 앞으로 찾을지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8년 동안 LMO가 유통된 이유는

LMO는 유전자변형생물체법에 따라 국내에 들여오려면 위해성 평가와 같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승인된 LMO는 농업용(사료용) 콩·옥수수 등 5개 품목과 식품 가공용 콩·옥수수·유채 등 6개 품목이 있다. 모두 종자가 아닌 최종 생산물인데, 현재 종자용으로 승인된 LMO는 하나도 없다.

LMO 종자가 관련 절차를 뚫고 국내에 들어올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관계 부처에서는 통관 목록 허위신고 가능성 등을 의심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우편으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며 “당시 (업체가) 정식적인 수입 신고를 안 해 수입 검역을 못 했다”고 말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세관을 통과할 때 신고를 제대로 안 했거나 종자(씨앗)라 워낙 작고 소량이다 보니 엑스레이를 지날 때 식물 전문가가 아니라면 놓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업의 종자 반입 경위를 따져 위법 사항이 있다면 관련법에 따라 조치할 계획이다.

미승인 LMO 종자가 뒤늦게 검출되면서 허술한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때 해외 직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등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관계 부처가 협의해 조만간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LMO가 개발·유통되고 있는 농산물 품목 30여개 종자 전체에 대한 LMO 검사에도 나선 상태다. 국내에 수입되는 LMO는 농업용·식품가공용 품목을 합쳐 현재 2040만t(톤)에 이른다.

사진 농식품부 페이스북

사진 농식품부 페이스북

이번 주키니 호박 사태로 LMO 관련 인체 위해성 논란도 다시금 점화하고 있다. 한국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가 2021년 발표한 ‘2020 대국민 LMO 인식조사’에 따르면 성인 남녀800명 가운데 응답자 50.9%가 인체에 대한 안전성 문제를 LMO 관련 우려 1순위로 꼽았다. 다만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전문가와 관계 당국은 안전성 우려는 크지 않다고 설명한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부 교수는 “국내 미승인 제품이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 인증을 받았다면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식약처도 미국 FDA와 캐나다 보건부 등이 해당 LMO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으며,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일반 호박과 같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정부는 전수 조사를 통해 LMO 음성이 확인된 주키니 호박에 대해서만 오는 3일부터 출하를 재개하기로 했다. 소비자와 유통업체가 가지고 있는 주키니 호박에 대해선 2일까지 판매를 중단하고 전량 수거·매입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농산물 수입 특성상 정상과 불량을 구분할 수 없어 조리된 제품도 환불해주고 폐기하겠다는 방침”이라며 “애초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이 문제니 안전성은 안심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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