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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로 교묘히 퍼지는 ‘이단’…중고거래 사이트까지 활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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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3호 10면

이단연구가 탁지원 소장

탁지원 소장은 “이단은 종교인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직·간접적인 이단 피해자가 국내에만 200만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탁지원 소장은 “이단은 종교인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직·간접적인 이단 피해자가 국내에만 200만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지난 3월 3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8부작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신이 배신한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JMS·오대양·아가동산·만민중앙교회 등 4개 신흥종교의 실상과 이를 폭로하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날것’으로 방송을 탔다. MBC에서 제작했지만 연관 단체들로부터 받을 공격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해 넷플릭스에 넘겼다고 한다. 실제로 해당 단체에서 방영금지 가처분 신청, 손해배상 소송 등을 냈다.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은 “이렇게 끔찍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나”라며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종교라는 미명 하에 불법과 폭력을 일삼은 자들을 일벌백계해야 한다” “사이비종교의 준동을 막을 법을 하루속히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월간 ‘현대종교’를 발행하는 현대종교(전 국제종교문제연구소)의 탁지원 소장은 목숨 걸고 ‘이단과의 전쟁’을 벌여왔다. 1970년 이 연구소를 설립한 부친 탁명환 소장이 1994년 사이비 단체의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그 현장에 있었던 탁 소장과 형(탁지일 부산장신대 교수), 동생(탁지웅 성공회 신부) 삼형제는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이단의 실상과 폐해를 알리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3월 24일 만난 탁지원 소장은 “이단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단은 호락호락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와 정부가 힘을 합쳐 이단의 확산을 막고, 사이비종교를 척결할 법을 하루속히 제정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요즘엔 중국발 신흥종교도 판쳐

‘나는 신이다’ 이후 더 바빠진 것 같은데.
“방송 이후 사이비 이단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상담이 폭주하고 있다. 대부분 ‘가족이 이단에 빠졌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유튜브 설교 내용이 좀 이상한데 이단이 아닌가요’ 같은 내용이다. 저희 직원 7명이 하루 종일 전화·문자·이메일 등으로 50명 이상을 상담하고 있다. JMS 관련 문의도 부쩍 늘었다.”
이단과 사이비는 다른 개념인가.
“이단(異端)은 ‘끝이 다르다’는 의미로, 교리나 운영방식 등이 기존 종교단체와 비슷하지만 끝에 가서 본색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이들은 ‘대한예수교장로회 ○○교회’처럼 정상적인 교단과 교회명을 사용하기 때문에 구별하기가 어렵다. 사이비(似而非)는 ‘비슷하지만 아니다’라는 뜻인데, 사회적·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집단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2014년 세월호 침몰과 유병언 구원파의 연관성을 보도하면서 JTBC 손석희 앵커가 ‘이단’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단의 의미를 이해하게 됐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이단의 활동이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바뀌었다는데.
“이들은 대면 일대일 포교를 주로 했는데, 비대면으로 해 보니 효과가 너무 좋아서 지금은 비대면과 대면을 오가는 하이브리드 형태로 가고 있다. 가장 확실한 건 유튜브다. 가짜뉴스와 음모론, 시한부종말론이 판을 치는 와중에 자신들의 교리와 활동상을 배포하는 것이다. 요즘 뜨고 있는 중국발 신흥종교가 전능신교(일명 동방번개)인데 유튜브에 ‘기독교 영화’를 치면 이들이 만든 영화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이단은 젊은층 포섭에 사활을 건다는데.
“젊고 세련된 이미지를 보여주고, 이들의 에너지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수능 직후부터 5월까지, 예비 대학생과 새내기를 집중적으로 노린다. 대학생활과 취업정보 등을 알려준다는 특강을 열고, MBTI를 봐 주고 심리상담을 해 준다며 접근하고, 남자는 축구, 여자는 댄스 동아리를 통해 끌어들이기도 한다. 대학 신입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았다는 ‘대학생활의 모든 것’ 특강도 JMS에서 연 것이다.”
방식도 점점 진화하고 있다는데.
“공시생들을 미혹하기 위해서 노량진, 연극인들을 노려 대학로 등 거점을 확보하고 있다. 직장인·대학생·취준생·알바·유학생·군대까지 청년들이 있는 곳이라면 이단은 반드시 스며든다. 서울은 홍대·신촌·이대 쪽이 이단의 메카다. 요즘은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 고급 제품을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올려놔 대면 장소로 끌어내고, ‘반려동물 용품 거래 카페’ 등을 만들어 포섭하기도 한다. 이단의 수법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데 기존 교단의 대처는 70~80년대 수준을 못 벗어났다. 일단은 자신의 연락처와 개인정보가 도용당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해외에서도 피해 사례가 나오고 있나.
“지난해 7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피격 사망이 대표적이다. 범인의 어머니가 통일교에 빠져서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고 한다. 하소연 할 데도 없고, 통일교 1인자를 만나려고 해도 방법이 없어서 절망한 끝에 ‘통일교와 엮여 있는 유명인사를 응징하겠다’고 결심하고 사제 총을 만들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사역하는 동생 말에 따르면 일본에는 무보수로 통일교 피해자들을 돕는 변호사가 300명이나 있다고 한다.”
유독 기독교 계통에 이단이 많은 이유가 뭘까.
“기존 교회가 물질에 집착하고 진정한 종교인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게 큰 원인이라고 본다. 사랑과 섬김, 나눔보다는 끼리끼리 모이고 사람을 차별하는 모습이 있었다. 몇 교회 몇 사람 때문에 전체 교회가 매도되는 게 안타깝지만 우리 교회가 갱신하고 사랑과 섬김을 실천한다면 사이비 이단은 자연히 설 자리가 좁아질 거라고 믿는다.”
이단을 교회나 개인 차원에서 대처하는 건 한계가 있지 않나.
“영국이나 싱가포르 같은 곳은 종교계·학계와 정부가 힘을 합쳐 이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우리는 헌법에 종교의 자유를 명시했기 때문에 사이비 단체가 더 활개를 친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엽기 사건이 일어나면 문체부·국정원·경찰에서 날 찾아온다. 하지만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알려주는 정보를 받아쓰는 것뿐이다. 불건전한 종교의 반사회적인 행위에 철퇴를 내릴 수 있는 ‘종교 특별법’ 같은 걸 국회에서 만들어야 한다. 사이비종교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200만명이다. 지금 법제화를 하지 않으면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는 꼴이 될 것이다.”

대면·비대면 하이브리드로 변신

탁 소장은 이단 종파들의 협박과 테러에 늘 노출돼 있다. 그는 “최근에도 사이비 집단이 우리 사무실을 급습하고 직원을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도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은 이들이 ‘소송전’으로 작전을 바꿨다고 한다. 탁 소장은 “지금까지 고소당한 게 300건 정도 된다. 1년에 10건 정도 재판에 시달리다 보면 돈과 시간을 뺏기고 사기도 크게 떨어진다. 이들은 돈으로 대형 로펌을 산다. 우리는 기도와 응원해 주시는 손길, 자문해 주시는 젊은 변호사 한 분의 헌신으로 맞대응하는데 승소율이 95% 정도다”고 말했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둘 생각도 했다고 들었다.
“사실 5년째 공황장애 치료를 받고 있다. 매일 만감이 교차한다. 명예도 돈도 안 되는 일을 오로지 사명 하나로 버티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후원이 크게 줄면서 문을 닫을 생각도 했다. 그런데 해외 선교사들이 ‘현지의 K-이단 때문에 너무 힘들다. 이단의 정체를 담은 영문 자료를 꼭 만들어서 보내달라’고 하소연하는 바람에 사역을 놓을 수가 없었다.”
살면서 소소한 재미라는 게 있나.
“영화를 워낙 좋아해 틈틈이 극장에 간다. 아침 수영도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은 ‘가족’이다. 어머니는 이단들도 ‘탁명환은 밉지만 이 사람은 인정한다’고 할 정도로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분이다. 아내와 두 아들도 나를 믿어주고 존경한다. 아무리 바빠도 저녁은 가족이 함께 하려고 한다. 이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는 가족을 파괴하는 집단이 이단이다. 그래서 목숨을 내놓고 그들과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부친 테러범에 탄원서 써줘 사형서 감형, 배후·진범은 아직 미궁”

탁명환

탁명환

탁명환(사진) 소장의 피습 사건이 발생한 건 1994년 2월 18일 밤이다. 탁지원 소장은 그날 일을 담담하게 얘기했다.

“당시 큰 문제가 됐던 사이비종파 관련 기자회견을 한 날이었다. 내가 운전하는 차량 뒷좌석에 탄 아버님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셨다. ‘오늘 기자회견이 성공적이어서 그 살벌하고 심각했던 그쪽이 내일이면 일망타진의 길로 갈 것 같다. 아들아 참 좋다. 조금 있으면 결혼 30주년 기념일인데 너무 고생한 엄마와 제주도 여행이라도 갔다 오고 싶다’고 하시며 제과점에 들러서 어머니 좋아하시는 빵도 사셨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서 부친이 먼저 내리고 혹시 이상한 게 없나 싶어 차량을 점검하고 있는데 위에서 “퍽” 소리가 났다고 탁 소장은 증언했다. 뛰어올라가 보니 칼에 찔린 부친이 목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범인들은 달아났고, 부친은 상계백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사흘 뒤 범행 관련 차량을 몰았던 남자가 검거됐다. 이단 논란이 있던 오류동 모 교회 사람들의 소행이었다. 탁 소장의 증언이다. “그 사람은 공범이고, 진범과 배후는 따로 있다고 봤지만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사형 선고를 받은 그를 위해 우리가 탄원서를 써 줬다. 그도 피해자라고 봤기 때문이다. 사형→무기징역→징역 15년으로 감형된 그를 교도소에서 만나 ‘언젠간 배후에 대해 양심선언을 해 달라’고 했더니 ‘당신들을 위해 평생 기도하겠다’고만 했다.”

내년 부친 30주기를 준비하고 있는 탁 소장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반드시 진범이 잡혀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기 바란다. 아버님을 천국에서 만나면 ‘아들아 수고 많았다’는 한 마디만 듣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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