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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주정완의 시선

빌라 전세시장 혼란, 누가 책임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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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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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집 가진 사람의 세금을 대폭 깎아주기로 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3일 발표한 공동주택 공시가격(안)에 의해서다. 아파트·빌라 등의 보유세를 매길 때 기준이 되는 가격이다. 국토부는 올해 공시가격 인하율로 전국 평균 18.6%를 제시했다. 역대 가장 큰 폭의 인하율이다. 2005년 관련 제도를 도입한 이후 공시가격을 내린 건 올해까지 세 번뿐이다.

공시가격 인하로 비상이 걸린 곳이 있다. 전세 시장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취급하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이란 상품 때문이다. 집주인이 제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보증상품이다. 나중에 전세금 반환에 문제가 생기면 HUG가 집주인을 대신해 전세금을 돌려준다. 이 상품의 가입 조건을 따질 때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한다. 공시가격이 집주인뿐 아니라 세입자에게도 중요한 이유다.

공시가격 인하로 전세보증 축소
빌라 세입자에 역전세난 부추겨
정책 부작용 우려 면밀히 살펴야

특히 빌라 세입자들이 전세보증에 많이 가입했다. 빌라는 집값과 전셋값의 차이가 크지 않다. 세입자로선 제대로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 이때 전세보증에 가입한 상태라면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다. 그런데 공시가격이 낮아지면 전세보증 한도가 자동으로 줄어든다. 기존 가입자에게 당장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전세계약을 갱신하거나 새로운 세입자를 구할 때 불리하게 작용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요인이 있다. 정부가 지난달 2일 발표한 전세 사기 예방 대책이다. 여기엔 전세보증 한도를 축소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정부는 전세 사기를 예방하겠다는 이유를 들었다. 실제로 전세보증의 허점을 노려 세입자를 울린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렇게 한쪽만 생각하면 타당성 있는 조치다.

다만 정책의 부작용까지 충분히 고려했는지는 의문이다. 이번 조치는 모든 전세계약에 일률적으로 적용한다. 전세 사기 위험 주택이냐, 아니냐를 따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다.

가장 큰 어려움이 예상되는 건 빌라 전세다. 모든 빌라의 집주인이 잠재적인 전세 사기꾼은 아니다. 악의적인 의도를 품은 집주인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집주인이 훨씬 많을 것이다. 통상 전세계약이 끝날 때쯤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를 구한다. 여기서 받은 전세금으로 기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준다.

이때 새로운 전세금이 기존보다 적으면 서로 곤란한 일이 벌어진다. 흔히 ‘역전세난’이라고 부른다. 물론 법적으로는 집주인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현실은 그렇게 법대로만 되지 않는다. 집주인이 “어쩌란 말이냐”고 버티면 세입자로선 몸과 마음이 피곤해진다. 전세금에 발이 묶여 이사 계획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정책은 역전세난을 부추기는 쪽으로 가고 있다. 현재는 공시가격의 140%까지 전세보증을 해준다. 오는 5월부터는 전세보증 한도를 공시가격의 126%로 제한한다. 여기에 공시가격 인하까지 맞물리면 전세보증 한도는 더욱 줄어든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지난해 공시가격 1억원이었고 올해 공시가격 인하율이 6%인 빌라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현재 이 집의 전세보증 한도는 1억4000만원이다. 오는 5월 이후에는 전세보증 한도가 1억1844만원으로 줄어든다. 이미 일부 지역에선 이런 계산법에 따라 전세금을 1만원 또는 10만원 단위로 하는 매물까지 나온다고 한다.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국토부는 보도설명자료를 냈다. 국토부는 “최근 전셋값이 가파르게 하락하는 추세”라며 “(전세)보증 가입이 어려운 주택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세가율이 90%(공시가격의 126%)를 초과하더라도 임차인은 보증부 월세(반전세) 등을 선택함으로써 보증가입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쉽게 풀면 이런 뜻이다. ‘최근 전셋값이 어차피 떨어지고 있지 않으냐. 신규 세입자가 전세보증에 가입하지 못하는 일은 별로 없을 거다. 정 안 되면 전세금 일부를 반전세로 돌리면 될 게 아니냐.’

국토부 설명이 일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명백히 놓치고 있는 부분도 있다. 역전세난으로 기존 세입자가 겪을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다. 전세보증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주택 임대사업자들도 곤란한 상황이다. 이런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지는 않더라도 오히려 어려움을 더하는 건 좋은 정책이라고 하기 어렵다. 어떤 사람은 공시가격 인하에 만세를 부르겠지만 어떤 사람은 울상이다. 정책의 부작용으로 엉뚱한 사람이 유탄을 맞는 셈이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낼 때 한쪽만 봐선 안 되는 건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