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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 위기 촉발시킨 '코코본드'…한국서도 불씨, 관건은 비은행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가 촉발한 신종자본증권(AT1) 우려가 한국 자본시장의 또 다른 불씨가 되고 있다. 국내 금융계 상환 능력이 충분하다는 분석이 현재는 다수다. 하지만 ‘레고랜드 사태’나 ‘흥국생명 콜옵션 사태’처럼 의외의 사건이 발생한다면, 언제든 시장 불안이 되살아 날 수 있다.

CS發 불안에…“차환 없이 AT1 조기상환”  

크레디트스위스와 UBS. 연합뉴스

크레디트스위스와 UBS. 연합뉴스

29일 주요 시중은행은 콜옵션(조기상환) 만기가 돌아오는 AT1을 모두 조기상환하고 추가 발행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우선 다음 달 우리은행(5000억원)과 신한금융그룹(1350억원)이 10월에는 하나은행(1800억원), 11월에는 하나금융그룹(2960억원)이 AT1을 조기상환할 예정이다.

AT1은 채권이지만, 원금을 갚지 않고 이자만 지급하면서 만기를 길게 가져가는 일종의 영구채다. 기본 만기가 30년 이상으로 길고 중간에 차환(기존 채권을 새 채권을 발행해 갚는 것)해 원급 지급 시기를 계속 연장해서다. 원금을 갚지 않아 빚이라기 보다 자본의 성격을 지닌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산정에서도 AT1을 자본으로 친다. 이 때문에 자기자본 규제가 엄격한 금융사에서 AT1을 많이 발행한다.

회사 경영상에 문제가 생기는 이른바 ‘특정사유(trigger event)’가 발생하면, 이자 지급 의무가 사라지는 것도 AT1의 특징이다. 특히 AT1 중 특정사유 발생 시 아예 원리금이 없어지거나(상각) 보통주로 전환 되는 것도 있는데, 이를 조건부 자본증권 ‘코코본드’라고 따로 부른다. 이번에 모두 상각처리가 돼 문제가 된 CS의 AT1은 코코본드다.

통상 AT1은 5년 혹은 10년 단위로 조기상환(콜옵션 행사)을 한 뒤, 다른 AT1을 발행해 차환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이번에 은행들은 AT1 조기상환 후 차환은 하지 않기로 했다. CS 사태로 AT1 관련 수요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국내 은행들이 관례대로 AT1을 차환하려면, 채권자를 모으기 위해 이전보다 훨씬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한다. 이자 부담에 조기상환까지 안하면, 자금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발생하기 때문에 차환 없이 조기상환만 하기로 결정했다.

보험업계 올해 2분기에만 ‘2조 상환’ 

그나마 주요 시중 은행은 자기자본비율이 탄탄하고, AT1 비중도 10% 미만으로 높지 않다. 문제는 은행보다 자본력이 약한 비은행권이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올해 콜옵션 만기가 돌아오는 보험사의 AT1 및 후순위성 채권 물량은 약 4조원에 달한다. 이 중 절반가량인 2조1132억원이 2분기에 만기가 도래한다. 일단 당장 다음 달 한화생명(10억 달러)·메리츠화재(1000억원)의 만기가 돌아온다.

일단 보험업계에서는 조기상환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화생명을 제외하고 금액이 많지 않고 은행과 달리 위기 시 상각되는 ‘코코본드’가 없어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다만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해 언제든 의외의 변수가 생길 수 있다. 특히 KDB산업은행이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KDB생명의 경우 대주주 자금지원이 어려워 조기상환이 실패하면 시장 불안을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KDB산업은행 관계자는 “KDB생명의 AT1 조기상환과 관련한 우려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어떤식으로든 시장 불안을 일으키는 일은 막기 위해 금융당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자금경색→경기침체 불가피

시민들이 서울 시내의 한 시장 내 식당가 앞에 설치된 은행 현금인출기(ATM)를 이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들이 서울 시내의 한 시장 내 식당가 앞에 설치된 은행 현금인출기(ATM)를 이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환을 제때 해도 자금 경색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은행들은 AT1 조기 상환에 부족해진 자본을 다른 방식으로 쌓아야 하는데, 대출을 줄이는 식으로 돈줄을 더 죌 가능성이 높다. 비은행권 금융사도 AT1 대신 다른 방식으로 돈을 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금 조달 비용이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AT1 사태가 당장의 금융위기를 만들진 않아도 금융권에 자금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데, 이럴 경우 유동성이 줄어 실물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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