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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부 시위 20만명…한발 물러난 네타냐후 "사법개혁 입법 연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사법 정비 입법 절차를 연기하겠다고 27일(현지시간) 밝혔다. 전날 시민 약 20만 명이 반정부 시위를 벌이는 등 거센 저항에 직면하자 약 석달에 걸친 ‘셀프 방탄법’ 폭주에서 한발 물러났다.  

이번 개혁안을 '사법부 무력화'라며 반대해 온 야권 일각과 이스라엘 내 혼란 상황에 우려를 표명한 미국 정부는 네타냐후 총리의 결정을 환영했다. 그러나 입법 중단이 아닌 연기인 데다가 사법 정비에 대한 여야의 견해차가 너무 커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더욱이 연정 내 대표적인 극우 성향인 이타마르 벤 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이 한때 사법 정비 입법이 중단될 경우 연정 탈퇴 의사를 밝히는 등 연정 불안도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TV 대국민 연설에서 "사법 정비 입법 절차를 의회 휴회 이후로 연기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전을 피하기 위해 대화의 시간을 갖겠다"며 이 시간 동안 야권과 국론 합의를 이끌어 낼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입법 절차는 유월절(4월 5∼13일)을 전후로 한 휴회 후 5월 초 시작되는 다음 회기에 재개될 전망이다.

야당인 국가통합당의 베니 간츠 대표는 연기 결정을 반기며 정부와의 협상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사법 정비 입법에 반기를 들었다가 전격 해임된 요아트 갈란트 국방장관은 "협상을 위한 입법 연기를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미 백악관의 카린 장 피에르 대변인은 "타협을 위한 추가적인 시간과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로 환영한다"고 말했다.

개혁안에 반대하며 총파업 투쟁을 선언했던 회원 80만 명의 이스라엘노동자총연맹은 네타냐후 총리의 연기 발표 후 총파업을 철회했다.

26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사법 개혁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사법 개혁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극우적이라고 평가받는 네타냐후 정권이 출범 2주 만에 내놓은 사법 개혁안은 시민·법조계·야권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 개혁안은 이스라엘 헌법에 반하는 의회의 입법을 막을 수 있는 대법원의 사법 심사 권한을 사실상 박탈하고, 의회가 단순 다수결로 대법원의 판결을 무효화할 수 있게 하며 여당이 법관 인사를 담당하는 위원회를 통제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골자다. 

네타냐후 정부는 선출직이 아닌 판사들의 권한이 너무 커 3권 분립에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이유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반대 측에선 사법부를 무력화시켜 정부에 종속시키는 '사법 쿠데타'이자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방탄법이란 비판이 나왔다.  

반대 시위가 3개월째 이어진 가운데 갈란트 장관의 해임 소식이 전해진 26일 시민 20만 명이 거리로 나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갈란트 장관은 이번 사법 개혁안에 예비군 등의 반발이 커지자 사법 개혁안 연기를 주장했다가 네타냐후 총리에 의해 해임됐다.  

이번 연기 결정으로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사법 개혁에 따른 이스라엘의 정국 불안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BBC는 "불안한 평온"이라며 "입법 연기로 시간 벌기 이외에 달성할 수 있는 건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사법 개혁 지지자들이 27일(현지시간) 예루살렘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사법 개혁 지지자들이 27일(현지시간) 예루살렘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스라엘 야권에선 입법 연기가 아닌 폐기를 요구하고 있으나 연정 내 극우 세력은 여전히 개혁안 통과를 주장하고 있다. 야권 지도자인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정부와의 대화 조건으로 사법 개혁안의 "실질적이고, 완전한 중단"을 내걸었다. 반면 벤 그비르 장관은 27일 소셜미디어에 "개혁안은 통과될 것"이란 글을 올려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벤 그비르 장관은 당초 사법 정비 입법이 중단될 경우 연정에서 탈퇴하겠다는 초강수를 뒀으나 네타냐후 총리의 입법 연기 결정에 동의하는 대가로 자신이 관할하는 민간 치안 기구인 '국가 경호대' 창설을 약속받았다고 이스라엘 언론은 전했다. 

CNN에 따르면 기드온 라핫 예루살렘 히브리대 교수는 "시위대가 언제든지 거리로 나갈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또 이번 사안이 이스라엘의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네타냐후 총리가 입법 연기를 발표한 이날 예루살렘 등지에선 수만 명이 입법 강행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반면 입법을 반대하는 일부 시위대는 개혁안이 완전 철회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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