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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음해라고?"…'정순신子 비판 대자보' 서울대생의 일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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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서울대 중앙도서관 게시판에 붙은 정순신 변호사 아들 비판 대자보. 연합뉴스

지난 22일 서울대 중앙도서관 게시판에 붙은 정순신 변호사 아들 비판 대자보. 연합뉴스

"학교 폭력 문제가 불거졌던 그때 피해자를 돕지 못한 자책감에 내내 괴로웠다. 내가 쓴 대자보는 가해자와 상황을 방조한 어른들에게 외치는 절규 그 자체다."

최근 서울대에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작성해 붙었던 A씨는 28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울대 경영대에 재학 중인 그는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정 변호사의 아들과 동기다.

A씨는 지난 22일 '죄인이 한때의 형제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서울대 중앙도서관 게시판에 붙였다. 대자보에서 그는 "친형제처럼 아끼고 사랑했던 친구는 자기 미래를 위해 다른 형제의 등에 비수를 꽂는 괴물이 돼버렸다"며 "네 죄의 무게를 지금이라도 깨닫고 다시 짊어지라"고 정군을 비판했다.

대자보를 게재한 이유를 묻자 A씨는 "학폭 사건이 터졌을 때 피해자를 위해 나서지 못한 자괴감에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데, 가해자는 자기가 잘나서 대학에 온 줄 알더라"며 "왜 본인의 죄를 동기들에게 떠넘기는지 화가 나 적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해자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담아 저 자신을 '죄인'이라 칭했다"고 덧붙였다.

국가수사본부장 직에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 연합뉴스

국가수사본부장 직에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 연합뉴스

A씨는 민사고에 재학하던 당시 몇몇 동급생들과 함께 서명 운동을 벌여 이 사건을 공론화하려고 했다고 한다. 강원도교육청이 정군의 강제 전학 처분을 취소했을 때였다.

A씨는 "강원도 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가 정군에게 강제 전학 조치를 내렸는데 교육청은 돌연 강제 전학 처분을 취소했다"며 "평소 정군이 자신의 부친이 검사라는 걸 공공연하게 떠벌려왔던 탓에 부당한 권력이 개입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동기들에게 규탄 성명을 받아 언론에 보내든, 청와대 앞에서 시위하든 외부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이 또 다른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는 교사의 만류에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고 한다. A씨는 "정군 측이 공식 절차를 거친 전학 처분에도 행정소송을 내는 등 시간을 끌었다"며 "선생님은 '너희들이 나섰다가 학생 개개인을 걸고 넘어지면 학교가 보호해줄 방법이 없다'며 걱정하셨다"고 전했다.

그는 KBS가 사건을 보도하자 잠시 희망을 품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변하는 건 없었다. A씨는 "언론 보도 이후에도 상황은 그대로였다"며 "일개 학생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무력감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학폭 가해자가 뻔뻔하게 학교에 다니는 걸 보는 건 매우 큰 스트레스였다"며 "피해자뿐 아니라 우리도 보호받지 못하는,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느낌이었다"고 했다.

민족사관고등학교 전경. 중앙포토

민족사관고등학교 전경. 중앙포토

A씨는 피해 학생을 내향적이나 살가운 친구로 기억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묻는 말에도 답하지 않고, 계속 헤드셋을 끼고 다니는 등 외부와 단절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그땐 학폭에 시달리는 줄 모르고 그저 학업 스트레스가 큰 줄만 알았다"고 했다.

그는 피해 학생과 나눴던 대화를 소개했다. 어느 날 피해 학생이 "넌 좌파적 성향의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와 A씨는 "정치적인 견해가 그런 것일 뿐이지, 정치색이 그 사람을 결정짓지는 않는다고 생각해"라고 답했다고 한다.

A씨는 "친구 아버지의 고향이 제주라는 이유로 정군이 친구를 '빨갱이'라 불렀던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며 "아마도 그런 사정이 있어 그런 질문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A씨는 "대자보를 두고 '당시에는 뭐했느냐', '대통령에 대한 음해다'라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어른들은 힘없는 학생을 위해 무얼 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학생 사이에서, 교육 현장에서 이미 끝났어야 할 일에 모종의 세력이 끼어들어 일이 커졌다고 본다"며 "더는 이 일이 정치적으로 비화하지 않고, 가해자는 제대로 책임을 졌으면 하는 바람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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