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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보다 그림자에 주목"…'싱어게인' '피크타임' 제작자 윤현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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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준 스튜디오슬램 대표를 지난 7일 서울 상암동에서 만났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윤현준 스튜디오슬램 대표를 지난 7일 서울 상암동에서 만났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즌4 꼭 해주셔야 해요. 1년이든 2년이든 기다릴게요.’
2017년 JTBC 추리예능 프로그램 ‘크라임씬 시즌3’ 종영을 앞두고, 온라인에선 다음 시즌을 만들어달라는 팬들의 요청이 쇄도했다. 하지만 6년 동안 소식은 없었다. 간절한 바람은 결국 이뤄지는 것일까.
'크라임씬'을 만들어온 윤현준 전 CP(책임 프로듀서)가 시즌4 제작 기획을 시작했다. SLL 산하의 예능제작사인 스튜디오슬램의 대표를 맡고 있는 그를 최근 서울 상암동에서 만났다. 윤 대표는 "그간 프로그램 팬들의 꾸준한 제작 요청이 늘 신경 쓰이고 마음에 남았다"고 했다.

1997년 KBS에서 예능PD로 첫발을 뗀 윤 대표에게 ‘크라임씬’은 그다지 좋은 성적을 안겨준 프로그램은 아니다. 그는 “‘크라임씬’은 제가 한 프로그램 중 시청률이 정말 안 나온 프로그램”이라 말하며 멋쩍은 듯 웃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프로그램 종영 후 마니아들이 정말 많아진 프로그램”이라면서 “이후 ‘효리네민박’ ‘싱어게인’ 등 다른 예능프로그램을 할 때도 관련 기사 댓글엔 어김없이 ‘크라임씬 만들어주세요’라는 댓글이 달리곤 했다”고 말했다. 뉴욕 TV·필름 페스티벌 본상 (2018, 크라임씬3), 휴스턴국제영상영화제 TV엔터테인먼트 경쟁부문 금상 (2016, 크라임씬2) 등 해외 시상식을 통해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렇다고 선뜻 제작에 나서긴 어려웠다. 시청률이 잘 안 나오니 방송국에서도 반기지 않았고, 범죄추리물이다 보니 한 번 만들려면 기획에만 몇 달 이상을 쏟아야 했다.
그는 “'(다음 시즌 제작은) 사정상 어렵다'는 말을 줄곧 해왔었는데 그동안 방송 환경이 많이 바뀌더라”며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생기면서 ‘크라임씬’을 해보고 싶다고 여러 플랫폼에서 연락이 왔다”면서 “OTT에서 하면 더욱 매력적인 콘텐트라는 생각이 들어 직접 메가폰을 잡고 ‘크라임씬 시즌4’를 연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티빙에서 올해 연말 혹은 내년 초에 방영하는 것이 목표다.

“빛보단 그림자에 초점”…'다름'에 집중하는 제작 철학

윤현준 대표는 '슈가맨' '싱어게인' 등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숨겨진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데 두각을 보여왔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윤현준 대표는 '슈가맨' '싱어게인' 등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숨겨진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데 두각을 보여왔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달라진 방송 환경만큼 그의 소속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2011년 KBS에서 JTBC로 소속을 옮겨 CP로 활동한 윤 대표는 3년 전부터 스튜디오슬램을 이끌고 있다.
'싱어게인' 시리즈(JTBC), '테이크원'(넷플릭스), '보물찾기'(티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이름을 알렸고, 올해 신규 PD 모집에선 350여 명이 지원해 100: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윤 대표는 “방송국에 몸 담았을 땐 내 프로그램을 잘 만드는 것이 전부였지만, 제작사 대표가 되니 회사 경영 등 좀 더 거시적으로 봐야 하더라”면서도 “결국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면 경영 측면은 따라오는 것이라 크게 동떨어지진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아티스트를 발굴해 내는 데 두각을 보여왔다. 2015년 시작해 시즌3까지 이어진 '투유 프로젝트-슈가맨'(JTBC)은 가요계의 한 시대를 풍미했다가 사라진 가수들을 찾아내 무대에 세웠다. 유재석의 첫 종편 프로그램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윤 대표는 KBS '해피투게더' 연출을 하면서 유재석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유재석에게 ‘프로그램 할 생각 있냐’고 물으니 ‘기획안만 좋으면 하겠다’고 하더라”면서 “거의 매주 새로운 기획안을 가지고 10번 넘게 찾아갔는데, '슈가맨' 기획안을 보고선 '형, 이거 재밌을 것 같다. 이 사람들 지금 뭐 하는지 나도 궁금하다'고 해서 프로그램이 시작됐다”고 회상했다.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무명가수전' 시리즈는 단 한 장이라도 앨범을 낸 경험이 있는 가수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벌인다. 이승윤, 이무진 등 숨겨진 원석을 찾아내며 인기를 끌었다. 올해 하반기 시즌3 방송을 앞두고 진행한 참가자 모집엔 많은 이들이 몰렸다.
현재 방영 중인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피크타임' 역시 아직 전성기를 맞이하지 못한 '무명'에 주목했다. 데뷔 경험이 있는 아이돌 팀이 대상이다. 3월 4주차 화제성 조사(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서 TV부문 비드라마와 드라마를 통틀어 2주 연속 종합 순위 1위에 오르는 등 화제몰이 중이다.

앨범을 낸 가수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은 이승윤, 이무진 등 숨겨진 원석을 찾아내며 인기를 끌었다. 올해 하반기 시즌3 방송 예정이다. 사진 JTBC

앨범을 낸 가수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은 이승윤, 이무진 등 숨겨진 원석을 찾아내며 인기를 끌었다. 올해 하반기 시즌3 방송 예정이다. 사진 JTBC

데뷔라는 목표를 이뤘으나, 충분히 빛을 보지 못한 보이그룹들에게 두번째 기회를 주는 '피크타임'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사진 JTBC

데뷔라는 목표를 이뤘으나, 충분히 빛을 보지 못한 보이그룹들에게 두번째 기회를 주는 '피크타임'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사진 JTBC

그는 “'무명'에 대한 기준은 개인차가 있다. 아예 안 알려졌을 수도 있고, 예전엔 유명했을지라도 잊혀져 무명처럼 지내는 사람도 있다”면서 “유명도와 상관없이 이름을 가리고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두 프로그램은 출연자를 각각 1호·2호·3호(싱어게인) 또는 2시·5시·7시(피크타임)로 호칭하며, 무대 실력 만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다.
윤 대표는 '피크타임'에 대해 "K팝 강국인 우리나라에는 해외에서 주목 받는 아이돌 외에도 무명이지만 실력은 뛰어나 조금만 지원해주면 잘 될 것 같은 아이돌들이 많이 있다"면서 “모든 현상엔 빛과 그림자가 있는 법인데, 우리는 빛 보다는 그림자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로그램을 만들 때 그가 가장 많이 고민하고 천착하는 것은 '다름'이다. 윤 대표는 “요즘 잘 나가는 것을 살짝 바꿔서 내놓는 식의 제작을 가장 경계한다”고 했다. 시류에 휩쓸려 아류작을 만들며 적당히 타협하진 않겠다는 것이다.
“트로트가 잘나가는데, 대세인데 왜 트로트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냐고 물어보는 이들이 있어요. 하지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요리하지 않는 이상 트로트는 잘하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저는 '다른 것' '새로운 것'을 해야 발전이 있다고 생각해요. 후배 PD들에게도 늘 강조하는 포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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