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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도시 공중의 생명 나무, 하이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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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뉴욕은 5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이 100개 이상 밀집한 유일한 도시다. 이 삭막한 마천루 촌에 도심 공원들이 그나마 숨통을 틔워준다. 평균 폭 12m, 길이 2330m의 좁고 긴 선형공원 ‘하이라인’도 그중 하나다. 뉴욕 맨해튼을 관통하는 고가 철로에 500종 이상의 나무와 화초를 심어 만들었다. 2009년 첫 공개된 하이라인은 2019년 3단계 조성까지 마쳤고 현재 4단계 확장 사업이 진행 중이다.

남부 맨해튼에 위치한 이 고가철로는 식품 공급용으로 부설했으나 1980년대 폐선되어 도시의 흉물로 방치됐다. 시 당국이 철거 명령을 내렸지만 도시 인프라의 문화적 활용을 주장하는 시민운동이 일어났다. 시민단체 ‘하이라인의 친구들’이 공원 계획의 수립부터 조성과 운용까지 도맡았다. 2003년 국제공모에 36개국 720팀의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접수했고 최종적으로 공중 공원 안을 채택했다.

하이라인

하이라인

하이라인은 기본적으로 공원형 산책로다. 면밀한 연구를 통해 도심에서 생장 가능한 수종들을 심었고, 다양한 바닥 재료로 유연한 보행로를 만들었다. 철도의 일부 흔적을 남기는 것은 물론, 야외 공연장과 전시장도 요소요소에 조성했다. 공연과 전시, 시민 참여 활동과 교육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조경가, 건축가, 조명 디자이너 등 전문가와 공무원이 참여해 민관협력의 바람직한 모델도 만들었다. 2억 달러에 이르는 예산은 민간 모금으로 대부분 충당했다.

공원의 인접 지역들도 살아났다. 갤러리와 부티크 샵, 호텔과 레스토랑들이 나뭇가지처럼 뻗어 나갔다. 하이라인은 이제 연간 800만 명이 방문하는 뉴욕 최고의 명소가 됐다. 소음과 분진으로 낙후했던 곳이 가장 문화적이고 뜨거운 장소로 바뀌었다. ‘21세기 최고의 공공 프로젝트’라는 명예답게 시카고 등 미국 내 뿐 아니라 전 세계 도시의 인프라 재생 모델이 되었다. 서울의 ‘경의선 숲길’이나 ‘서울로 7017’도 하이라인의 친구들이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