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회견에 안도했던 금융시장, 옐런 발언 뒤 흔들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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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파월(左), 옐런(右)

파월(左), 옐런(右)

22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후 열린 기자회견 때까지는 미국 증시가 상승세를 보였다. Fed가 시장의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데다 파월 의장이 “경제나 금융 시스템에 심각한 피해를 줄 위협이 있을 때 예금자를 보호할 도구를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면서 시장엔 안도감이 돌았다. 하지만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상원 세출위원회 금융소위 청문회에 출석해 “모든 은행 예금을 보호하는 포괄적 보험과 관련해 어떤 것도 논의하거나 고려한 바가 없다”고 발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장은 얼어붙기 시작했다. 결국 이날 미국 뉴욕증시 주요 지수는 1% 이상 급락했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63%,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1.65%, 나스닥 지수는 1.60% 하락했다.

미국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 인상 기조는 유지하되, 금융 불안 변수에 ‘빅스텝’(금리 0.5%포인트 인상) 대신 ‘베이비스텝’(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밟는 절충점을 택했다. 시장은 Fed가 ‘비둘기’(통화정책 완화 선호) 성격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Fed는 이날 FOMC 정례회의를 통해 기준금리를 4.5~4.75%에서 4.75~5%로 인상했다고 밝혔다. 미 기준금리는 2007년 9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게 됐다. 당초 인플레이션 둔화세가 느려지고 고용 호조 등의 지표가 나오면서 Fed가 다시 인상 폭을 넓힐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하지만 미국 금융 불안이 상황을 바꿨다. 실리콘밸리은행(SVB)·시그니처은행 파산에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의 위기설까지 번지자 Fed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금융시장 불안의 주된 이유로 지적됐다.

파월 의장도 이날 기자 회견에서 “이번에 금리 인상 중단을 고려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높은 고물가는 긴축 기조를 이어가도록 했다.

이날 FOMC 회의 이후 Fed 금리 인상 사이클에 끝이 보인다는 분석이 나왔다. 골드먼삭스는 “은행 부문의 스트레스로 인한 성장 둔화 가능성을 일부 인정한 점은 올해 안에 최종금리를 상향 조정하지 않는 것에 부합한다”고 진단했다.

달라진 Fed의 정책 결정문도 Fed의 기조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단서가 됐다. 이날 Fed는 결정문에서 “금리 인상을 지속(Ongoing increases)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표현을 뺐다.

영국도 기준금리 0.25%P 인상

Fed는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지난해 3월부터 매번 이 표현을 넣었었다. Fed는 대신 “추가적인 정책 긴축(some additional policy firming)이 적절할 수 있음”으로 표현을 대체했다. 파월 의장은 “앞으로 일어날 일과 관련한 불확실성을 정책 결정문에 반영하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FOMC 위원의 금리 인상 전망을 보여주는 ‘점도표(dot plot)’상의 올해 말 금리 예상치(5~5.25%·중간값 5.1%)도 연내 금리 인상 멈춤 가능성을 키웠다. 현재 4.75~5%인 미국 기준금리 수준을 볼 때 올해 남은 기간 중 한 차례 더 기준금리를 올릴 거란 의미다. 일각에서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이 나오는 데 대해  파월 의장은 “올해 금리 인하가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도 23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4.25%로 0.25%포인트 올린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영국은 기준금리를 11회 연속 올렸으며 이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 기준금리 연 5% 시대가 열리면서 미국발 경기 침체가 빨라질 수 있다는 ‘R(Recession)의 공포’도 되살아나고 있다. 최근 SVB와 시그니처은행 등 미국 지역은행이 파산한 배경으로 Fed의 가파른 금리 인상이 꼽힌다.

그동안 ‘은행권 위기’ 소방수를 자처했던 옐런 장관이 한발 물러선 점도 ‘R의 공포’를 키우는 불씨다. 하루 전 은행의 모든 예금에 대한 보장 가능성을 내비쳤던 옐런이 말을 바꾸자 시장은 다시 긴장 모드에 돌입했다. 미국 정부가 위기 전염을 막기 위한 예금자 보호 같은 신속한 조치에 나서지 않는다면 뱅크런 촉발에 따른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시장 전문가가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다. 박소연 신영증권 투자전략부장은 “(미국의 경우) 고금리와 SVB 파산 사태에 따른 여진은 물론 경기 침체 우려도 커지고 있다”며 “특히 미국발 경기 침체 우려가 미국 금융시장에 반영되면 국내 증시도 조정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코스피는 소폭 상승, 원화값은 급등

하지만 23일 국내 금융시장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이날 달러당 원화값은 29.40원 급등한 1278.30원을 기록했고, 코스피는 전날보다 0.31% 오른 2424.48에 장을 마쳤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기대감이 R의 공포를 누른 하루였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은행권 경영 환경이 악화할 우려에 시장 변동성은 당분간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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