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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가 민폐? 사회적 타살이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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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권종호 경위

권종호 경위

“먼저 떠난 아내에게 갑니다. 미안한 마음에 밥값을 남깁니다.”

2015년 여름 권종호(56·사진) 부산 영도경찰서 경위가 80대 노인이 숨진 임대아파트 장롱에서 10만원과 함께 발견한 쪽지 내용이다. 100곳 넘는 고독사 현장을 보면서 이처럼 ‘깨끗한’ 현장을 본 건 처음이었다. 권 경위는 “임종을 앞둔 어르신이 손수 정리했던 것 같다. 쓸쓸한 죽음 자체도 두렵지만, 사망한 뒤 다른 이들에게 끼칠 민폐까지 걱정하는 노인이 많다”고 말했다.

권 경위는 지난달 20일 자신이 목격한 고독사 현장 경험을 담은 『고독사는 사회적 타살입니다』라는 책을 냈다.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다’는 낙서를 남긴 국가유공자,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던 화랑무공훈장 수여자를 봤을 땐 마음도 요동쳤다. 밤낮없이 일하며 치매 모친을 모셨던 30대 ‘고시원 막둥이’, 이력서를 남긴 채 삶을 등진 20대 취업준비생 등 젊은 사람도 많다. 보건복지부 2022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부산의 고독사는 2017년 219건에서 2021년 329건으로 50.2% 늘었다.

권 경위는 지난 22일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책을 쓸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고 했다. 현장에서 고독사 급증을 체감한 그는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비로 기초지자체 ‘안심장례서비스’(무연고 사망자 등 무료 장례 서비스) 안내 전단 돌리기부터 시작했다. 문의가 폭주했지만 혼자 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구청장과 복지담당자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산 사람도 아닌 죽은 사람, 게다가 고독사한 이에 관심이 없었다. 권 경위는 “고독사 예방 대책을 고안해 지자체 주민참여예산 공모사업에 제안했지만 답신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고민 끝에 책을 썼다. 휴일 등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집필에 걸린 시간은 불과 3개월. 그는 “익숙한 사건보고서 형태로 투박하지만 담담하게 쓰려 했다. 책은 처음 써보지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선지 수월하게 써졌다”고 했다. 고독사는 정부 제도가 바뀐 사회 구조를 따라가지 못해 일어나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강조하는 권 경위는 “책 제목도 고민 없이 곧장 정했다”고 했다.

권 경위는 우리 고독사가 일본 종교학자 시마다 히로미가 규정한 ‘무연(無緣)사회(인간관계가 희박해져 이웃 죽음조차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사회)’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본다. 그는 “100건 넘는 고독사 현장의 공통점은 ‘단절’이었다. 경제적 어려움 등 고립돼 죽은 이들 중 보름, 한 달, 1년이 가도록 발견되지 못한 사람도 많다”고 했다.

그는 고독사의 해법으로 ‘계약을 통한 돌봄 회복’을 제안한다. 기관 위탁을 받은 단체가 고독사 위험군과 계약해 요양 간호와 장례 등 가족의 역할을 대신하는 모델이다. 권 경위는 “최근 고독사 현장을 정리하는 특수청소 업체가 늘고 있다. 이들은 망자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자주 접한다”며 “이들에게 장례를 위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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