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분기(10~12월) 한국의 전 분기 대비 경제성장률이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2번째로 낮았다. 올해 한국 경제의 성장 속도 역시 G20 평균에 한참 못 미칠 것으로 전망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주요국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21일 비교한 결과다. 지난해 4분기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0.4%였다. G20 중 한국보다 성장 속도가 느린 국가는 남아프리카공화국(-1.3%) 단 한 곳에 그쳤다. 독일 성장률은 -0.4%로 한국과 같았다. 나머지 미국(0.7%), 호주(0.5%), 프랑스(0.1%), 영국(0%), 중국(0%) 등은 한국을 앞질렀다. 다만 아직 4분기 수치가 나오지 않은 아르헨티나, 집계 대상에서 빠진 러시아는 반영하지 않는 통계다.
지난해 4분기 G20의 경제성장률은 평균 0.3%로 ‘플러스(+)’를 기록했는데 한국은 뒷걸음질했다. 연간으로 따져봐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한국의 성장률은 2021년 대비 2.6%로 G20 평균 3.2%에 못 미쳤다. 고물가ㆍ고금리에 따른 세계 경기 위축이 한국에 상대적으로 더 큰 피해를 가져다주면서다. 미국ㆍ중국ㆍ유럽이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는 공급망 재편, 한국 수출의 중심축인 반도체 등 기술 산업 경기 부진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한국 경제는 다른 주요국보다 외풍에 더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수출 의존도는 34%(GDP 대비 수출입액)로 대부분 10~20%대인 주요 선진국을 크게 앞지른다. 호주ㆍ인도네시아 같은 자원 부국도 아니고 내수 비중이 큰 편도 아니다. OECD는 ‘중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기술 부문의 침체가 한국의 생산과 수출에 타격을 입히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 수출은 이미 벼랑 끝에 섰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국 수출은 이미 꺾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이후 수출액은 감소세(전년 대비)로 돌아섰고,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13개월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무역 적자가 늘고 있다는 건 한국 내 달러 곳간이 말라간다는 의미다.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수출이 10% 넘는 증가율을 기록하며 선방한 덕에 고비를 넘길 수 있었던 것과는 크게 달라진 현실이다.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은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OECD는 물론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개발은행(ADB), 피치 등 해외 기관은 성장률 전망을 고칠 때마다 한국 수치를 낮춰잡기 바쁘다. 지난 17일(현지시간) OECD는 ‘중간 경제전망’을 발표하며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1.8%에서 1.6%로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올해 한국이 G20 평균(2.6%)에 한참 못 미치는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란 관측이다. 이번 수정 전망에서 OECD가 성장률을 낮춘 건 한국을 포함해 일본, 아르헨티나, 터키 등 8개국에 불과했다.
어기에 미 중소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에서 시작해 유럽 대형 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CS)로 번진 금융 불안은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더 키우고 있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당분간 리스크(위험 요인)에 민감해진 가운데 문제가 발생하면 대책이 나오고, 관련된 부분에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금융 리스크가 실물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한두 달은 더 확인해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