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졌는데 “암 걸렸어” 연락, 스토킹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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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법정] 스토킹 범죄

스토킹 범죄

스토킹 범죄

헤어진 뒤 연락 한 번 한 적도, 받은 적도 없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연인으로 발전하는 여정은 한쪽이 선수(先手)를 둬야 시작되는 경우도 많고요. ‘진실한 노력에 감동해 재회하기로 했다’ ‘끈질긴 구애 끝에 마음을 얻었다’는 성공 신화도 있긴 하지요.

여기서 질문!

어디까지는 재회·구애 노력으로 봐줄 수 있고, 어디서부터는 처벌받는 스토킹이 되는 거예요?

당신의 법정

①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서로 연락 안 했으면 좋겠어” “이제 톡 그만하세요” “제발 이건 집착이에요”. 결별 통보나 만남 거절은 대개 명시적으로 이뤄집니다. 여러 차례 할 필요도 없고, 한 번만 해도 꺼지지 않는 경고등이 켜진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만약 신고가 이뤄져 100m 이내 접근 금지나 연락 금지 조치까지 받았다면 더 심각한 빨간불이 켜진 건데, 여기서부턴 한 번만 더 건너도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습니다.

② 정당한 이유 없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제일 먼저 알릴 일이지만, 연락을 원치 않는 상대방에겐 내 알 바 아닌 일입니다. “로또 당첨되어서 기분 좋아서 연락한 거야ㅠㅠ” “(위조된 진단서를 보이며) 췌장암 2기이니 위로해 줘.” 모두 연락할 만한 이유로 인정되지 않았어요. 법정에 온 한 피고인은 “공유했던 재산의 정리를 위해 찾아간 것이라 스토킹이 아니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법원은 “문자로도 요청할 수 있는데 굳이 찾아갔다”며 정당하지 않다고 봤어요(서울중앙지법 2022년 11월 판결).

③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몇 차례나 했는지 횟수를 세는데, ‘...’나 ‘♡’처럼 내용 없이 부호만 보내거나 카카오톡으로 보낸 뒤 삭제한 건도 포함됩니다. 다만 하나의 이야기를 두 차례로 나누어 보낸 경우 1회로 보기도 합니다.

④ 접근하거나 기다리거나 글·말·음향·물건을 도달하게 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폰뱅킹으로 피해자 계좌에 돈을 입금하며 478회에 걸쳐 입금자란에 ‘잠깐만 얘기하고 갈게’ ‘마음 돌려줄 수 없니’ 등 글을 남긴 A씨도 스토킹죄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B씨는 본인이 자살한 것처럼 꾸며 “○○이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부탁 남긴 것이 있어 전달드린다”는 핑계로 옛 연인의 집 앞 현관에 치킨·돈봉투·메모지를 두고 가기도 했는데 모두 스토킹으로 인정됐어요. C씨는 3년 전 헤어진 사람에게 300번 넘게 전화하고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빼빼로 등을 보냈는데, 이렇게 직접 전달하지 않아도 스토킹이 될 수 있답니다.

⑤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킴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느꼈는지 판단엔 판사의 주관이 작용합니다. 피해자를 강간해 징역 2년을 살고 나온 뒤 피해자에게 “○○ 사장님이시죠? 소개받고 문자드립니다”라고 한 사건에서 재판부는 “수신자가 피해자인지 여부를 확인한 것으로, 불안감을 조성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위 수원지법 2022년 9월 판결). 헤어진 피해자가 전화번호를 바꾸자 이전 번호에서 중간 네 자리만 바뀌었을 거라 생각해 0000부터 차례로 모든 번호를 저장해 결국 알아낸 뒤 ‘혹시 ○○씨 폰 맞나요(카카오톡)’ ‘혹시 ○○씨 폰 맞으신가요..?(문자)’라고 보낸 건 스토킹으로 인정됐습니다(울산지법 2022년 12월 선고).

여기서 질문!

부재중 전화도 스토킹인가요?

아직 정립된 판례가 거의 없어 판사들끼리도 의견이 갈립니다. 받지 않았거나 거절한 전화는 아직까진 스토킹으로 보지 않는 추세입니다. 많은 판사는 2005년 정보통신망법 관련 대법원 판례(“전화기의 벨소리는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상대방에게 송신된 음향이 아니므로 반복된 벨소리로 상대방에게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케 하더라도 이는 정보통신망법 위반이 아니다”)를 2021년 이후 스토킹죄 재판에도 적용하고 싶어 합니다.

'당신의 법정’은 중앙일보 프리미엄 디지털 구독 서비스 ‘더중앙플러스(The JoongAng Plus)’의 연재 시리즈입니다. 매주 수요일에 발행됩니다. '당신의 법정'의 이번 순서는 로맨스의 탈을 쓴 범죄인 스토킹의 다양한 실제 사례를 소개합니다. 스토킹과 로맨스의 차이는 성추행과 스킨십의 차이와 비슷합니다. 헤어진 전 연인에게 "암 걸렸다"고 연락하는 것도 스토킹입니다. 판사들끼리도 의견이 갈리는 '스토킹 판별법'. 더중앙플러스 '당신의 법정'에서 보다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더중앙플러스 기사 보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47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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