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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윤의 퍼스펙티브

대학병원 수도권 분원들 문 열면 지방 의료 붕괴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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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방 의료 위기에도 손 놓은 보건복지부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리셋·만생종 맘대로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리셋·만생종 맘대로

대한민국 의료체계가 폭풍전야의 위기를 맞고 있다.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주요 대학병원이 한꺼번에 6000병상 규모의 대학병원 분원 10개를 수도권에 짓기로 했기 때문이다. 2026~2028년까지 3년이라는 짧은 기간 사이에 한꺼번에 문을 열게 될 이들 병원의 병상은 기존에 경기도에 있는 비슷한 병원 병상 수의 3분의 1에 달한다.

대학병원이 새로 생기면 지역 주민들이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병원에서 일할 의사와 간호사를 추가로 배출할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 대학병원 분원을 운영하려면 의사 3000명, 간호사 8000명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매년 배출되는 전체 의사 수에 맞먹는 규모이고, 배출되는 간호사 수의 3분의 1에 달하는 규모이다.

이 대학병원 분원들은 자기 의과대학이 새로 배출한 의사만으로는 모자라서 다른 지역의 의사들까지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것이다. 서울대병원·아산병원·세브란스병원·고려대병원같이 브랜드 파워가 큰 병원이 수도권에 문을 열면 지방 대학병원 교수까지 자리를 옮길 가능성이 크다.

주요 대학병원, 5년 내 수도권에 6000병상 분원 10개 짓기로
이를 위해선 의사 3000명, 간호사 8000명 필요할 것으로 추정
지방 의료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지방 의료체계 결정적 타격
보건복지부는 의대·간호대 정원 늘려 지역 거점 병원 확충해야

지방 의료체계 도미노 붕괴 우려

이렇게 되면 지금도 의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지방 의료체계는 결정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지금도 지방에서는 의사가 부족해 중증응급환자 10명 중 1명이 다른 병원으로 전원되는 실정이다. 지방 병원은 연봉 4억원으로도 응급실에서 일할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충원하지 못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부족해서 대학병원은 입원 병동을 축소하고 응급실에서 소아 환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의사가 부족해 무너져가고 있는 지방의 필수 의료는 이들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으로 의사·간호사가 빠져나가면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의료체계에서 지방 의료체계의 붕괴가 어떻게 문제를 일으킬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의료체계가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림 1,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림 1,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들이 한꺼번에 문을 열면 수도권에선 대형병원 의사 수가 10%가량 늘어나게 되지만, 이들 병원에 의사를 빼앗긴 부산과 대구 같은 광역시와 도 지역에선 의사 수가 10~15% 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그림 1〉. 2028년 기준으로 광역시는 7년 전, 도 지역은 10년 의사 수 수준으로 후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응급환자·중증환자에 대한 지방의 의료 수준도 그만큼 후퇴할 가능성이 크다.

수도권은 3차 병원 공급 과잉

그림 2,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림 2,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처럼 지방 의료체계에 치명적인 피해를 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은 대형병원이 부족한 지역에 설립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이들 분원이 설립되는 지역 진료권의 인구 1000명당 3차 병원 수는 이미 적정 수준을 넘어선 곳이 더 많다〈그림 2〉.

그림 3,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림 3,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중증환자를 진료하는 3차 병원은 병상은 인구 1000명당 1병상 정도가 적당한데, 대학병원 분원 설립이 예정된 수도권 10개 지역 중 5개 지역은 이미 3차 병원 병상이 적정 수준 이상으로 과잉 공급된 지역이다〈그림 3〉. 암 환자, 뇌졸중 환자와 같은 중증환자, 중증은 아니지만 노인이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 결과적으로 중증은 아니었지만 중증이 의심되는 환자의 수요를 모두 고려하면 3차 병원은 인구 1000명당 1병상이 적당한 병상 공급 수준이다. 수도권 분원이 설립되는 지역에는 이미 대형병원이 충분히 있으니, 중증환자가 굳이 서울로 가지 않고 자기 지역 내에 있는 병원을 이용하는 입원 의료 자체 충족률도 전국 평균보다 높고, 중증환자의 사망률도 전국 평균보다 당연히 낮다.

지방의 3차 병원 부족 더 악화 우려

그림 4,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림 4,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반면 이들 수도권 분원 설립으로 의사와 간호사를 빼앗겨 환자 진료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지방은 지금도 3차 병원이 부족하고, 중증환자는 치료를 받으려 서울이나 주변에 대도시까지 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어려워 자기 지역에 있는 작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사망할 확률이 높아진다〈그림 4〉.

3차 병원이 없는 대표적인 지역은 경북 안동진료권(안동·예천·영주·의성·봉화·영양·청송)과 춘천진료권(춘천·홍천·가평·화천·양구)이다. 이 지역 주민 중 서울이나 다른 대도시로 가지 않고 자기 지역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받은 중증환자의 사망률은 매우 높다. 안동진료권 1.5배, 춘천진료권 1.35배 수준이다.

3차 병원은 있지만 부족한 포항진료권(포항·울진·영덕·영천·경주·경산·청도), 광주전남진료권(광주와 전남 전체), 충북진료권(충북 전체)도 전국 평균 대비 중증환자의 사망률이 1.3~1.4배 높다. 여기서 말하는 중증환자의 사망률은 정확한 비교를 위해 각 환자 질병과 건강 상태를 모두 고려하여 산출한 중증도 보정 사망률이다.

이미 대형병원이 충분한 수도권 지역엔 대학병원들이 새로 분원을 짓고, 정작 대형병원이 부족한 지방에서는 이들 분원에 의사와 간호사를 빼앗기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지금보다 더 많은 환자가 치료를 받으러 수도권과 주변 대도시를 찾고 더 많은 환자가 죽어 나가는 역설적인 상황은 왜 벌어지는 것일까?

병상 공급 권한 있는 복지부는 복지부동

아무런 정책도 없이 병원의 공급을 무정부적인 시장에 맡긴 보건복지부의 탓이 크다. 이미 20여 년 전부터 의사가 부족해지기 시작했는데도, 의사는 늘리지 못하면서, 수도권에 대학병원들이 분원을 짓는 것을 알고도 방치한 보건복지부는 책임을 져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 의료법이 개정돼 지역별 병상 공급을 규제할 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시행할 시행령·시행규칙도 만들지 않은 채 복지부동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의사와 간호사 부족 문제의 원인을 체계적으로 진단하고 단계적으로 해결책을 시행해나가면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큰 병원이 더 많은 전문의를 고용하도록 함과 동시에 동네 의원에 너무 많은 전문의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의료정책을 바꿔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의사와 간호사의 배출을 늘림과 동시에 지역 거점 병원을 확충해야 한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돌봄을 포함한 미래 의료 수요, 수도권과 지방의 인력 격차 해소, 의사가 부족한 내과·정신과·응급의학과 같은 전문과목의 의사 수요를 고려하여 적절한 수준으로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의 정원을 늘려야 한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