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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카메라 잡은 꼬마…영화가 된 스필버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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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영화 ‘파벨만스’는 세계적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처음 영화에 매료됐던 순간부터 감독으로 성장해나가는 자전적 이야기를 그렸다. [사진 CJ ENM]

영화 ‘파벨만스’는 세계적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처음 영화에 매료됐던 순간부터 감독으로 성장해나가는 자전적 이야기를 그렸다. [사진 CJ ENM]

해변을 맴도는 식인 상어부터, 자전거를 타고 날아오르는 외계인과 정글을 누비는 인디아나 존스까지. ‘스티븐 스필버그’ 하면 떠오르는 수많은 명작의 이미지가 바로 그의 발자취다. 다양한 장르와 소재, 빛나는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으로 관객을 매혹시켰던 스필버그(77) 감독이 데뷔 60여년 만에 자신의 삶을 그린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22일 개봉하는 영화 ‘파벨만스’는 그가 “이 영화는 내가 가진 기억 그 자체”라고 했을 만큼 자전적 이야기다.

영화는 유년 시절의 스필버그를 투영한 소년 새미 파벨만(마테오 조리안)이 부모와 난생처음 극장에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1952년에 개봉한 세실 B. 드밀의 영화 ‘지상 최대의 쇼’의 기차 충돌 장면에 빠진 새미는 그 장면을 머릿속으로 반복 재생한다. 아빠(폴 다노)에게 선물 받은 장난감 기차로 장면을 재연해보던 새미에게, 엄마(미셸 윌리엄스)는 “아빠의 8㎜ 카메라로 충돌 순간을 기록하자”고 제안한다. 새미는 순간을 포착하는 카메라의 힘에 매료된다.

스티븐 스필버그

스티븐 스필버그

10대가 된 새미(가브리엘 라벨)는 친구들을 모아 서부극과 전쟁 영화를 찍을 만큼 성장했다. 무탈히 영화감독으로 자랄 것 같던 소년은 카메라에 포착된 부모의 불편한 비밀을 마주한다. 혼란스러움 속에서 가족과 꿈, 예술과 삶을 둘러싼 복잡한 역학 관계를 깨우쳐간다. 그와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한 극작가 토니 커쉬너가 2005년부터 그와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각본을 썼다. 그만큼 영화는 실제 스필버그의 유년 시절을 고스란히 빼닮았다.

여러 자료를 통해 알려진 대로, 스필버그는 11살에 처음 장난감 기차 충돌 장면을 촬영했다. 17살에 135분 분량의 영화를 찍어 동네극장에서 상영했을 정도로 일찍부터 천재성을 보였다. 여동생에게 휴지를 감아 미라를 표현하고, 총격 장면을 리얼하게 구현하려고 필름에 구멍을 뚫어 빛을 통과시키는 등 어린 새미가 가내수공업으로 영화를 만드는 장면은 그 자체로 흥미롭고 동시에 향수를 자극한다. 영화는 새미가 영화계에 막 입문하려는 시점에 끝나는데, 이 대목에서 등장하는 존 포드 감독과의 조우 장면도 실화에서 따왔다.

영화 ‘파벨만스’는 세계적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처음 영화에 매료됐던 순간부터 감독으로 성장해나가는 자전적 이야기를 그렸다. [사진 CJ ENM]

영화 ‘파벨만스’는 세계적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처음 영화에 매료됐던 순간부터 감독으로 성장해나가는 자전적 이야기를 그렸다. [사진 CJ ENM]

필름메이킹 관련 일대기뿐 아니라, 스필버그 작품에 녹아있던 그의 내밀한 사연도 ‘파벨만스’에서는 아름답고 솔직한 방식으로 펼쳐진다. 그가 여러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듯, 컴퓨터 공학자였던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는 그가 19살 때 이혼했다. 가족 붕괴의 상처는 초기작 ‘미지와의 조우’(1977), ‘E.T.’(1982) 등에 은유적으로 반영됐는데, ‘파벨만스’에는 부부가 어느 지점에서 충돌하고 어떻게 결별했는지 세밀하게 담겼다. 청소년기의 스필버그를 괴롭힌 또 다른 요인은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이다. ‘쉰들러 리스트’(1993), ‘뮌헨’(2005) 등에서 유대인을 다룬 그는, 이번 영화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했던 경험을 직접 드러냈다.

‘파벨만스’는 거장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과 삶, 영화와 진실 간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부모의 진실을 발견하며 영상 이미지의 힘을 실감했던 새미는, 하지만 감독인 자신에 대해선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잠시 영화를 떠났던 그는 바닷가 여행을 영화화하면서 다시 카메라를 잡고, 촬영과 편집의 힘을 빌려 자신을 괴롭힌 친구를 용서하고 반성하게 한다.

영화 ‘파벨만스’는 세계적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처음 영화에 매료됐던 순간부터 감독으로 성장해나가는 자전적 이야기를 그렸다. [사진 CJ ENM]

영화 ‘파벨만스’는 세계적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처음 영화에 매료됐던 순간부터 감독으로 성장해나가는 자전적 이야기를 그렸다. [사진 CJ ENM]

영화는 이처럼 한 소년의 성장기를 통해 예술이 현실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의 탐구까지 나아간다. 또 예술과 과학, 예술가로서의 소명과 개인적 삶은 공존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을 통해 스필버그가 영화 인생에서 고민했을 문제들을 함께 곱씹도록 만든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2017, 2020년 차례로 떠나보낸 그는 코로나19 팬데믹까지 덮치자 “내가 아직 만들지 않은 단 하나의 영화가 있다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졌고, 그 답으로 가족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렇게 탄생한 영화는 스필버그 스스로 “4000만 달러짜리 심리 치료”라 할 만큼 거장의 삶에 다시 영향을 미쳤다. 그는 “‘파벨만스’를 만드는 과정은 분명히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었고,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건 굉장한 특권이었다”며 “관객들도 이 영화에서 자신의 가족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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