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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해진 '尹 공약'…"남성 자궁경부암 백신 비용 효과 낮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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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남성 대상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 접종에 적신호가 켜졌다. 최근 정부 용역 연구에서 비용 대비 효과가 낮은 것으로 나오면서다. 당초 방역당국은 정책 근거를 확보한 뒤 내년 1분기 내 접종 확대를 본격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질병관리청은 일단 추가적인 연구를 진행하겠다고만 밝혔다.

19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최근 마무리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HPV 백신의 국가예방접종 확대를 위한 비용-효과 분석’ 결과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으로 알려진 HPV(인유두종바이러스) 백신 ‘가다실’ 접종 대상에 12세 이상 남성까지 포함했을 때 비용 효과적이지 않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자궁경부암 백신인 가다실 접종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SNS 캡처.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자궁경부암 백신인 가다실 접종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SNS 캡처.

연구팀은 현행과 비교해 ▶12세 여아 9가 전환 ▶12세 남녀에게 9가 접종 ▶12세 남아에 2가·4가 도입 등의 세 가지 시나리오를 따져봤다. 그 결과 모두에서 비용 대비 편익이 크지 않게 나왔다. 평가 지표로는 퀄리(QALY·질보정수명)를 활용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통상 비용 효과를 따질 때 1퀄리당 얼마가 드느냐를 보는데 12세 이상 남성에게까지 확대했을 경우 1퀄리당 비용이 7억4000만원으로 계산됐다”라며 “GDP(국내총생산) 4000만~5000만원을 기준으로 봤을 때 이보다 높으면 비용 효과가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여성에게 지원하는 백신을 9가로 바꿀 때도 1퀄리당 5380만원으로 계산돼 1인당 GDP보다 소폭 높은 것으로 나왔다. 연구팀은 12세 여아 대상 9가로 전환했을 경우 9가 백신 가격을 인하한다는 전제로만 비용-효과적이라고 밝혔다.

가다실 백신을 남성에게도 무료로 놔주겠다는 건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건 공약 중 하나다. 그는 가다실 9가 백신의 보험 적용을 확대하겠다며 접종 권장 나이 기준인 여성 9~45세, 남성 9~26세에 일괄 혜택을 주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는 만 12세 이상 여아에게만 HPV 2가(서버릭스), 4가(가다실)를 무료로 지원한다. 가장 최근에 출시된 가다실 9는 국가예방접종지원사업에 빠져있다.

HPV 바이러스 관련 이미지. 중앙포토.

HPV 바이러스 관련 이미지. 중앙포토.

정부는 앞서 HPV 백신의 남성 접종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며, 근거를 확보한 뒤 예산안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가예방접종사업 비용은 건강보험 재정을 쓰는 게 아니라 정부 예산안으로 반영되는 만큼 근거가 필요하다. 당국 추산에 따르면 남아에게까지 접종을 확대했을 때 연간 190억원의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비용 효과가 낮다고 나오면서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HPV는 200개 가량의 타입이 있는데 40여종이 성적 접촉을 통해 항문 및 생식기 주위 감염을 일으킨다. 성생활이 시작되는 10~20대 젊은 연령에서 감염률이 높고 성 접촉 이외 경로로 감염되는 경우는 드물다. 감염돼도 90%는 저절로 낫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10%의 고위험 HPV는 각종 암의 원인이 된다. 여성에게는 가장 흔하게 자궁경부암부터 질암, 외음부암 등을 일으킬 수 있다. 남성에겐 음경암, 남녀 모두에게 항문암, 두경부암, 구인두암 등을 유발한다.

이승주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대한요로생식기감염학회 회장)는 “특정 HPV는 몸 안에 계속 머무르며 세포를 변화시켜 암을 유발한다”라며 “16, 18번 같은 고위험 바이러스가 자궁경부암 같은 질환을 일으킨다”고 말했다.

HPV는 통상 자궁경부암 백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여성만 접종하는 게 아니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교수는 “바이러스가 몸 안에 10년 정도 오래 있어야 암을 유발하는데 성기 구조상 남성에서는 바이러스가 오래 머물기 어렵고 이 때문에 음경암이 드물었다”라며 “그간 남성 접종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이유”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최근 남성에서의 구인두암(두경부암 일종) 발병이 높아지면서 접종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구강 성교 등 성행위가 변화하면서 생식기 부위에 있던 HPV가 두경부로 이동하고 구강에 10년간 머무르며 암을 유발한다”고 했다. 실제 미국에선 HPV 감염으로 인한 두경부암 발생률이 자궁경부암 발생률을 앞질렀다고 한다.

이 교수는 “자궁경부암은 선별 검사를 통해 전구암(암으로 진행되기 전단계) 상태를 발견할 수 있지만 남성은 그게 어렵다”라며 “구인두암이 발병된 후에야 암을 발견하기 때문에 백신을 미리 맞고 예방하지 않으면 막을 방법이 없다”라고 했다. HPV는 감염 때문에 발생하는 전염성 질환인 만큼 집단면역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남성에게도 접종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자궁경부암 백신. 연합뉴스.

자궁경부암 백신. 연합뉴스.

남녀 모두에서 접종할 때 예방효과가 더 크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해외 국가서도 남성을 접종 대상에 포함하는 추세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20년 10월 기준으로 전 세계 110개국에서 국가예방접종사업으로 HPV 예방접종을 시행하고 있다. 절반가량은 남아까지 접종 대상을 확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위 10개국 중 7개국서도 남성에게 HPV를 맞힌다.

이승주 교수는 “경제성 분석이란 건 말 그대로 데이터를 공식에 대입해서 평가하는 것”이라며 “전문가 자문대로 국민 공중보건을 위해 남녀 동시에 백신을 맞는 게 좋다”라고 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국가 예산을 통해 하는 거라 예산 들인 것보다 편익이 크지 않다면 재검토를 해봐야겠지만 경제성 평가는 변수나 모델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다”라며 “추가 변수를 통해 더 분석해야 한단 전문가 자문이 있어 연구를 추가로 발주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최종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국민적 편익이 있음에도 이를 확인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분석에 최대한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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