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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몸값 뛰었는데 실력은 떨어져…‘거품 덩어리’ K야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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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호 22면

한국야구 왜 퇴보하나

WBC 1라운드 탈락이 확정된 뒤 13일 열린 중국전에서 22-2, 5회 콜드게임승을 거둔 한국 야구 대표선수들이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WBC 1라운드 탈락이 확정된 뒤 13일 열린 중국전에서 22-2, 5회 콜드게임승을 거둔 한국 야구 대표선수들이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거품이 끼었다.” “우물 안 개구리다.”

한국 야구 대표팀이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비난의 화살이 빗발쳤다. 고액 연봉을 받는 데 비해 선수들의 실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배가 불렀다’는 쓴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한국 야구는 정말 빛 좋은 개살구일까.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선수 평균연봉은 1215만원이었다. 선수 수명이 짧다는 걸 감안하고, ‘프로’라는 이름에 걸맞은 대우를 위해 최고 연봉 기준을 2400만원으로 설정했다. 당시 강남의 30평(약 99㎥)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는 금액이다. MBC 김재박과 OB 박철순 2명이 최고 연봉자였다.

2023년 KBO리그 평균연봉은 1억4648만원(신인 및 외국인 선수 제외)이다. 계약금과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 때문에 실제 받는 돈은 좀 더 많다. 그래도 40년간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큰 증가 폭은 아니다.

다만 A급 선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2021 시즌을 마치고 국내로 복귀한 투수 김광현(SSG)은 4년 총액 151억원에 사인했고, 양의지(두산)는 지난 겨울 6년 152억원에 계약했다. 메이저리거 김하성과 토미 현수 에드먼을 포함한 한국 선수단 연봉 총액은 300억원이 넘는다.

한국을 꺾고 8강에 오른 호주는 마이너리거와 자국 리그 선수로 엔트리를 채웠다. 마이너리그 선수 연봉은 1500만~3500만원 수준이다. 겨울(11월~2월)에 열리는 호주 리그 수당은 200만~400만원이다. 30명 선수 몸값을 다 합쳐도 3억원 남짓이다. 한국의 100분의 1 정도다.

한국과 같은 B조에 편성된 체코는 ‘프로’가 아닌 선수들이 많았다. 자국 리그가 있지만 실업야구 수준이다. MLB 출신 에릭 소가드나 미국 대학에서 뛰는 마르틴 흘룹 등 몇 명을 빼면, 주중엔 일을 하고 주말에 야구를 하는 ‘투잡족’이 다수다. 파벨 하딤 감독은 신경외과 의사고, 주장 마르틴 슈나이더는 소방관이다. 한국은 체코에게 7-3으로 이겼지만, 고전했다. 이번 대회 성적만 보면 한국 야구는 ‘거품 덩어리’다.

야구선수들의 몸값이 오른 건 시장 논리에 따라서다. 제9구단 NC, 제10구단 KT가 탄생하면서 선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2017년 최형우가 FA 계약 총액 100억원 시대를 열었고, 올해까지 9명이 100억원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2023년 KBO리그 연봉 상위 5명

2023년 KBO리그 연봉 상위 5명

구단들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연봉 합산 제한(샐러리 캡)을 도입했다. 그러나 대형 선수들의 연봉은 떨어지지 않았다. 샐러리 캡을 피하기 위한 여러 대응책이 나왔기 때문이다. 구자욱(삼성)은 FA가 되기 전에 장기계약(5년 120억원)을 맺었다. SSG는 샐러리캡 적용을 앞둔 2022 시즌 김광현의 연봉을 81억원으로 책정했다.

한국 스포츠는 선수들에 대한 대우가 후하다. 야구보다 팬덤이 작고, 자생력이 떨어지는 프로농구나 배구도 평균 연봉 1억원이 넘는다. 아마추어도 마찬가지다. 국제 경쟁력이 추락한 육상이나 복싱도 억대 연봉 선수들이 많다. 기업과 지자체가 효율보다는 전국체전과 같은 성적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모기업 지원 비중이 크지만, 입장료 수입(연평균 100억원), 중계권료(50억원), 상품 및 음식 판매 수익까지 얻는 프로야구는 ‘효자’에 가깝다.

몸값 상승이 부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한때 50개까지 줄었던 고교 야구팀은 80개까지 늘었다. 프로야구가 호황을 이루면서 유망주들의 유입이 늘었다. 이정후(키움), 강백호(KT), 고우석·정우영(이상 LG)으로 대표되는 ‘베이징 키즈’는 당시 대표팀을 보며 꿈을 키운 세대다.

WBC 후폭풍이 당장 흥행에 악영향을 주지도 않을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13일 개막한 시범경기 관중 숫자는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보고, 먹고, 마시면서 즐기는 프로야구는 여전히 ‘넘버원’ 스포츠 콘텐트다.

다만 언제든 침체기가 올 수 있다. 1990년대까지 인기를 누리던 프로야구는 2000년대 초반 위기를 맞았다. 그 위기를 극복한 건 2006 WBC(4강), 2008 베이징올림픽(금메달), 2009 WBC(준우승) 등 국제대회의 선전 덕분이었다. 여성과 가족 단위 관객이 늘면서 8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KBO는 2020 도쿄올림픽과 이번 WBC에서 한 번 더 도약하려 했다. 하지만 대실패로 돌아갔다.

프로 스포츠는 상품이다. 응원 문화, 팬덤도 중요하지만 기본이 되는 건 ‘선수’다. 하지만 최근 한국야구엔 슈퍼스타가 보이지 않는다. 축구 손흥민, 배구 김연경, 농구의 허웅·허훈 형제처럼 국민적인 인기를 누리는 선수가 없다. 국제대회야말로 선수들의 상품 가치를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지만, 스스로 날려버렸다.

KBO는 지난해 11월 한·미 올스타전을 준비하다 대행사 문제로 접었다. 내년엔 미국에서 KBO리그 개막전을 열 계획이다. 야구계에선 깜짝 이벤트보다는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이번 WBC 이후 국제 경쟁력 향상 방안을 위한 제언들이 이어졌다. KBO는 10개 구단 단장들이 모이는 실행위원회를 열고, WBC 부진에 대한 사과와 함께 중장기 계획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도쿄 참사’를 예방주사 삼아 힘을 키우지 않으면, 지금의 인기는 정말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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