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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마라탕과 불로장생 환상

중앙일보

입력

마라탕. 셔터스톡

마라탕. 셔터스톡

최근 수년간 우리나라에서 핫(hot)하게 유행했던 중국 음식 중 하나가 마라탕이다. 정확하게는 마라탕을 비롯해 충칭훠궈, 마라샹궈, 마라룽샤 등 마라 소스를 사용해 조리한 음식 모두가 해당된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 2000년대 초반 무렵, 베이징 거리에 다양한 마라 음식점이 속속 들어서면서 마라 열풍이 일었다. 이후 이 바람이 베이징을 넘어 광범위한 지역으로 확대됐고 심지어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과 동남아까지 퍼졌다. 우리나라에서 마라 음식이 유행한 배경이다.

맵고 얼얼한 마라요리는 쓰촨과 후난요리에서 비롯됐다. 흔히 후난사람은 매운맛을 두려워하지 않고 쓰촨 사람은 맵지 않을까 두려워한다지만 나머지 중국인은 모두 공포에 떤다는 맵고 얼얼한 쓰촨과 후난 요리가 어떻게 중국 전체에 퍼진 것일까?

이유를 찾다 보니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마라요리의 특징 중 하나는 대부분 고급 음식점에서 생겨나 퍼진 요리가 아니라 시장에서 발달한 거리 음식이고 서민 음식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대부분 음식은 20세기 초반에 생겨나 역사도 짧은 편이다. 발상지는 쓰촨과 후난성 현지인데 2000년을 전후해 베이징에 퍼지며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마라요리는 자극적인 만큼 맛은 좋을지 모르지만 아무리 봐도 건강에 좋은 음식 같지는 않다. 실제 위장이 약한 사람의 경우 금세 속이 불편해진다. 찬물도 건강에 안 좋다며 마시지 않는 중국인들이 마라 음식은 왜 먹는 것일까?

먼저 마라(痲辣) 맛의 역사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마라 중에서 고추가 만들어 내는 매운맛, 라(辣)의 역사는 우리와 비슷하다. 남미가 원산지인 고추가 중국에 전래한 시기는 명말청초, 우리나라 임진왜란 전후다. 1591년의 『준생팔잔』에 처음 고추에 대한 언급이 보이는데 이 책은 의학서나 농학서가 아닌 관상용 식물을 기록한 책이다. 이어 역시 명나라 때 발간된 『초화보』에도 고추에 대해 “번초(고추)는 꽃이 하얗고, 맛은 매우며 색이 빨간데 보기가 좋다”고 했다. 명나라 문헌에서는 고추를 화초로만 평가했다.

중국에서 고추를 먹기 시작한 것은 청나라 때다. 『화경』이라는 문헌에 ‘맛은 맵고 겨울에 후추를 대신할 수 있다’고 나온다. 유추해 보면 중국에서는 고추가 처음에는 관상용 화초로 이용되었다가 나중에야 식용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만큼 마라의 맛에서 고추의 역할은 입맛을 자극하는 매운맛,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반면 얼얼하면서 매운 맛인 마(痲)는 또 다르다. 일단 뿌리가 훨씬 깊다. 마라 소스의 얼얼한 맛은 산초의 한 종류인 화쟈오(花椒)에서 나오는데 화쟈오는 기원전 7세기 『시경』에도 보인다.

기원전 3세기 전국시대 굴원의 『이소』에도 나오고 『신농본초경주』에는 진(秦)나라에서 나온다고 했으니 이 무렵 중국에는 산초와 화쟈오가 상류층에서 노래했을 만큼 퍼졌던 것 같다.

옛날 산초나 화쟈오는 보통 향신료가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인이 후추를 약으로 여겼던 것처럼 고대 중국에서 화쟈오는 불로초로 여겼다.

옛사람들은 화쟈오를 비롯한 산초와 후추 등 향신료에 대해 묘한 신비감을 품었다. 일례로 한나라 황후의 처소인 미앙궁에 산초가루를 흙에 섞어 벽지를 바른 초방(椒房)이라는 방이 있었다.

산초가 머금은 양기가 뿜어져 나와 겨울에도 방이 따뜻할 뿐만 아니라 산초가 열매를 많이 맺는 열매였기 때문인지, 혹은 산초 향기가 리비도(Libido)를 자극한다고 믿었는지 초방에 머물면 자손을 많이 낳는다고 믿었다.

향신료에 품은 환상은 시대를 이어 계속됐다. 남북조 시대는 도교가 유행했던 시기였기에 도사들도 많았다. 이들은 후추나 화쟈오 등이 양생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후추 태운 연기를 마시며 호흡하면 수명이 늘어난다고 생각했고, 산초와 화쟈오 등의 향신료는 더할 나위 없는 강장제 역할을 한다고 여겼다.

중국인들이 마라요리가 양생에 도움이 된다고 믿으며 쓰촨과 후난 출신이 아님에도 마라 맛에 빠지게 된 이면에는 어쩌면 중국인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화쟈오 같은 향신료에 대한 원초적 욕망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라 요리의 유행을 고대가 아닌 현대의 중국 정치, 경제, 사회구조에서 찾기도 한다. 물론 근거는 없지만 그럴듯한 측면도 없지 않다.

90년대까지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는 마라음식에 익숙한 쓰촨과 후난성 출신이 많았다. 그래서 한때 권력 심장부인 중난하이 건너편, 인민대회당 뒤편에 쓰촨 음식점이 성업을 이뤘다. 베이징에 쓰촨의 마라요리가 퍼진 배경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1990년대 후반 내지 2000년대 초반, 개혁개방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경제가 발전하고 동시에 사회주의 특유의 각종 규제가 완화하기 시작했다. 여행의 자유, 거주 이동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허가증 없이도 이동이 자유로워졌다. 그 결과 쓰촨의 마라 요리와 산시의 우육면 같은 지방 특산 음식이 베이징으로, 그리고 전국으로 퍼지게 됐다는 것이다.

마라요리 유행에서 이런 시대 변화의 흐름을 읽을 수도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글 윤덕노 음식문화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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