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국 ‘폰 뱅크런’에…국내도 예금보호 한도 상향 목소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을 계기로 예금자 보호 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 고객의 불안이 순식간에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SVB가 여실히 보여준 만큼, 금융 고객의 불안감을 줄이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 등은 예금자 보호 한도 개선 방안을 논의 중이다. 예금자 보호 한도는 금융회사가 파산 등으로 예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됐을 때 예보가 금융회사 대신 지급해주는 최대한도 금액이다. 대부분의 금융사 원금 보장형 상품에 적용된다. 한도는 지난 2001년 1인당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오른 이후 제자리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 제도는 최근 SVB 파산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미국은 최근 SVB에 대해 예금자 보호 한도를 넘는 전액 지급 보증 조치를 했다. 미국의 1인당 예금자 보호 한도는 25만 달러(약 3억2700만원)다. 한국보다 6배 넘게 큰 규모인데도, 한도를 고집했다간 파장이 더 커질 것으로 판단한 미국은 이례적 조치를 선택한 것이다. 기업 고객이 많은 SVB의 특성상 전체 예금의 87%가 예금자 보호 한도를 넘어 사실상 제도의 의미가 없었다는 점도 미국의 이런 조치를 가능하게 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외환위기 당시 정부는 1997년 11월부터 2000년 말까지 은행 등의 모든 예금에 대해 원금 및 이자 전액 지급을 정부가 보장하기로 했다. 하지만 도덕적 해이 문제 등이 불거지며 이 대책은 1998년 7월 조기 종료됐다. 미 당국의 SVB 관련 대책에 대해서도 효과 여부를 차치하고 적정성 논란이 일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부작용이 우려되는 이례적인 정책 시행을 방지하고 금융 소비자의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해 예금자 보호 한도를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은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미국 SVB의 초고속 뱅크런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라며 “예금자들이 불안하게 되면 은행 경영 또한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융소비자의 불안을 해소하고 그간의 물가 인상도 반영하기 위해 예금자 보호 금액을 5000만원에서 1억원 정도로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김희곤 의원이 예보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예금자보호 한도를 넘는 예금 규모는 2017년 말 724조3000억원에서 지난해 6월 1152조7000억원으로 뛰었다.

이에 오는 8월 정부가 내놓을 개선안에는 예금자 보호 한도 상향이나 보호 대상 상품 확대 등이 담길 가능성이 크다. 예금자 보호 제도 개선 작업을 진행한 태스크포스(TF)에 몸담았던 한 민간 전문가는 “여론조사 등을 통해 예금자 보호 한도 상향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다만 한도 상승 시 금융회사가 나눠 내는 예금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고, 이는 대출 금리 인상 혹은 예금 금리 인하 등의 방식으로 고객에게 전가될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 예금자 보호 한도로도 건수 기준으로는 약 95%의 예금이 보호받고 있다”며 “보호 한도 확대의 혜택은 거액 현금 보유자나 기업에게만 돌아가고 서민은 오히려 대출 금리 상승 등에 따른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