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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나라한 고통에 몰입" 1년 전 묻힌 폭로 띄운 '나는 신이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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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은 사이비 종교의 실체를 폭로한 8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다. 사진 넷플릭스 캡처

지난 3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은 사이비 종교의 실체를 폭로한 8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다. 사진 넷플릭스 캡처

“지금까지 많은 언론이 이 종교단체들을 다뤘는데 어떻게 이들은 존속될 수 있었을까요.”

국내 사이비 종교들의 실체를 파고든 넷플릭스 8부작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하 ‘나는 신이다’)을 연출한 조성현 PD가 10일 기자간담회에서 던진 질문이다. 조 PD의 말대로 ‘나는 신이다’가 다룬 사이비 종교단체들의 만행은 이미 여러 보도를 통해 드러난 바 있다. 특히 화제가 되고 있는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정명석 총재의 성범죄는 다큐에 증언자로 등장한 홍콩인 메이플씨가 1년 전 기자회견에서 폭로한 적도 있다.

새로운 내용을 공개한 게 아닌데도 ‘나는 신이다’가 몰고 온 파급력은 지금껏 나온 그 어떤 사이비 종교 관련 폭로나 보도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여론이 심상치 않자 검찰총장은 “정씨에게 엄정한 형벌이 선고될 수 있도록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고, JMS 신도로 지목된 유명인들은 줄줄이 탈교를 선언하며 사과에 나섰다. 13일에는 다큐에 나온 종교단체 아가동산이 법원에 방송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면서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한두번 아닌 사이비 폭로…‘나는 신이다’ 만나 터진 이유?

이 다큐가 사회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이슈를 재점화할 수 있었던 건, 기존 보도에 비해 한층 적나라하게 사이비 종교의 폐해를 고발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나는 신이다’는 JMS를 다룬 1회 시작부터 정명석의 변태적인 성범죄 행각이 담긴 30여초 가량의 녹취를 비속어까지 그대로 재생한다. 이외에도 여성 신도들의 나체 영상이 얼굴만 모자이크된 채 등장하고, 오대양 편(4회)에서는 흐릿하게 처리되긴 했지만 변사체들이 뒤엉켜있는 실제 현장 영상이 여러 번 반복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 '나는 신이다' 예고편 캡처.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 '나는 신이다' 예고편 캡처. 사진 넷플릭스

김성수 대중문화 평론가는 “이 정도로 사이비 종교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공개된 적이 없었다. 특히 이 시리즈는 피해자들의 고통에 몰입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이 잘 짜여졌다”고 분석했다. 조 PD도 표현 수위를 높인 이유에 대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제작 의도를 생각하면 이 형태가 맞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이 정도 수위의 범죄 다큐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넷플릭스의 본토 미국에서는 이미 범죄 다큐가 하나의 인기 장르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성직자들의 성적 학대를 파헤친 ‘천사들의 증언’(2017), 연쇄살인범을 쫓는 형사들을 비춘 ‘나이트 스토커’(2021)를 비롯해 미국 내 범죄 실화를 소재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의 목록은 끝도 없다. 넷플릭스는 ‘레인코트 킬러: 유영철을 추격하다’(2021),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2022) 등 국내 범죄를 다룬 오리지널 다큐들도 간간히 선보였다.

웨이브 오리지널 다큐 '국가수사본부'에는 형사들이 범죄 현장을 덮치는 순간을 비롯해 실제 수사 과정의 처음과 끝이 디테일하게 담겼다. 사진 웨이브

웨이브 오리지널 다큐 '국가수사본부'에는 형사들이 범죄 현장을 덮치는 순간을 비롯해 실제 수사 과정의 처음과 끝이 디테일하게 담겼다. 사진 웨이브

토종 OTT 중에서는 웨이브가 지난 3일부터 공개 중인 ‘국가수사본부’가 실제 수사 현장을 기록해 “현장감 넘친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그간 범죄 다큐들은 수사 과정을 요약하거나 재연을 통해 보여줬다면, 이 시리즈에는 사건 현장에 경찰이 처음 출동하는 시점부터 용의자 신문 과정 등 기존에 보지 못했던 수사 장면들이 낱낱이 담겼다. ‘나는 신이다’의 조성현 PD가 MBC ‘PD수첩’ 출신이고, ‘국가수사본부’의 배정훈 PD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만들던 연출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간 지상파 시사 프로에서 경험을 쌓은 PD들이 OTT의 지원을 업고 더 적나라하게 범죄를 기록한 다큐를 내놓는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적나라한 공개, 의도 좋지만…”

이같은 다큐는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까발리는 순기능이 있는 반면, 필요 이상의 노골적인 연출에 따르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 교수는 “범죄의 실상을 정확히 전달하고 싶은 창작자의 의도에는 동의하지만, 의도가 모든 것을 합리화시킬 수는 없다”며 “PD는 다큐로 만들었지만, 어떤 수용자들은 그저 흥미 위주의 예능으로 소비할 수 있으며,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나 모방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특히 OTT는 TV에 비해 가벼운 심의 기준을 적용받고 있기 때문에 시사 콘텐트 만큼은 보다 면밀히 모니터링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방송은 ‘방송법’에 명시된 심의 규정에 따라 범죄 사건 등의 묘사에 제약을 받지만, OTT 콘텐트는 이 법률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에 드라마나 예능이 아닌 다큐도 TV보다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한 상황이다.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는 “OTT 시사 고발 콘텐트가 언론과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규제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상황”이라며 “매체별로 다른 규제를 적용할 게 아니라 유사한 성격의 콘텐트라면 같은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 통합미디어법처럼 전체 콘텐트를 아우를 수 있는 법적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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