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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성 北유엔 인권특별보고관 “北서 하루 세 끼는 사치..여성 인권 취약”

중앙일보

입력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AP=연합뉴스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AP=연합뉴스

유엔의 첫 여성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으로 지난해 임명된 엘리자베스 살몬(57) 특별보고관이 최근 보고서를 내고 “북한의 여성과 소녀들을 비롯한 취약 계층이 벼랑 끝에 몰려 있다”고 지적했다.

페루 출신의 국제법 전문가인 살몬 보고관은 지난해 8월 여성으로는 최초로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에 임명됐다. 이번 보고서는 그가 임명된 뒤 처음으로 발간된 것으로, 지난 9일 유엔 인권이사회(UN HRC)에 제출됐다.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1일까지 개최되는 제52회차 유엔 인권이사회 회기에 맞춰 공개됐다.

살몬 특별보고관은 서두에서 “북한의 상황과 국제적 의무를 고려해 북한 여성과 소녀들의 인권을 업무의 최우선 과제로 삼으려 한다”면서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폐쇄로 음식·의약품·생계 수단에 접근이 제한된 북한의 여성과 소녀를 비롯한 취약한 계층들이 벼랑 끝에 내몰렸다”고 밝혔다.

그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구호 단체 등의 자료를 근거로 “2021년 말 기준 북한 전체 인구의 60%는 식량 수급이 불안정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40%보다 늘어난 수치”라며 “2019~2021년 기준 북한 인구의 41.6%가 영양실조 상황”이라고 밝혔다. 특히 “북한 사람들은 하루에 한 끼만 먹을 수 있고, 세 끼를 먹는 것은 대부분의 가족에게 사치(a luxury)”라고 적었다. 북한에서 최근 1년 간 옥수수·식용유 가격이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급등했고, 코로나19 기간 굶주림으로 사망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한다.

살몬 특별보고관은 이번 보고서에서 북한의 전반적인 인권 상황을 간략히 기술한 뒤, 북한의 여성 인권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국내법·생식·건강권 및 장마당에서 인권 등 세부 항목별로 기술했다. 그는 “북한에서 가정폭력은 형법상 범죄로 다뤄지지 않으며, 국가가 개입할 필요가 없는 사적·가족 문제로 광범위하게 용인되고 있다”면서 “탈북자들은 성폭행으로 유죄 판결을 받는 남성은 소수이며 성폭력에 대한 오명은 여성이 감당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에 만연한 성 고정 관념은 여성에 대한 차별의 근본 원인”이라면서 “여성들은 ‘꽃’이라 불리며 옷과 화장, 머리 스타일까지 국가의 통제를 받는다”고 지적했다. “이런 성 고정관념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심각한 범죄로 취급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달 8일 '국제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들의 헌신을 강조했다. 신문은 ″순박하고 의리심이 강한 우리 나라 여성들은 사회와 집단, 혁명동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고상한 미풍과 헌신적 투쟁정신을 높이 발휘해 사회주의 대가정을 빛냈다″라고 전했다. 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달 8일 '국제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들의 헌신을 강조했다. 신문은 ″순박하고 의리심이 강한 우리 나라 여성들은 사회와 집단, 혁명동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고상한 미풍과 헌신적 투쟁정신을 높이 발휘해 사회주의 대가정을 빛냈다″라고 전했다. 뉴스1

여성·소녀들의 건강권과 관련해 북한의 산모 사망률은 2017년 인구 10만 명당 89명에서 2020년 107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살몬 특별보고관은 “북한에서 피임의 부담은 여성이 지며, 널리 퍼진 피임법이 자궁 내 장치(IUD)이지만 산부인과 진료를 제때 받는 여성들은 소수”라고 지적했다. 또 “일회용 생리대는 가격이 비싸 보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여학생들이 등교를 하지 못 하는 경우가 여전히 있다”고 적었다. 낙태와 관련한 법적 규정도 미비했다.

보고서는 또 “여성들의 수요 생계 수단인 장마당에서 여성들이 직면하는 인권 침해에 극도의 우려”를 표명했다. 최근 북한 정부의 통제 강화로 장마당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이 처벌 위험에 놓였으며, 지방 관리들이 여성들에게 이를 피하기 위해 성 상납을 요구하곤 한다면서다. 기존 북한 인권 보고서에 포함됐던 북한 정치범 수용소인 관리소(kwanliso)의 성폭력, 탈북 여성들에 대한 인신매매와 강제 결혼 문제도 이번 보고서에서 다뤄졌다.

이에 따라 살몬 특별보고관은 북한 정권에 “여성에 대한 폭력을 종식시키는 것을 사회적, 제도적 우선순위로 삼을 것”과 “여성 차별에 대한 정의, 강간 및 가정 폭력과 직장 내 성희롱에 관한 정의를 법률에 규정할 것”을 권고했다.

살몬 특별보고관은 한국 정부에도 “한국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탈북자들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높일 필요가 있다”면서 “북한과의 협상에서 여성과 소녀들의 인권 향상을 위한 계획을 수립할 것”을 권고했다. 그는 “젊은 탈북 여성들은 한국에 와서 연구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거나, 중국 내 탈북 소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며 “그들은 이제 단순히 인권 침해의 피해자가 아니라 사회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젊은이로 북한 출신 여성에 대한 서사를 바꾸는 데 앞장서고 있었다”고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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